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나야?

1장. 실연당한 기분이었습니다 (2편)

by 니나

왜 하필 나였을까? 우리 회사는 2022년 가을에 접어들면서 11,0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전체 직원의 13%에 해당하는 정말이지 적지 않은 숫자였다. 최소 8명 중 한 명이니 한국 사무실에서도 꽤 많은 수의 직원들이 갑자기 길바닥에 나앉게 되는 숫자였다. 그게 나일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동시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정규직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직원 규모가 작은 한국이었고 나는 회사의 매출을 책임지는 영업부서였으며 내가 담당하는 광고 매출 규모가 한국 사무실에서는 꽤 큰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내 노력과 의지로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 가지지 않고 감정을 쏟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나 막연하게 불안한 것들에 대해 미리 신경 쓰고 고민하지는 않는 편이다. 이번에도 나의 이런 기질 덕분에 '그래, 닥치면 그때 가서 고민하지 뭐'라고 생각했고, 혹시 나면 어쩌지?라는 불안에서부터 오는 걱정과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고,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이제 없다. 인형 뽑기 기계의 박스 안에서 머물고 싶었는데, 운 나쁘게 갈고리에 걸려 추운 세상으로 나온 못난이 인형이었을 수도 있고, 놀이공원이나 오락실 같은 곳의 경품 사격의 표적이 된 것일 수도 있겠다. 아니 예쁜 꽃밭에서 삐죽 튀어나와 없애버려야 하는 잡초였을 수도 있겠다. 그래 나는 여하튼 쑥 뽑혀 나왔다. 누가 결정했는지 왜 내가 결정되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고,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주니어 시절 대기업에 다니면서 본 정리해고는 이렇지 않았다. 우선은 연차와 직급에 따른 위로금을 모두에게 공개하면서 희망퇴직 신청을 일정 기간 받는다. 근속연수가 긴 편인 부장급 이상은 내 가게, 내 사업을 시작해도 될 만큼 푸짐한 편이어서 오히려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나는 기회가 없음을 아쉬워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편협하고 철없는 생각인가? 뒷바라지에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아들딸들이 있었을 것이고, 긴 근속연수로 이직도 쉽지도 않았을 텐데, 그저 그때는 20개월 치 30개월 치 월급이라는 짧은 문구에 맘속으로 침을 흘렸었다. 이렇듯 한국 회사에서의 정리해고에는 희망퇴직이라는 과정이 있다. 적어도 개인이 고민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형식적으로라도 회사가 제공해 줬고, '회사에서 잘렸다'라는 굳이 겪을 필요 없는 지독한 감정은 피할 수 있다. 이 기간에 경영진이 목표한 숫자를 채우지 못하면, 슬슬 그 형태는 권고사직으로 넘어간다. 장급들은 팀원 및 부서원 들과 일대일 면담을 하면서 지금 일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지? 가정 상황은 어떤지? 외부에서 기회를 찾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권고사직의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지 혹은 낮은지? 등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권고사직 리스트가 확정되면 그간의 성실함이나 회사에 기여한 부분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업무와 상관없는 부서로 강제 발령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기회를 줄 때 눈치껏 물러나야 하는 압박감도 있다.


그때 나는 유리로 된 큰 교실 같은 곳에서 온라인 플랫폼 회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넥타이와 정장 차림의 분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모여계신 것을 보았다. 그 방은 사내 편의점 같은 편의시설로 가는 길목이라 회사 내 전 직원이 그 앞을 지나가면서 볼 수 있는 위치였다. 권고사직 대상자가 되었다는 유쾌하지 않은 경험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그분들을 전 직원이 매일 오가며 볼 수 있는 곳에 몰아둔 회사의 조치는 참으로 비인간적으로 보였다. ‘아, 이게 진짜 회사구나!’라고 그때 제대로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외국계 특히 미국계 글로벌 회사의 조치는 좀 더 냉혹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희망퇴직의 과정은 없었고, 위로금 규모가 마음속으로 침을 흘릴 만큼 달콤하지도 않았고, 내가 왜 대상자인지를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길 한복판에 서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차에 꽝 부딪히듯, 그렇게 갑작스러웠고 폭력적이었다. 한국 기업에서는 권고사직의 대상자를 회사 경영진의 누군가가 개입하고 결정한다. 그러나 이번 정리해고는 달랐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외부 컨설팅 업체를 통해 알 수 없는 규칙인지 랜덤인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했고 그래서 리더십과 경영진이 '대상자를 선택'했다는 책임을 면할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한국 노동법에 대한 이해가 낮은 외국계 회사가 미국이나 싱가포르 같은 데서 진행하던 정리해고의 프로세스를 그대로 가져와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진행했으니, 토종 한국인인 나는 충격이고 서럽고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던 회사의 비전과 방향성과는 전혀 다른 비인간적인 과정으로 진행되었고, 회사가 참 영리해 보였다.


그랬다, 나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누군가를 탓하고 원망할 수도 없게 된 것이다. 그냥 지진이나 화재 같은 사고가 났고 지지리 복도 없는 내가 피해를 보게 된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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