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알고 보니 자유를 얻은 것이었어요 (2편)
소위 말하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외국계 회사로 처음 이직했을 때, 영어를 많이 써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작고 소중한 빈백과 휴식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회사에 다닐 때는 직원들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자투리 공간이 있었다. 사무용품, 복사기, 팩스기 같은 것들이 있는 공간과 건물 기둥 사이 애매하게 남은 공간이었는데, 한 명이 앉거나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에 빈백(몸의 움직임에 따라 자유롭게 형태가 변형되어 편안한 소파같은 가구)이 놓여있었고 좌우는 커튼을 칠 수 있어 외부와 단절되어 혼자만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가끔 점심을 거르고 그곳에서 꿀 같은 개인 시간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고, 전일 과음에 지친 직원들이 눈치껏 숙취 해소 낮잠을 즐기기도 했었다. 꼭 그 휴식 공간이 아니다 하더라도 일부 직원들은 빠르게 점심 식사를 끝낸 후 자기 자리에서 쿠션을 꼭 끌어안고 책상에 엎드려 짧은 단잠을 즐기기도 했다. 휴식 시간을 갖는 것을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나 또한 짧은 휴식으로 오후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첫 번째, 그리고 올해 이별한 두 번째 외국계 회사는 그런 휴식 장소가 없었다. 책상과 컴퓨터만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직원들끼리 커피 한잔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파와 테이블 들이 군데군데 있었고, 어떤 공간에는 안마의자가 있어서 오랜 컴퓨터 작업으로 뭉친 어깨나 등, 목을 풀기에 좋았다. 그런 공용 공간은 한국 회사에서 보던 것보다 더 널찍하고 깔끔하게, 혹은 아늑하게 꾸며져 있어 보기에는 더 여유 있고 휴식하기 좋아 보였다. 그러나 그 장소는 칸막이나 방, 커튼 등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았고 공개된 곳에 놓여있었다. 조용한 휴식보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꾸며진 것이다. 안마의자도 한국 대표 책상 바로 근처에 있어 야근할 때 한 번 써본 것 말고는 좀처럼 가보지 않았다. 잠시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즐기는 직원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점심 후 짧은 낮잠 같은 휴식은 좀처럼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장소도 장소지만, 낮잠 같은 일종의 흐트러진 무방비 상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모든 책상에 칸막이가 전혀 없어 앞자리 옆자리 동료들이 뭘 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것도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한몫했다. 그래서 나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강도 높은 업무를 가능한 빠르게 해치우고 휴식은 집에 가서 취하는 것으로 몸의 컨디션을 조절했고, 그러다 보니 평생 입에 대지 않던 커피를 그때부터 매일 찾게 되었다.
최근 이별한 글로벌 회사는 휴식 장소가 없다는 것 외에 업무 스타일이 한국 회사와 아주 달랐었다. 이를 파악하고 적응하는 것이 나에게는 불편하고 쉬이 해내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어딜 가도 적응이 빨라 주변을 놀라게 했었는데, 유독 이 회사에서는 그게 힘들어, '로란님 이제 다 적응한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를 매니저로부터 듣기까지 일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 회사에서는 내가 알아서 목표를 세우고 할 일을 정하고 성과를 만들고 포장해야 한다. 물론 회사가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고, 정량적 정성적 목표는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할지는 순전히 나에게 달려있다. 아무도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거나 방향을 제시하거나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운 좋게 회사의 목표와 연결되는 나만의 목표를 세웠고, 나름 성과도 만들었다면, 이제는 알아서 아름답게 포장해야 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는 점심시간이나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을 통해 사람들에게 내 목표와 의도 들을 영화 예고편처럼 공유하기도 한다. 일이 시작되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틈틈이 공유하며, 프로젝트를 완료한 후에는 성과를 멋있게 작성해서 사내 게시판에 올린다거나 주간 회의 및 월간 회의에 발표한다. 이 모든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하고, 잘난 척 같은 것들이 빠져야 하며, 너무 자주 공유해서 그 프로젝트가 식상해져도 안 되고, 너무 가끔 공유해서 저 사람 뭐 하고 있지 하는 의심을 만들면 안 된다. 공유하는 내용은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정보나 교훈이 포함되어야 하고, 내가 한 일을 그저 알아달라는 식의 공유는 삼가야 한다. 나는 이걸 ‘개인이 하는 정치’라고 부르며, 이 정치를 잘해야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평가와 인사고과에도 유리하다. 내 상관만 알아줘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가 없다. 평가는 위, 아래, 옆으로 모두 진행되기 때문에 내 주변에서도 내가 일을 잘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내 상사는 나에게 좋은 평가를 가져다줄 수 있다.
일이 그렇게 진행되다 보니, 코로나가 극성이어서 재택 근무하던 시절 업무강도는 더욱 강해졌다. 회사에서는 오며 가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 나누며,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은근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같이 프로젝트를 할 사람들을 그런 시간을 통해 모으고 설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요즘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함께 일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근황, 프로젝트를 발의해서 주목받을 기회 같은 것들을 포착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에는 영 어려웠다. 그러니 사람들은 서로 만나기 힘든 와중에 나를 더 알리고 인정받기 위해 더 많은 프로젝트,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고자 고군분투했다. 짧은 소통들이 부재하니 미팅은 미친 듯이 불어났고, 어떤 날은 단 1분의 틈도 없이 스케줄표에 화상 미팅들이 빽빽이 자리 잡았다. 미팅이 끝나고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려면 다음 미팅에 늦어져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습관이 될 지경이었다. 집은 집이 아닌 업무 공간이 되었고, 휴식 시간은 사라졌으며, 그 정치라는 것을 하기 위해 두세 배의 노력을 들였다. 그리고 그때의 과로와 스트레스로 내 왼쪽 뒤통수에는 동전 사이즈만 한 원형탈모가 생겼다.
