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찾아간 어느 여름날
할머니는 작년 여름과 가을 사이 돌아가셨다.
그날 화장터에서 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에어컨만으로는 답답했던지
창문을 열고 지나가는 논밭과
멀리 나지막한 산과 하늘을 지켜보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도착한 산 입구에
아름다운 소나무 숲이 펼쳐지는 그곳에
할머니 유골을 모셨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 그곳을 다시 들렀다.
여름 뜨거운 태양과 충분한 수분에
풀은 무릎을 넘어 허리까지 자랐고
풀독이 오를까 봐 엄마는 긴 옷을 챙겨 입었다.
사촌이 휘휘 저어 만든 길을 엄마와 한 줄로 따라갔다.
이내 도착한 소나무 숲에서
한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지겨움에 기지개를 켜듯
구불구불 비틀린 소나무를 발견했고
할머니를 발견했다.
기억하기 좋으라고 그 소나무를 선택했었던 건데,
이제보니 소나무는 우리 할매가 굽은 허리를 겨우 펴고
섰을 때처럼 구부정했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무늬는 하나도 똑같지 않지만,
모아두니 비슷한 듯 오밀조밀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전체가 다 쩍쩍 갈라져
우리 할매 쪼글쪼글했던 손등 같았다.
자식들이 말려도
맥심믹스커피를 하루 다섯 잔 이상 타먹던 할매는
요양병원에 있던 시절 엄마가 가끔 사가던
캐러멜마끼아또와 편의점 달달한 커피를 참 좋아했다.
그게 생각나 달달한 커피 한잔과 소주 한 병을
소나무 발치에 조록 조록 부어주었다.
엄마요, 우리 왔어요.
엄마는 엄마를 나지막이 불렀다.
조용히 소나무만 바라보다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괜히 사촌동생에게 허리는 괜찮은지 벌이는 괜찮은지
꼭 지금이 아니어도 되는 말을 나누다가
이내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돌아 내려갔다.
유골은 그곳에서 일 년이 지나면서
땅에 흡수되고 일부는 소나무에도 흡수되고
공기 중으로도 날아가고 여기저기 퍼져
사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어디선가는 미약하게나마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일 년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나면
할매 허리를 닮았던 소나무를 타고 밖으로 쭉쭉 뻗어
어쩌면 서울까지도 올 수 있는 것은 아닐까.
**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집은
혼자만 조금 더 나이가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요양병원에 모신 후부터
시골집을 어떻게 할지 친척 사이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 시골집은 다행일지 아닐지 여전했고
다만 여름 태양빛에 마당에 조금 남은
고춧잎, 호박잎, 방울토마토, 이름 모를 풀들이
혼자서 바스락거리고 있었다.
엄마는 외숙모와 나에게
늘 하던 그때 이야기를 꺼냈다.
옛날에 여기 석류나무가 있었고,
그 옆에 얼음같이 차가운 물을 펌프로 길어 올렸었고,
대문 입구에 있던 그 꽃나무 삼촌이 참 좋아했었고,
청마루에 앉아서 마당을 돌아다니는 꼬꼬들을 보았던,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처럼
마루 위에 식탁 위에 풀어 늘어뜨려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가 생각나 이 동네에 오면
추억할 곳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이
엄마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기억하던 할머니 집은
꼭 우리 할매 굽은 등처럼,
할매를 품은 소나무 굽은 줄기처럼,
할매 닮아 쪼글쪼글해지는 우리 엄마 손등처럼,
시간에 닳아
점점 바래지고 작아지고 쪼그라들고 있었다.
자꾸자꾸 작아져서
혹시라도 사라질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잘 가라고 대문 밖으로 배웅 나온 외숙모 손을 꼭 잡고
KTX 포항역으로 데려다준 사촌동생 팔을 꾹 잡았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KTX에서 엄마 팔짱을 꼭 꼈다.
엄마요, 내 왔다.
라던 엄마 목소리가 귀에서 계속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