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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구두를 신은 Aug 03. 2023

겨울, 지리산

죽을 것처럼 힘들어서 겨울 지리산에 갔었어

사람들이 웃더라

겨울산행에 청바지가 웬일이냐고

나는 속으로 대꾸했어

복장이 대수냐고


사람들은 내게

겨울엔 모바지가 가볍고 따뜻하다는 것

배낭은 짧게 멜수록 힘이 난다는 것

그리고 산에 오르고 나면

순해지는 것을 알려 주었어


토끼봉 가는 길에 주저앉아 있을 때

누군가 건넨 초코파이가 말했어

"그게 뭐라고"

세석산장에서 눈부신 햇살이 흰 눈을 배경 삼아 말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연하천 산장 아저씨가 무심히 건넨 낡고 커다란 양말이

빨갛게 부은 내 발을 감쌀 때

(깨끗이 빨았대요)

난 생각했지

이렇게 따뜻하게 느끼는 건...


사람들이 말했지

덕을 많이 쌓은 사람만 본다는 천왕봉 일출

그걸 보고 있는 나는 아마 좋은 사람일 거라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어설프게 웃고 나서

나는 살아 내려왔지


그게 그러니까 벌써 20년도 더 된 옛날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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