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운전하다 횡단보도 파란불이 켜져 정지해 있는데
마침 맨 앞이라 내 차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면
이런~ 러키비키잖아! 라며 사진을 찍는다.
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설명을 한참 듣다가
그 목소리에 집중하는 나 같은 사람들을 발견하면
슬그머니 뒤로 빠져나와 뒤통수를 맨 뒤에서 찍는다.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레밍스처럼 줄지어 이동하는 무리들을 발견하면
또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모두 다른 사연을 품고
달고 짜고 시고 쓰고 매콤한 이야기들을 품고
고유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사람들이지만,
무리 지어 있는 모습에서
파동들이 겹치고 상쇄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와글거리는 이야기들이 모두 단번에 입을 다물어버려
고요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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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 보면
관찰자가 되어 멀리 지켜보다
슬그머니 한 발짝 들어 그 무리 속에 들어간다.
그러다 내가 그가 되고 그녀가 되어
1인 2역, 3역을 자처하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바탕 소란을 떨기도 한다.
사소한 한마디에 상처받고 돌아서는 모습에
어느새 그 애 편이 되어 버리고
심술과 질투가 일어 눈앞에 있는 듯 화를 내기도 한다.
고구마 백개 먹은 듯 답답하다
찌질하고 구차한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울컥해서 훌쩍거리기도 한다.
누구라고 지칭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순간 그 모두가 동시에 내가 된다.
타임캡슐에 모조리 넣고 땅 속에 깊이 묻어버려
내 생애는 다시 튀어나올 일이 없을
드러내놓기 치졸한 면면들.
짜증이 스멀스멀 밀려오기도 한다.
내용이 난해하거나 문장이 어려워서이기보다는
그 인물들에서 나의 어두운 면을 발견할 때가 그렇다.
그러다 책을 덮고 나면
고뇌하고 짜증내고 울다 웃었다.
인물들의 목소리가 사그라들고
밋밋한 무리의 행렬만 보인다.
그래 그랬었지 같은 옅은 기억과
따뜻했다, 서늘했다, 씁쓸했다, 찝찔했다 같은
가짜 감각만 채에 걸려 남아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그 안에 숨어있는 이야기를 상상하며
멀찍이 떨어져 사진을 찍었었는데,
그 안에는 사실 내가 숨어있었다.
들킬까 두려운 이야기를 품 속에 숨겨두고
아닌 척 괜찮은 척
무관심한 얼굴로 서있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문뜩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