한국 대기업에서는 대체로 업무와 목표를 팀/부서 단위로 수립하고 성과를 만들어냈으며, 그 안에는 위계질서가 존재했다. 그렇다 보니 상사의 업무지시로 추가로 해야 하는 일들도 당연히 생겼다. 함께 일하기 꺼려지는 사람이나 팀일지라도 임원이 하라고 하면 해야 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목표를 세우고 성과를 만들고 평가받기까지 모든 것을 내가 책임져야 하므로 누가 시킨다고 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원래 계획에 차질이 생겨 내 인사고과에 문제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그래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직접 나서 설득해야 한다. 설득에 실패해도 그 윗사람을 찾아가면 안 된다. 대부분 '너도 설득 못한 것을 내가 왜 설득해야 하냐? 너의 일이다.'라며 거절당할 것이 뻔하다. 그럼 설득도 못 하면서 요행을 바란 것이 들켜 매우 창피한 지경에 이를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소 내가 하는 일과 성과 들을 꾸준히 공유하여,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일하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저 사람과 함께 일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평소에 미리미리 작업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에 대한 평판이 긍정적으로 형성된 후 그를 찾아간다면 조금 더 쉽게 설득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회사의 업무 스타일은 밤새 이야기하더라도 부족할 수 있다. 나보다 먼저 이 회사에 합류했던 친구는 얼마나 특이한지를 설명하는데 맥주 두 캔과 하룻밤을 통으로 다 썼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 단정 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회사 직원들은 백조처럼 여유 있고 우아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속으로는 스트레스에 속이 곪아 원형탈모가 생기더라도, 겉으로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여유 있는 척 일하며, 빈백 같은데 누워서 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말과 글로 내 성과는 드러내고, 행동과 표정, 옷차림으로 내 이미지를 완성한다. 그래서 자기 검열도 심하다. 일하기에도 바쁘지만 사람 들과도 잘 지내야 한다. 관계가 좋으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렇다고 선을 넘지는 않는다. 관계나 집단보다는 개인이 우선이다. 한마디로 좀 특이하다. 다른 업계나 회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이 회사에서 겪는 고충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다. 코로나 때 너무 힘들어서 원형탈모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꺼냈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재택이라니 좋겠다. 집에서 노는 거 아냐.'라는 부러움 섞인 한마디였다. 그래서 회사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가족이나 친구들과는 하지 못하고 다시 회사사람들과 하게 되는 순환구조를 만든다. 같이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가끔 여행도 떠난다. 맨날 보는 회사 사람과 주말을 이용한 여행이라니,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술자리에서 직원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특이한 회사에서 적응한 거면 다른 어느 회사에 가서도 잘 적응하겠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 말은 '나는 이런 회사에서 적응할 만큼 노력했고 대단해. 나는 우아한 백조처럼 일 멋지게 했어.'라고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회사에 적응하려고 나를 그 공기에 폭 담갔더니, 너무 동화되어서 내가 회사가 되어버렸었다. 내가 변하고 사라졌다. 눈빛과 표정이 변했고, 쓰는 단어가 달라졌으며, 말투가 변했다. 이어서 성격이 급해졌고, 이야기가 금세 전달되지 않으면 답답해하고 말을 자르거나 자리를 피했다. 백조처럼 일한 나에게 도취되었고 내가 맞다고 생각했었다. 회사사람들과의 저녁 자리가 늘어났으며, 이 세계가 전부인 양 행동했다. 그렇게 나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갔고, 그걸 깨달을 때쯤에는 이 회사에 적응하며 생긴 단물 때문에 그 우물을 쉬이 벗어날 수가 없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고, 여전히 백조처럼 콧대 높고 기세등등했다.
글로벌 정리해고는 그렇게 콧대 높은 직원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회사 이름을 덜어내니 우리는 백조도 아니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회사가 특이해서 힘들다, 여기에 적응한 우리는 대단하다'며 자신을 칭송했지만, 회사 밖은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두려웠다. 잘난 우리는 회사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억울해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를 숨기고 스스로 고립되고 외로워했으며, 어떤 이는 불명예를 덮기 위해 빠르게 비슷한 회사로 이직했다. 그리고 여전히 백조처럼 우아하게 지내고 있다.
나는 몇 번의 좌절과 함께 백조처럼 우아하게 살기를 그만두고,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바깥세상을 탐구하고 있다. 누가 더 맞는 선택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두 선택 모두 의미 있고 배움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내가 하지 않은 선택이 부럽고 내가 한 선택이 두렵긴 하지만, 일단은 갇혀있던 우물을 벗어나 좀 더 큰 세상을 겪어보려 한다. 커튼 속에 숨겨진 빈백 같은 작은 휴식처에서 긴장을 풀고 쉬어보려고 한다. 그래야 인생 후반전에 더 힘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