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

2장. 알고 보니 자유를 얻은 것이었어요 (4편)

by 니나

한국에서 가장 잘 안 지켜지는 약속을 꼽으라면 ‘언제 밥 한번 먹자’가 TOP3 안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분명 그 말을 할 때는 ‘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너와 대화하고 싶어. 너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너를 더 알고 싶어’와 같은 마음일 텐데, 회사 일이나 가족 대소사에 치여, 루틴이나 컨디션 난조에 밀려 그 ‘언제’는 가끔 영원히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나 또한 그 말을 지키기가 쉽지 않아, 언젠가부터는 ‘밥 한번 먹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 언제 시간 되는데? 시간 잡자’라고 응수한다. 운이 좋으면 그 언제는 당장 다음 주가 될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두세달 뒤가 될 수도 있다. 그마저도 다행이다.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일 년에 한 번 볼 수 있으면 다행일 때도 허다하다.


나의 퇴사 축하 회식 2차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코로나로 재택하다보니 회사에서 얼굴 보기가 힘들었고, 그래서 각자 집 근처나 중간쯤의 카페에서 만나 같이 일하거나, 함께 식사하는 일들도 있었던 에피소드 들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제가 로란님한테 언제 한 번 우리 집에 놀러 와요~ 라고 했거든요. 진짜 올 줄 몰랐는데, 로란님이 진짜 왔었어요. 전화가 와서 놀러 가도 되냐고 해서 그러라 했더니 지금 당장 간다며, 제가 다른 화상 미팅 중이었는데, 왔었어요. 전 직장에는 회사 사람들이 집에도 놀러 오기는 했는데, 이 회사에서는 로란님이 처음이었어요.”

“우리 집에도 왔었어요~ 집 근처에서 같이 콩국수 먹고 수박 사 들고 왔었어요.”

“로란님 우리 집에도 와서 고양이랑 같이 놀았어요.”

“전에 저한테 집 어디냐 물어보더니, 알려주면 왔었을 수도 있겠네요. 절대 안 알려줘야지!”

아마 회사 사람들 집에 가장 많이 가본 사람이 나였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사람들은 신기했던 경험담을 공유하듯, 깔깔거리며 나를 놀렸다. 그냥 한 말에 그런 식으로 집을 트냐고 황당해했는데, 그래서 싫었냐 물어보니, 전 직장 사람들과는 친했는데 여기 회사 사람 들과는 잘 그러지 못해 아쉬웠었다며, 그렇게 가까워져서 좋았다고 했다. 나는 밥 먹자고 하면, 집으로 놀러 오라고 하면, 진짜로 한다. 진담과 아닌 말을 구분할 수 있는 섬세함도 없거니와, 혹시라도 진담인데 내가 놓치면 미안하니까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찾아간다. 그러니 나에게 빈말은 금물이다. 에둘러 표현하는 것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회사를 나오고 시간이 흐르니, 체력이 조금씩 회복되어 누군가를 만날 여유와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간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릴까 봐 ‘밥 한번 먹자’를 함부로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연락하고 찾아가기 시작했다. 옛날이야기도 하고 하소연도 하고 고민도 나누고 시시껄렁한 농담 같은 사업 아이디어도 같이 구상했다. 식당의 메뉴가 푸짐했다, 건강식이었다, 짜다, 비싸다 같은 비평도 하다가 같이 본 영화에서 이건 복선인 것 같다, 주인공은 왜 저랬을까, 감독이 누구야 라며 영화 평론가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지인들과, 친구들과 우정을 차곡차곡 적립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인과 친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들이 생긴다. 옛날 대기업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같은 팀의 친구 J와 내가 주말에 만난 이야기를 했더니, 같은 본부의 한 살 아래 동생이 신기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언니들은 정말 친하네, 주말에도 만나다니, 친구 맞네"

"그래? 너랑 Y도 친구잖아. 너희 둘은 주말에 안 봐?"

"응 나랑 Y는 평일에 회사에서 엄청 친하잖아. 그래도 주말에는 절대 안 만나. 주말에 회사 사람을 왜 만나?“

그 대화 이후로 회사에서 친한 사람, 즉 지인과 친구의 경계는 평일이 아닌 주말과 휴일에 만나는지로 나누어졌다. 그 기준에 백 퍼센트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명쾌해서 누군가와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지인인지 친구인지를 주말에 만난 적이 있느냐 없느냐로 쉽게 판단했었다. 하지만 그 동생과 Y는 너무너무 친했다. 아마도 어느 순간부터는 주말에 만난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런데 외국계 회사를 들어오면서 이 기준이 다시 애매해졌다. 외국계 회사 특유의 기업문화나 업무 환경이 있다 보니, 회사 일이 엮인 수다를 떨다 보면 한국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하소연이 필요한 속 답답한 회사 사람 들은 끼리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그 뭉침은 평일 저녁 맥주 한잔을 넘어서 주말 모임, 더 나아가 일박 이상의 여행까지 확대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부서 전체가 함께 이동하는 출장에는 그 앞뒤로 휴가를 며칠 붙여 마음이 맞는 동료들끼리 출장지 근처를 여행 가기도 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면, 여행을 비롯한 스포츠, 취미, 식도락 들을 평일이 아닌 시간까지 직장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었다. 이 즈음 되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랑 여행 다녀온 이 사람은 내 친구인가? 지인인가?


