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알고 보니 자유를 얻은 것이었어요 (11편)
“그럼 내가 로란씨 타로점 봐줄까?”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남자친구와 나의 사진 선생님이던, 그리고 지금은 베이킹 선생님이 되신 S 선생님의 베이킹 클래스 작업실을 찾았다. 우리 집이나 남자친구 집에서 쉬이 갈 엄두가 안 나던 동네이기도 하고, 코로나 핑계로 한동안 얼굴을 못 봐 아쉬운 분이었다. 그래서 내가 백수가 된 기회를 틈타 선생님 베이킹 작업실을 찾았다. 같이 점심 먹고 차를 마시며, 내가 새 직장을 빠르게 다시 찾아야 할지, 좀 더 쉬면서 글을 써도 될지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대뜸 타로점을 봐주시겠다고 했다. '아니 선생님. 사진작가 하시다가 베이킹 선생님 하신 것도 모자라 타로까지 하시는 건가요?' 놀란 나는 그래도 꽤 잘 맞춘다는 이야기에 설렘 반 의심 반으로 타로를 하나씩 짚어갔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결정을 못 하고 답을 못 찾고 있거나, 혹은 답은 찾았으나 그게 맞는 답일지 자신이 없을 때, 이 복잡한 심경을 다 내놓고 어딘가 하소연하고 싶어질 때, 말로만 맨날 점집을 찾았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아니 사실은 너무 잘 맞출까 봐 무서워서 제대로 된 점집은 아직 한 번도 가보진 않았지만, 타로점 정도는 재미 삼아 해도 되지 않을까 해서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엄마는 은근히 좋은 회사를 빨리 찾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 너도 그렇게 오래 고생했는데, 좀 쉬어도 된다”라는 말도 해주고, 며칠 전에는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다 큰 딸한테 용돈도 주더니, '요즘은 어디 좋은 소식 없나?'라며 면접 본 곳은 없는지? 오라는 데는 없었는지? 궁금한 속내를 슬쩍 드러낸다. 이러다 딸이 만년 백수로 늙을까 봐 걱정하는 눈치다. 나는 엄마 속과 상관없이 백수시간이 길어지면 엄마한테 빌붙어볼까 생각 중인데 말이다. 물론 나라고 걱정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눈을 뜨자마자 허둥지둥 출근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창문 열고 하늘도 한 번 보고 운동하고 좋아하는 글도 쓰고 책도 읽는 이 오전 시간이 행복하지만, 이러다 좋은 자리 다 놓치고 영영 백수로 삶을 마감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불쑥불쑥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가 있다.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여러 장의 카드를 지목하거나 뒤집었다. 알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그림의 카드 들을 들여다보며 선생님의 해석을 들었다. 다른 이야기들은 무난했던 것 같다. 내 귀에 앉는 듯하더니 모두 다 날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단, 딱 한 가지만 빼고 말이다.
"로란씨 덜 쉬었네~ 올해까지는 더 쉬어도 되겠네. 아직 멀었어 더 쉬어. 그 후에 취직해도 돼"
"정말요?“
“책 써도 좋고, 취업해도 잘돼, 걱정하지 마”
“야호!”
혹시라도 빨리 취업하라고, 지금 안 하면 큰일 난다고, 그런 점괘가 나올까 봐 조마조마했던 나는 그제야 평온을 찾고 긴장을 풀고 활짝 웃어버렸다. 거듭 탄성을 지르며 너무 좋아하자. 타로점을 봐주던 선생님마저 웃어버린다. '그래, 그냥 좀 더 쉬어, 그간 고생 많았잖아' 타로마저 나를 그렇게 위로하며 쉬라고 말해주니, 이런 천군만마가 없다. 나는 이직을 하고 싶은데 못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 아니라, 더 놀고 싶은데, 놀지 말고 일하라고 할까 봐 두려웠던 거였다. 그래, 태어나 처음으로 찾아온 이런 휴식을 내가 내 발로 뻥 차버리긴 너무 아깝지. 회사 정리해고 핑계 대고 나 좀 더 쉬어야겠다.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남은 체기가 스르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야~ 이 맛에 사람들이 점을 보는구나 싶었다.
타로 점을 보고 며칠 후, 여전히 회사에 다니고 있는 내 전 직장동료들과 함께 우르르 점을 봤다. 뭔가 무시무시하고 알록달록한 그림이 가득할 것 같은 점집은 무섭다고 했더니 친한 동료 Y는 출장점 봐주시는 분이 있다고 알려줬다. IT 등 이쪽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분인데, 3명 이상 모으면 서울 내 원하는 지역으로 출장을 오신단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회사 근처로 올 수 있게, 가능한 인원수를 모아 회사 근처 카페에서 뵙기로 약속을 잡았다. 회사를 나온 나는 언제까지 백수 생활일지가 걱정이었다면, 회사에 남은 그들은 언제까지 이 고생스러운 회사생활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참 우스웠다. 쉬고 싶다면 나오면 될 문제이고, 이 회사가 싫다면 얼른 이직자리를 알아보면 될 것이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그 안에 있을 때는 나 또한 알면서도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일인데, 이제 제삼자가 되었다고 그리 쉽게 생각한다. 이직이냐 백수냐 하는 내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역시 바둑은 훈수 두는 사람이 제일 잘 두는 법이다. 카페에서 10분씩 돌아가며 본 점에서도 다행히 올해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해라며, 더 놀라고 했다. 글을 써도 좋고 심지어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장르는 에세이가 좋다고 했다. '오메, 이렇게 신통방통할 수가 있나!' 점의 결과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간 무서웠다고 못 보던 점을 왜 이제야 봤을까 하며 조금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래, 후회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찾자. 그리고 뒤돌아보지 말고 하자. 이런 내 바람이 너무 강해 점도 그렇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취업하고 돈을 버는 게 경제적으로도 이득이고 생활에 안정감을 가져다줄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내가 마음의 병이라도 얻을 것처럼 작정하고 물어보니, 그게 통했을까, 점마저 니 맘대로 하세요! 라고 나와버렸다.
마음이 편해진 나는 그날 저녁 엄마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 나 올해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래. 나 덜 쉬었다고 더 쉬어도 된대. 그러고 나서 취업해도 잘 먹고 잘사니까 걱정하지 말래~ 그러니까 나 더 놀래."
"어이구! 그래 니 맘대로 하세요~"
엄마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뒤로한 채 룰루랄라 소파에 앉아 읽던 책을 열었다. 문장이 한결 더 눈에 쏙쏙 들어왔다.
* 사진: Unsplash의Viva Luna Stu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