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

1장. 실연당한 기분이었습니다 (3편)

by 니나

목요일 정리해고 통보 메일을 받은 후 첫 월요일이 다가왔다. 부분 재택근무를 하더라도 월요일은 필수 출근 요일이었다. 주간회의와 월간회의 등 중요한 미팅이 줄줄이 있고, 주말 동안 광고주의 캠페인에는 문제가 없었는지를 점검하다 보니 바쁘고 긴장되는 한 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번 월요일은 그보다 다른 의미에서 좀 더 긴장되었다. 나는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고, 아주 가까운 몇몇 분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출근하지 않은 목요일과 금요일 동안 사무실에는 내가 대상자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을지도 모른다.


“월요일에 어떻게 할 거야?” 남자친구가 무심하게 툭 던지듯 물어봤다.

“출근해야지, 왜?” 뭘 당연한 것을 묻는가 싶었다.

“음…. 그래 너답다.”


시간이 꽤 지난 후 그가 그때를 회상하며 나에게 말했다. 그때 출근한다고 해서 참 나답다고 생각했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움츠러들고 눈치 보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모습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단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그냥 가야 하는 거니까 가는 거라고 대답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참 대단하고 대견했다. 그날 그리고 그 이후로도 정리해고 대상자 중 오로지 나 혼자만 꾸역꾸역 출근하고 일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할 때나, 사무실 지하 주차장에 주차했을 때도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러나 막상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으려니 조금 긴장되기 시작했다. ‘어떤 표정으로 회사를 들어가야 하지? 누가 내 안부를 물어보면 뭐라고 답해야 하나?’라고 두근거리다가 이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는 괜찮아,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라며 긴장을 내려놓기 위해 애썼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사무실 문 앞의 보안 패드에 사원증 카드를 터치했다. 문이 열렸다. 다행이다. 이어서 눈이 마주친 보안팀 직원 분과 눈인사를 나누었다. 그분이 보는 컴퓨터 모니터에 내 이름이 떴을 텐데,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화면에 위험인물이라고 뜨지는 않나 보다. 휴- 다행이다.’라고 했다가 이내 ‘아니 이게 뭐라고,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군!’ 하며 속으로 웃었다. 늘 그렇듯 사무실 문을 열고 오른쪽을 보이는 냉장고와 음료 코너에서 늘 먹던 주스를 하나 꺼내 들고 업무 공간으로 걸어 들어갔다. 커피 머신을 지나서 우측으로 두 번 돌면 직원분들이 모여있는 사무공간이다. 1~2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주변의 공기가 느리게 흘렀다. 뚜벅뚜벅 내 발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는 뭔가 들키면 안 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숨을 조금 죽이고 태연한 척 얼굴에 옅은 미소를 장착하고 그 공간으로 들어갔다. 내 책상에 앉을 때까지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기를 속으로 빌었다.


사무실에는 보통의 월요일 아침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적당한 소음과 웃음소리가 있었다. 내 바람과 달리 회사 내 자리에 들어가면서 몇몇 사람들을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탓에 ‘누구지?’ 하고 알아보는 시간 0.5초. ‘어머 로란님이네?’라고 놀라는 시간 0.5초. 그리고 반가운 혹은 걱정하는 표정 1초. 다양한 표정과 감정이 흘러가는 게 하나하나 눈에 보이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지막은 늘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웃는 얼굴이었다. 나는 나대로 평소 같은 웃음을 띠며 그 사람들을 지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내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점점 평안함을 찾아갔다.


회사에는 비밀이 없다. 소문은 이미 일파만파 퍼진 상태였고, 가까운 분들은 직접 내 자리로 와서 내 얼굴과 표정을 살펴주었다. 내 눈치를 보면서 수군대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아니 있었다 하더라도 내 눈에 띄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내가 워낙 긍정적이기도 하고 그런 부분은 무뎌서 못 알아챈 걸 수도 있겠다. 이럴 땐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내 성격이 참 다행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 알게 되었는데, 누군가는 내 소식을 듣고 작은 회의실에서 혹은 화장실에서 엉엉 울었다고 한다. 누군가는 이 상황에 대해 화를 냈다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두려워서 나에게 메신저도 못 보냈다며 뒤늦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무실의 대부분 사람들이 이번 정리해고의 대상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었고, 잘못도 없었으면서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애써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 모두는 생존자 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나도 그 대상자가 될 수도 있었겠구나.'

'나만 살아남아 미안해.'

사람이 다치고 죽는 사고가 아닌 그저 회사 생활임에도, 일부는 당사자로서 절망했고, 나머지 대다수는 살아남아 미안해했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보다 상당히 괜찮았다. 그때도 의외로 괜찮았고 지금은 더욱 괜찮다. 물론 긴장은 했지만 그래도 내 정신 상태를 붙들어 맬 정도로 괜찮았기에 회사를 출근했고 사람들과 마주했고 나는 괜찮다고 안부를 전했다. 어릴 때 복도에서 분필 지우개를 피구공처럼 던지며 놀다 선생님에게 걸렸을 때도 자율학습시간 땡땡이치다 학생주임에게 걸렸을 때도 매는 먼저 맞는 게 나았다. 매를 먼저 맞으면 더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때처럼 혼날만한 잘못이 없다. 그래서 억울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당당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애정 어린 걱정과 신경 써줌에 감사했다. 그런 말 있지 않나? 내가 바닥일 때 진짜 내 편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고. 이번 일을 당하고 나서 돌아보니, 내 주변에는 내 편이 참으로 많았다. 티 나지 않은 배려와 관심에 감사했다. 안부를 가끔 물어보되 그 일의 전과 다름없이 나를 대했고 나와 업무를 논의했고 일을 진행했다.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과 생각을 지지한다고 표현해 주었고, 실용적으로 도움 되는 경험과 조언을 보내주었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어깨 펴고 회사를 계속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한테 미안해하지 말라고. 이건 나의 잘못도 너의 잘못도 아니다. 그리고 미래를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막상 그 일이 나에게 닥치니 겪을 만했고 오히려 나는 더 단단해지고 나를 믿게 되었으니, 너 또한 그럴 수 있다고.





keyword
이전 02화왜 하필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