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프렌즈 친구들이여 용기을 내세요
아시아개발은행에 지원하고서 웃던 시절이 생각나
월드프렌즈 친구들이여 용기을 내세요
2021.08.30 23:19
.
난 부탄에서 UNV계약 만료를 앞두고 The economist 주간지에 나온 구인난에서 아시아개발은행 구인광고을 보고 마감직전에 부탄에서 이력서울 보냈다.
무엇을 써서 보냈는지 모른다. 20년 전이라 기억이 없다. 세계은행 관계자도 만나고 아시아 개발은행 관계자도 만나니 나도 그분들을 닮고 싶었는지 모른다.
부탄에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하고 토요일 오전에는 시장에서 장을 보고 부탄 신문 쿡셀을 사서 읽고 인도신문이나 이코노미스트, 리더스 다이제스트, 파이낸셜 타임스를 사서 오후에나 일요일에 집에서 읽었다. 다 영자 신문이다.
가끔씩은 다른 이들에게 이 잡지들을 빌려주기도 했다. 나의 스위스 친구 꿈은 뉴욕 UN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녀는 꿈을 이루었는지 모르겠다.
일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때도 바빴다. 토요일에는 가끔씩 채소 등의 장을 보고 나서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기도 하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파티에 참석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파티에 멋모르고 갔다. 간단한 식사초대에 농장에서 신던 신발에 너풀거리는 머리를 하고 호텔을 갔다. 곱슬머리에 흩트러진 머리로 말이다.
ADB관계자는 이야기했다. 머리 좀 하고 오지 복장에도 신경 쓰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프로젝트 상에는 나에게 자동차가 나오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소속기관인 수도 외곽에서 호텔이나 UN빌딩을 가기 위해서 소속기관의 차을 타거나 히치 하이크을 해서 가야 했다.
현지인도 나에게 ADB에 지원하는 것을 주저주저 하자 괜찮다고 했다. 나보다 영어를 더 못하는데도 아시아 개발은행에서 일한다고 용기을 심어주었다.
그때 나이가 내 나이 29세였다. 25세에 한국청년해외봉사단으로 나가 2년은 방글라데시에서 보내고 일 년은 한국에서 귀국단원모임 홍보국장을 지내고 다시 UNV로 나가 2년은 부탄에서 지내다 보니 좋은 대우를 받고 외국인들을 많이 대하다 보니 그들과 어깨를 겨누고 일하고 싶었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온 것도 해외유학파도 아니다. 충남국립대 원예학과를 나온 순수 국내 학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많이 일한다는 FAO나 국제농업개발기금인 IFAD에 후보자로 올라갔다고 한다.
현지인들이 잘 봐줘서 프로젝트에 내 이름을 넣어 주었단다. 대전 세이 백화점에 세이 스토어에 이코노미스트, 월 스트리트 저널이 있어서 사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다.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지만 그들은 영어에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 내가 한국청년해외봉사단에 지원할 때 영어시험을 봤는데 50점이었다고 한다.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줄까 하다가 나에게 실망할 까봐 그때는 말을 못 했다. 참 일본어 3급이 이 있었다.
월드프렌즈로 나가는 후배들이 파견동안에 다른 엔지오들과도 교류도 넓히고 전공분야에 관련 영문책도 보면서 뜻을 세워 국제기구을 타깃으로 해서 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갔으면 한다.
영어를 잘한다고 커뮤니스케이션 스킬이 좋은 것은 아니다. 마음을 잇는 사람을 사람 하는 공동체에 디딤돌이 되는 삶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