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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란 Nov 11. 2024

가을이 오는 대전에서 문우를 만나다

오늘 하루도 우리는 작가, 일 년 십 년이 지나도 작가

나이도 하는 일도 성격도 모두 다르지만,

글을 쓰고 작가가 되겠다는 한결같은 꿈을 꾸고 있는

문우를 만나러 대전에 갔다.

인생 선배인 분을 문우라 해도 좋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글로 연결된 인연이라 그보다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대전에 사시는 내 문우님은 원래 서울사람인데

어쩌다 대전에 터를 잡아

이제는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도슨트와

도서관 사서와 작가라는 프로 N잡러의 길을 걷고 있다.


늘 돌덩이처럼 무거운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당일치기로 서울에 와서 글을 합평하고

성북동 언덕배기 냉면가게를 함께 가고

마곡의 다른 문우가 하는 커피가게를 가곤 했다.

그 무거운 가방에는 오가는 KTX에서 볼 책,

우리를 위한 책 선물들이 가득해

이동하는 서점인지 책을 팔러 온 보따리상인지

아무튼 그 작은 어깨가 무너질 것 같아

냉큼 그 안의 책 선물을 받아 들었었다.


대전에 간다고 하니

성심당과 유명 칼국수 원조점을 소개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대전시립미술관 옆에 있는

브런치 카페를 갔고

대전엑스포 시민광장과 한밭수목원을 걸었다.

그곳은 장미, 수국, 단풍, 소나무 같은 꽃과 나무들이

오밀조밀 자신만의 영역을 지키고 있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지도에서는 상당히 넓은 대지의 수복원이지만,

직접 걸으니 그보다는 소담스러운 정원 같은 곳이었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따가운 가을빛과

그 빛을 반사하는 연못 연꽃 사이 윤슬을 함께 보았다.


문우님이 근무하는 시립미술관 열린 수장고에는

주기적으로 바뀌는 작가기획전도 있지만,

열린 수장고라는 명칭에 걸맞게

백남준 프렉탈 거북선이

과거의 위용을 뽐내며 되살아나 있었다.

작은 모니터 하나하나도 거북선이며

그 모두가 모인 전체도 거북선.

프렉탈은 가까이 보아도 멀리 보아도

같은 의미와 형태를 유지하는 현상을 말한다.

가령 지도에서 보아도 실제로 그곳에 가도

똑같이 꼬불꼬불한 남해바다 해안선 같은 것.

그것이 프렉탈이다.


문우님의 설명을 들으며

열린 수장고의 작품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당당하고 화려한,

지금이라도 용머리에서 불을 뿜을 것 같은 거북선은

아쉽지만 컴컴한 천장이 있는 지하에서

보이지 않는 불을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여기에 있소라고 고함을 지르는 듯했다.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보다

거북선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조각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어스름 해가 지면서 공기가 차가워질 때쯤

아쉬운 마음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 더 마셨고

택시를 타고 대전역으로 갔다.

택시기사님은 서울에서 왔다면서

성심당도 안 가고 칼국수도 안 먹었냐고

이런 특이한 손님은 처음 본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 들으니 못 가서 아쉽다기보다는

다른 시선으로 대전을 즐겼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자연스럽게 오늘 하루를 복기했다.

노란색 붉은색 물들었던 공원의 단풍들,

그 단풍에 어울리던 하늘,

왠지 한적하고 자유로운 대전의 시내 풍경,

그리고 가까이 보아도 멀리 보아도 거북선인 거북선

헤어지며 우리 꾸준히 글을 쓰자고,

약속일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일지,

새끼손가락은 걸지 않았지만 인생을 건 기분.


그러니 나의 오늘 하루도 작가,

내일도 작가,

내일모레도 작가.

갈피를 못 잡고 여기저기 헤매고 있지만,

그 모든 발걸음과 시선, 손짓, 글, 만남이

모두 작가가 되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가까이 보아도 작가,

멀리 두고 보아도 작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지금을 돌이켜봐도 작가.

읽고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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