영웅과 악당은 시대가 정한다
민주주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 근간이 되는 사건으로 18세기 말의 프랑스 혁명을 꼽는다. 프랑스 혁명의 가장 상징적 성과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고, 이 선언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자유, 재산, 안전, 억압에 저항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인권 존중과 평등사상의 출발점이 되었고, 이후 여러 국가의 헌법과 국제적 인권선언에 영향을 미쳤기에 프랑스 혁명이 현대 민주주의 근간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을 통해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확산하고자 했으나 이후 들어선 입법 의회, 국민 공회, 총재 정부 등이 안정적인 정치 체계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지속적인 혼란과 분열을 자아냈다. 특히 혁명 말기의 총재 정부는 연속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치적 불안과 경제 위기를 심화하여 대중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그에 반해 반혁명 세력과 왕당파의 반란을 저지하고, 이탈리아 원정 전쟁을 승리로 이끈 나폴레옹이 군대의 실권을 장악하면서 민심을 얻게 되고, 이후 총재 정부를 무너뜨리는 쿠데타에 성공하면서, 3명의 집정이 이끄는 집정 정부를 수립하고, 제1 집정으로 나폴레옹이 오르게 되면서 프랑스 혁명은 막을 내린다.
이후 나폴레옹 법전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핵심 이념인 법 앞의 평등과 개인의 재산권 보호 등의 가치를 내세우며 시민법의 시작을 알렸고 교육, 행정 개혁을 통해 능력주의 사회를 강화하면서 봉건적 특권 질서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정복 전쟁은 유럽 전 지역에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전파하는 계기가 되어 유럽의 변화를 촉진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런 긍정적인 면을 뒤로하고 나폴레옹은 민주적 이상을 뒤엎고 스스로 황제에 오르며 권력을 독점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정적을 탄압하는 등 독재자의 면모를 드러냈고, 이는 혁명의 기본 정신인 자유와 평등에 대한 전면적인 배신이었다. 그리고 유럽 전역을 휩쓴 정복 전쟁은 수백만의 희생자를 낳았고 유럽 각국의 경제와 사회에 막대한 혼란을 초래하고 민중들에게 고통을 안겼다. 이런 오점을 남긴 나폴레옹의 말로는 좋지 못했고, 그의 몰락 이후 프랑스는 다시 왕정복고로 돌아갔다.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은 현대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를 차지한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을 제시하며 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았고, 나폴레옹은 이념을 제도적으로 계승했으나 동시에 권력을 집중시켜 독재로 변질시켰다. 혁명의 혼란 속에서 나폴레옹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의 등장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혁명 정신을 완성하지 못한 채 자신의 야망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권력을 가진 이가 영웅으로 기억될지, 악당으로 기억될지는 결국 그 시대를 어떻게 읽고 행동하냐에 따라 달라진다. 혁명 시기 민중의 뜻을 읽고 그 갈망을 채워준 나폴레옹의 모습은 영웅으로 볼 수 있으나 이후 권력욕에 취해 벌인 행동들은 영웅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현대의 정치권력자들에게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선거가 다가올 때는 대중에게 귀 기울이며 민심을 얻으려 하다가, 권력이 확립되면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힘을 쓰는 행태들 말이다.
'영웅 혹은 악당' 작품은 18세기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당시 미술이 정치적 선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나폴레옹은 다비드에게 자신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담은 그림들을 요청했고, 다비드는 그 요청에 걸맞은 작품을 선보여 나폴레옹의 위대한 혁명가라는 이미지 구축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림과는 달랐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백마가 아닌 작은 노새를 타고 현지 농부의 안내를 받으며 추위에 떨며 알프스를 넘었다고 한다. 실제 모습을 감추고 자기 모습을 날조하여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한 권력자의 욕망을 읽어 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되어, 그 구도를 가져오고, 나폴레옹의 백마를 두 명의 사람으로 변경하여 현대 사회에서 대중 위에 올라서 권력을 탐하고자 하는 정치권력자들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 작품이다.
권력자가 영웅이 될지 악당이 될지는 결국 그 시대를 읽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의 권력 유지보다 그 시대 민중들의 요구를 읽고 그것에 맞게 정치권력을 행사한다면 그는 분명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고, 그와 반해 대중의 의견을 묵살하고 소수 집권층을 위한 정치만을 행한다면 그는 악당으로서 역사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