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동네 서점, '한낮의 바다'에서
가끔씩 또는 처음 들르는 동네에서는
그곳을 지키는 작은 서점, 독립 서점, 북카페를
잠시 시간 내어 들러보곤 한다.
좋아하는 책들을 발견하면,
책방지기와 같은 취향에 내적친밀감이 올라가고
낯선 책들을 발견하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에 왠지 조금 설레어
책방지기가 적어둔 메모를 한번 더 들여다본다.
강릉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동네 작은 서점, 한낮의 바다를 찾았다.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어 일요일 오후가 한가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양쪽 도로변 주차된 차,
구불거리는 완만한 내리막 도로가
유럽 어딘가 오래된 작은 마을길을 연상시켰다.
그 길 위로 작은 공방과 카페들이
띄엄띄엄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책방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로변 주차장을 찾았다.
측면 주차를 하는데,
오른쪽 구석에서 끽하는 작은 마찰 소음이 들렸다.
브레이크를 잡고 핸들을 돌려 다시 뺐다가
더 여유를 두고 돌려 주차를 완료하고 내려보니
앞에 서있던 택배차의 모서리 툭 튀어나온 금속에
차 오른쪽 구석이 손가락 길이만큼 긁혀있었다.
작은 한숨이 새어 나오며
그것도 못 봤냐는 자책과
카메라에는 보이지 않았다는 억울함이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동행한 친구들과 책방을 가기 위해
빨리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긁힌 차 앞에서 상한 속을 꾹꾹 눌러 삼켰다.
그러니 좋아하는 책방에 갔지만,
그 멋진 큐레이션과 지갑을 유혹하는 노트들이
금방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우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책을 고르느라 바쁜 친구 옆에서
책은 보는 둥 마는 둥,
긁힌 차 모서리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가 누구 때문에 강릉까지 왔는데.
나만 빼고 다들 즐겁지.
하지만 책장 넘기는 소리와
가끔씩 속삭이는 소리만이 가득한 책방에서
눈앞의 책과 책방지기의 메모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친구를 붙들고 하소연을 할 수도,
짜증 섞인 한숨을 푹푹 내쉴 수도 없었다.
11월이지만 9월 같은 포근한 햇빛이 들어온 책방은
책장에서 나온 미세한 먼지들이
따뜻한 공기 덩어리를 만들어 여기저기 둥실 떠다녔다.
그 공기에 섞인 종이 냄새가
코를 통해 폐로 뱃속으로
마침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이내 멍하게 만들었다.
책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지나가며
여성 작가들의 책을 모아둔 선반을 보고
시인들의 시집과 에세이를 보고
2025년에 쓰면 좋을 노트들을 보고
난다 출판사에서 나온 시의적절 시리즈를 보고
일본 철학자가 쓴 에세이를 들었다.
아즈마 히로키의 <느슨하게 철학하기>
책 내용은 모르겠지만 제목에 눈길이 갔다.
'철학자가 나이 드는 법'이라는 부제도 맘에 들었다.
목차를 보지도 않고 한 권 집어 들었다.
**
집에 와 여행짐을 풀다
이 책을 싸고 있는 비닐을 벗겼다.
왜 샀을까 생각하다
다시 긁힌 차 우측 모서리가 생각났다.
나는 그냥 좀 느슨해지고 싶은 거였다.
책방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하자고
그렇게 타이트한 공간을 고르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그저 조금 긁힌 거라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운전에도 아무 문제가 없으니 심각한 건 아닌 거였다.
그래도 왕복 여덟 시간을 운전하는 노고를
이런 식으로 대갚음당한 것 같은 억울함은
내가 아닌 친구 전시 일을 도와주고자 오느라
정작 나를 버리고 있었던 시간들 때문이었다.
강릉 바다를 보았지만 충전되기보다는 소진되었다.
첫 개인전을 하게 된 친구가 부럽고 대견했는데,
그럼에도 바라는 기획이 아니라 실망하는 그의 앞에서
더욱 초라해지는 나의 질투 때문일 것이다.
비효율적이라고 보일 정도로
타이트하게 채찍질하며 살고 있다.
그게 흘러넘쳐 주변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조금 느려도 돼.
늘 원하는 데로 흘러가지 않아도 돼.
조급하지 않아도 돼.'
아무것도 아닌 뻔한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열어보지도 않은 책 앞에서
그저 제목만 보고 울컥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