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을 꿈꾸던 소녀는 가끔 바다가 그립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와 친구들은
대학만큼은 서울로 가서
부모님의 간섭을 피해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겠다는
소박하고 원대한 꿈을 꾸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스펙을 쌓겠다거나
넓은 물에서 놀아 큰 사람이 되겠다는
그런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담한 나만의 집(사실상 방)을 얻어
친한 친구들을 불러 둘셋이서 파자마파티도 하고
예쁜 것들로 침대를 꾸미고
세련된 언니야가 되는걸 먼저 기대했었다.
그러나 기숙사 입실을 위해 찾아간 검진센터에서부터
내 말을 못알아듣는 간호사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했고,
나는 그분의 사근사근한 서울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네? 뭐라고요?" 여러 번 묻고 여러 번 대답했다.
같은 한국어로도 소통이 안 되는 걸 겪은 후,
입학 오리엔테이션부터 사투리 없애기에 돌입했다.
친구들은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썼지만,
외국어 공부하듯 친구들의 말투를 따라 했다.
그러다 충청도 말투에 전라도 사투리가 나오기도 했고
수원 사투리에 경상도 단어가 섞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다국적이 아닌 다도시인이랄까.
그러다 사귄 서울 남자친구에게
세련된 서울말을 예쁘게 쓰고 싶었던 나는
엄마에게 전화오면 재빨리 도망 나가 전화를 받았다.
그의 앞에서 혹시라도 부산 사투리가 튀어나올까 봐
조심스러웠다.
"부산 출신이야? 그럼 오빠야~ 한 번만 해주라."
선배들의 장난 섞인 요청을 매서운 눈으로 쏘아주었고,
"야, 너네 집에 배 있냐?"라는 친구들에게는
"그럼 너네 집에는 헬기 있냐?"라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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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던 데로 부산은 탈출했지만,
주말이나 명절에 부산 다녀오는 길은
두고 온 가족과 유년의 기억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럼 음악을 틀고 창문에 기대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어둑해진 저녁,
빌딩과 한강 사이를 기차가 지날 때 즈음
헛헛한 마음을 달래곤 했다.
주변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변해버려
설레면서도 동시에 두려웠던 그때는
부산을 떠나 서울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이제는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
부산을 많이 닮은 바다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러니 지금 이 시간, 이곳을 사랑해야겠다.
매일 부딪쳐 특별할 것 없는
먼지 한 톨 같은 오늘도
돌아가고 싶은 그때가 될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