외국계 회사에 입사한 초반에는 출장에 휴가를 붙여 같이 여행 갔던 직장동료를 '여행'이라는 순간을 기준으로 지인에서 친구로 구분하여 인식했었던 것 같다. 같은 숙소에서 머물고 서로의 커피 취향을 알아가고 여행 스타일이 비슷함에 안심하면서 즐겁거나 고생스러운 추억이 같이 쌓이다 보니 부쩍 친해진 기분이 들었었다. 게다가 나는 친구들과 해외를 여행 가본 경험이 거의 없다 보니, 함께 가는 해외여행은 정말 특별한 이벤트였고 그 여행의 동행자는 자연스럽게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S는 직장동료에서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한번 여행 가고 마는 사이도 많았기에 나와 함께한 출장에 붙인 여행도 그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여행 후에 내가 그렇게 자기한테 들러붙었단다. 아마도 나는 S에게 우리 이제 친구니까 카페 갈 때, 음악 페스티벌 가고 싶을 때, 심심할 때, '뭐 할까? 같이 할래?'를 계속 물어봤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흘러 외국계 회사의 문화에 좀 익숙해지고 나니, 출장지에서 휴가를 붙여 여행을 함께 간다고 해서, 주말에 미술관에 같이 간다고 해서, 같은 방을 쓰고 모닝커피를 같이 마셨다고 해서 쉬이 지인에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다. 이 문화에 나도 동화가 되어버렸다. 비슷한 취향과 성향을 가진 좋은 직장동료 정도였고, 일과 평가 등이 복잡하게 얽힌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속을 털어놓는다거나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가 되기는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헷갈린다. 주말에도 만나고 취미활동도 같이 하는데, 그럼 우리는 친구인가? 아니면 친한 지인인가?


그러나 지금 이 휴식 시간에 '같이 밥 한번 먹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렴풋이 친구와 지인의 새로운 기준이 슬그머니 생겨나고 있다. 그건 '주말에 만나는' 것과 같은 객관적인 경계가 아니다. 나이도 사는 곳도 직업도 아니다. 오히려 한두 마디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고, 누가 물어본다면 한 사람 한 사람 너는 이래서 혹은 이때부터 나의 친구인 거 같다고 이야기해줄 수밖에 없다. 가령, 집이 멀어서 '지금 뭐 해? 우리 당장 만나'가 안된다면, '비교적 내가 더 한가하니까, 보고 싶으면 내가 가지 뭐'라는 마음으로 금요일 오후 4시간이 걸려서 찾아간 친구가 있다. 금요일 오후만 되면 '어디예요? 오늘 바빠요?'라는 질문에, '나 오늘 선약 있다'는 말을 하기 미안해져서, 그에게는 말하지 않고 슬그머니 금요일 시간을 그 친구를 위해 비워두기 시작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소로가 월든 쓸 때 사실은 엄마 집 근처에 집을 얻고, 몰래 빨래하러 가고 밥 먹으러 가고 그랬었데~'라고 어설프게 아는 지식으로 놀렸다가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말하는 건 너무해'라는 말에 속으로 뜨끔해서 사죄의 의미로 2주라는 긴 시간을 들여 월든을 읽은 경우도 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꽁꽁 싸매놓았던 비밀을 툭 털어놓았는데, 비밀이지만 별거 아닌 것처럼 나를 편하게 대해주는 친구도 있다. 이 사람들은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만나기도 했고, 직장에서 만나기도 했으며, 취미생활 중 만나기도 했다. 이들을 만나면서 내 근심을 나누며 줄였고, 자존감을 지켰다. 힘이 나는 응원을 받기도 했고, 어떨 땐 호통과 함께 혼나기도 했다. 별일 없는 듯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미래를 같이 고민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목적이나 조건이 없고, 위아래가 없으며, 무슨 말에도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니 친구와 친한 지인의 차이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다. 친구란 무엇이라고 정의 내리고 경계 지으려고 했던 나 자신이 머쓱해졌다.


알고 보니 나는 퇴사를 하고 시간이 남아서 '밥 한번 먹자'를 실천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 덕분에 나를 챙길 수 있었고, 내 가치를 찾았고, 내 건강을 되찾았다. '밥 한번 먹자'가 내 일상을 평범하고 따뜻하고 다채롭게 채우고 있었고, 그 순간들이 모여 감사하게도 나라는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평범한 하루를 위해, 나를 만드는 에너지 충전을 위해, '밥 한번 먹자' 약속을 캘린더에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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