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그 눈망울을 바라보는것 만으로도
우리 집에 강아지를 입양해 온 해는 2022년이었다.
그해는 팬더믹 이후라 사람들을 더 안 만나기도 했고
새로운 동네로 막 이사를 오면서 난 설렘과 동시에 낯가림도 많이 심해서 사람들이랑 눈 마주치는 것도 어렵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남편이 입양센터 사이트에서 한 강아지를 보여주었다.
사진 속 강아지는 덥수룩한 앞머리에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모를 당당함을 풍기고 있었다.
다음날 우린 홀린 듯 입양센터가 문을 열자마자 들어서서 그 당시 코리로 불리던 강아지를 보고 싶다고 했다. 잠시 후 코리는 덥수룩한 털 사이로 살짝 경계하는 눈빛을 보이며 센터 보안관의 품에 폭 안겨 들어왔다.
우리가 입양 서류를 작성하는 사이 코리를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센터로 들어오고 있었다.
만약 조금 더 늦잠을 잤더라면 코리와 우리의 운명은 엇갈렸지 않았을까.
차를 타고 우리 집에 도착한 코리는 여기가 이제 내집일까 궁금해 한듯이 천천히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곤 동그랗고 까만 눈으로 우릴 지긋이 쳐다보는데 우습게도 난 그 귀여운 눈조차 피해버렸다.
뭐가 그리 피하고 싶은 게 많았던 건지
순수한 강아지 눈조차 피하다니 그때의 난 꽤 예민하고 소심해져 있었다보다.
남편은 강아지가 너무 순하다며 코리란 이름 대신 '순해' 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입양센터에선 순해가 두 살이라고 했다. 누가 봐도 아기 강아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며칠뒤 동물 병원에 갔다가 순해의 기록을 찾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순해는 2012년 생이었다.
또 한쪽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였고 귀가 안 들리는 것 같았으며 치아상태를 보니 나이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주인이 7번이나 바뀌었다고 했다.
왜 센터에선 나이를 속인 건지, 주인이 7번 바뀐 건지.. 버려진 건지..한쪽눈 밖에 보이지 않다니..
모든 게 혼란스러운 와중에 진찰대에 올려져 나를 보며 발발 떨고 있는 순해를 보니 왠지 눈물이 났다.
아기 강아지라 생각하고 오랫동안 같이할 맘에 부풀어 있었는데 벌써 10살이 넘었다니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또 나타난 낯선 주인들(=우리)을 믿고 의지하려는 순해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더 이상 버려지지 않게 우리가 마지막 진짜 주인이 돼주어야겠다고.
아침부터 잠에 들 때까지 우린 순해의 동그랗고 까만 눈동자와 수도 없이 눈 맞춤을 한다.
뭘 먹고 있는지, 어딜 가는 건지 호기심가득히 우릴 졸졸 따라다니는 순해의 눈.
심지어 자던 도중에도 내가 깨면 순해도 같이 깨서 이불 위에 납작 복숭아 같은 얼굴을 올리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눈빛으로 빤히 나를 쳐다볼 때도 있다.
그 귀여운 모습을 보면 난 졸린 와중에도 순해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어진다.
순해와 함께하면서부터 동네 이웃들과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산책을 하며 매번 마주치는 강아지들과 주인들을 알게 되고 스몰톡도 늘어갔다.
어딜 가든 순해를 보며 말을 걸어주고 귀엽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따라 웃게 된다.
내향인들이라 조용히 외출을 즐기고픈 나와 남편이지만 인기가 많은 순해와 함께 하다 보니 걷다가도
사람들과 반 강제적인 대화의 장이 열린다.
어느덧 셀러브리티가 된 순해를 보며
남편은 순해의 운전 매니저, 나는 스타일리스트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순해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에 우리도 같이 행복해진다.
그렇게 낯을 가리던 내가 순해와 함께하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과 강아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있었다.
순해는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겁이 많고 산책 시 다른 강아지들을 향해 많이 짖고 흥분한다.
그렇게 왈왈거리고 센 척을 하다가도 집에 오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우리 에겐 세상 순한 모습으로 자신의 제일 연약한 핑크색 배를 내 보여준다.
순해는 언제나 순진한 얼굴로 침묵하고 있지만
저 조그만 몸속에 아무도 모를 험했던 10여년간의 미스터리 견생 이야기를 품고 있는것만 같다.
만약 순해가 하루만이라도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릴 만나기 전, 길 위에서 발견되기까지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던거니 ?'라고 꼭 물어보고 싶다.
어떤 두려운 일들을 겪어왔는지 들어주고 이젠 더 이상 무서워하지 말라고 다독여 주고 싶다.
이젠 순해가 날 바라볼때 눈을 피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순해가 눈을 피할때까지 내가 더 오래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비록 귀도 잘 안 들리고 한쪽눈으로만 보고있지만
순해를 많이 많이 아끼고
하루하루 행복한 강아지로 살아가길
바라는 맘을 담아 바라본다.
가끔 맘이 복잡하고 어수선할 때
순해의 순수하고 촉촉한 눈망울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모두 정화되는 느낌이라고
고맙다는 인사를 눈을 보며 자주 이야기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