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알고 보니 자유를 얻은 것이었어요 (5편)
직장인이 되어 처음 배운 것은 명함인사였다. 대행사 특성상 광고주, 매체사, 미디어렙사 등 외부 담당자들과 인사 나눌일이 비일비재했는데, 늘 첫만남은 명함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 때 상대방이 명함에 적힌 내 이름을 바로 읽을 수 있는 방향으로 준다거나, 두손으로 공손히 먼저 주고 상대방 것을 받는다거나 하는 것은 비즈니스맨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런 기본도 못할 경우에는 ‘미팅을 해보지 못한 애송이구나’라던가 ‘에티켓도 제대로 못 배웠나봐’ 라는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고, 미팅 시작부터 살짝 삐거덕거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오늘은 비록 병풍역할이지만, 선배들의 소중한 미팅을 망치지 않기 위해 나는 신입사원의 기본을 제대로 보여주고 ‘여기 신입 교육 잘시켰네’라는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명함은 회사 이름과 내 이름, 직책 등을 보여주는 작은 종이를 넘어 내 얼굴, 간판, 신분증이 되었다. 늘 지니고 다녔고,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명함이 없는 건 크나큰 결례였다. 을의 역할을 하는 대행사를 다니다보니, 내 명함은 지니의 램프였다. 명함에 적혀있는데로 연락하면 언제든 나와 통화하거나 메일을 주고받거나 미팅을 할 수 있게 되는 프리패스가 되었다. 특히 램프를 문지른 사람이 광고주라면, 나는 언제나 그의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되어 세 개가 아닌 백개의 소원도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밤낮없이, 주말도 없이. 이렇듯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았기에 노트북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명함이었고, 이 명함을 주고받는 순간을 위해 명함 지갑을 심사숙고해서 엄숙히 골랐다. 20대 아직은 어리던 시절, 회사를 이직한 후 처음으로 큰맘 먹고 백화점 명품 코너에서 명함 지갑을 고른 적이 있었다. 당시 내 수준에서는 나름 큰돈이 들어간 물건이었기에 의기양양하게 회사에 가져갔는데, ‘이건 나는 줘도 안 하겠다’라는 말에 크게 충격을 받았었다. 상대방은 내가 아직 어리니 돈을 주고 명함 지갑을 샀으리라 생각하지 못했고, 어디 업체로부터 받은 선물 정도로 생각하고 던진 말이었는데, 그 충격으로 나는 그 지갑을 엄마에게 카드지갑으로 선물했고, 다시는 백화점에서 명함 지갑을 사지 않았다. 나의 20년 명함에 얽힌 사연들은 참 구구절절하고 직장인의 애환이 서려있으며 보고 들은 이의 눈물과 웃음을 쏙 빼기 때문에 언젠가는 ‘아무튼, 명함’으로 출판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무튼, 그렇게 내 간판이 되고 신분증이 되어 소속감을 주고 사회안전망 안에 있다는 안심을 주었다가, 지니를 붙들어 맨 램프가 되고 그래서 수갑처럼 갑갑하게 했던 그 명함이 이제 나는 없다. 그렇다 나는 얼마 전 회사를 퇴사했고, 이젠 누구를 만나도 나를 소개하며 건넬 명함이 없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건넬 명함이 없다는 건 매일 먹는 낫토가 냉장고에 없을 때의 당황함, 운전용 안경 없이 차를 몰고 나갈 때의 불안함, 그리고 왼손 가위질로 고기를 잘라야 할 때의 어색함, 패티큐어를 하지 않고 여름 샌들을 신었을 때의 부끄러움과 조금 비슷했다. 쉬지 않고 일하는 근로자의 존재를 그간에는 명함이 증명해주고 있었는데, 지금 그 증거가 없으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성실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 말이다. 얼마 전 퇴사 직후에 갔었던 업계 모임에서 ‘제가 명함이 없어서요.’라며 다른 사람의 명함만 꾸역꾸역 받아왔던 기억이 났다. 한 번도 아니고 예닐곱명 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로란이라고 합니다. 제가 명함이 없어서요’라고 인사하며 받기만 했더니, 그게 참 어색했고 내 빈손이 밉상이었다. 비록 초대받고 간 자리였지만, ‘내가 여기 오길 잘한 게 맞나?’라며 수십번은 생각했었다.
명함 하니 얼마 전 일이 생각난다. 회사를 퇴사하고 가야금 연주자가 된 (그러나 가야금 전공자는 아닌. 정말 대단하다!) S 언니와 함께 베이킹 원데이 클래스를 갔을 때 일이었다. 그 클래스에는 내 전 직장 회사 동료가 몇 명 있었는데, 언니와 처음 인사 나누게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기소개와 함께 명함을 전달하게 되었다. 언니가 꺼낸 명함을 슬쩍 보니, 거기엔 ‘가야금 연주자’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와~! 멋지다!’ 직장명은 없었지만, 직업이 분명했던 그 명함이 멋있었고, 나는 감탄했다. 얼마 전 만난 후배가 점심 식사 후 헤어지면서, ‘이제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찾는 시대죠’라고 했었을 때, 그 녀석이 좀 멋있어 보였던 것과 비슷했다. 회사 이름이 주는 안정감과 후광에 기댈 것이 아니라 내 직업의 전문성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로 나는 그 말을 이해했고, 앞으로 뭐 하고 살지? 라는 고민의 실마리와 방향을 정리하는 데에 어떤 힌트를 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직장이 아닌 ‘가야금 연주자’라는 문구가 적힌 그 명함을 건네는 언니의 우아한 모습에서 나는 그날 부처님이나 예수님 그림에서나 보던 후광을 잠시 보았다.
회사를 나오고 한동안은 명함이 없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제가 명함이 없어서요.’라고 말할 때마다 회사에서 통보받고 나오던 그 시기가 떠올랐고, 내가 지금 무용의 백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을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S언니의 명함을 보니, 좋았다. 회사가 아닌 언니가 먼저 보이는 그 명함이 멋있었다. 나도 그래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아니라, 내가 먼저 보이는 명함을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어딘가 소속되지 않고, 후광이 없어서 오롯이 나를 볼 수밖에 없을, 그래서 원점으로 돌아온 지금의 내가 더 좋은 것 같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있기에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새하얀 도화지가 되어버린 지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