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뉴질랜드 북섬여행
남편이 뉴질랜드에 온 지 일주년을 맞아 여행을 고민했다. 원래 우리였다면 고민이 아니라 당장 저렴한 숙소를 예약하고 시동을 걸었겠지만, 이번에는 이사하면서 돈 나갈 일이 많아 한참을 고민하고 결정했다. 내 수족냉증으로 겨울 여행을 가게 되거든 온천지대인 코로만델이나 로토루아에 가자고 진작에 정해 두었고, 그중에서 큰 여행도시인 로토루아로 정했다. 내 마지막 과제에 열정을 불태우던 때였다. 예민함이 한껏 올라있으니 남편이 괜찮은 호텔을 찾아 두 개를 추려주었고, 내가 그중 한 개를 골라 예약을 넣었다.
남편 오전 근무를 마치고 로토루아로 출발했다. 오클랜드에서 세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북섬에서 유명한 관광도시 중 하나이다. 최근에 여행 유투버가 다녀온 곳이기도 한 로토루아. 온천지대에 있으며, 한국 통영에도 생긴 루지(Luge)의 원조가 있다. 우리는 온천과 스파, 루지 세 가지를 알차게 즐기고 다음 날 돌아오는 일정이다.
오전 근무를 마친 남편이 컨디션이 괜찮다며 운전대를 잡았다.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해 텅 빈 기름통을 먼저 채우고 호텔에 도착했다. 비수기 평일이라 이틀 전에 예약하는 데도 전용 스파가 딸린 방을 저렴하게 잡았다. 잠깐 앉았다가 해가 떨어지기 전 잠깐이라도 둘러보자 싶어 두꺼운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첫 목적지는 쿠이라우(Kuirau) 공원. 도심에서 온천이 올라와 연기가 올라오는 신기한 곳이다. 동네 큰 공원에 주차를 하고 우리가 맞게 온 건지 고민하는 순간, 여기저기서 연기가 올라오는 광경이 펼쳐졌다. 누가 계란을 삶고 있나 싶은 유황냄새도 함께. 눈앞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온천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한데, 공원은 크고 작은 온천 연못으로 꾸며져 있었다. 흡사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예류지질공원이 생각나는 쿠이라우 공원은, 바람에 깎인 돌 대신 곳곳에 온천 연못이 끓어오르는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관광객도 많지만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공원을 가로지르며 갈길을 가고 있었다. 다음에 로토루아를 찾게 되거든 공원 근처 숙소를 잡고 온천수가 나오는 숙소에 묵어야겠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는데 아직 둘러볼 곳이 남았다. 거버먼트 가든 (Government Garden)이라는 식민시대에 조성된 건물과 가든을 보러 발길을 재촉했다. 어두워도 쨍한 색의 건물이 매력을 뽐내고 있는 곳. 스냅사진을 찍기에도 괜찮을 장소이다. 잠깐 둘러보고 허기가 올라와 근처 베트남 음식점으로 갔다.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먹는 베트남 쌀국수. 한국에서 맛본 국수와는 달리 달큼한 감칠맛이 있다.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국물을 먹으니 몸이 좀 녹았다.
여행 다닐 때면 이 동네에 맛집을 가보아야 하는 고민이 생긴다. 20대 때야 돈이 없으니 아침저녁은 숙소에서 간단히 해 먹고 점심은 저렴한 음식점을 찾아 헤맸다지만, 30대 여행은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지갑 사정이 되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숙소를 찾을 때 유명한 호텔체인은 아니더라도 도심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조용하고 깔끔한 곳을 찾는 데 돈을 덜 아끼는 편이다. 남편이랑 여행을 다니다 보면, 끼니 같은 경우는 이동하다 보면 한 끼를 거르는 건 예사고, 배가 고프다 싶을 때 구글맵을 켜고 근처 평점 높은 곳을 들어가곤 한다. 둘 중 하나가 꼭 원하는 음식점이 아닌 이상, 한 명 당 30불 이상을 넘기는 경우가 잘 없다. 결국 로토루아 가서 뭘 할지 정하면서 음식점에 대한 정보는 빠져 있어 쌀쌀한 날씨에 어울릴, 오클랜드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베트남 쌀국수가 저녁메뉴가 되었다. 그래도 맛있으면 됐지.
호텔로 돌아와 데크에 있는 제트스파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데크 밖에서는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비수기 평일이라 조용한 호텔에서 힐링을 찾았다. 여행지에서 마시려고 집에서 아끼던 피노누아 와인을 챙겨 왔는데, 스파를 하고 나니 시원한 샤도네이가 마시고 싶어 마트 닫기 전에 부지런히 다녀왔다.
두 번째 날은 호텔 바로 근처로 루지를 타러 갔다. 마타리키 연휴가 가까워서인지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많았다. 몇 해 전, 가족 여행으로 다녀왔던 용평리조트가 생각나는 스카이라인. 표를 끊고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다. 사진에서 많이 보던 헬멧을 골라 쓰는 데 아래로 로토루아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다행히 구름이 적당히 떠다니는 예쁜 하늘이 맞아주었다. 루지는 초등학생 때 많이 하던 게임 카트라이더를 현실로 옮겨 놓은 귀여운 모양이다. 간단하게 조작법을 배우고 내려가는 데 처음 탈 때는 정작 겁이 나서 속도를 즐기지 못했다. 두 번째부터는 용기를 냈으나 사람이 많아서 또 천천히. 일곱 살 조카만 한 아이들이 겁도 없이 혼자 신나게 잘 달렸다. 세 번 주행을 무사히 마치고 곤돌라를 타려는 데 갑자기 화재 알람이 울렸다. 그 상태로 한참을 기다렸다가 소방관들이 다녀가고서 곤돌라를 탈 수 있었다.
남편은 로토루아까지 온 김에 가까운 타우랑가를 가보고 싶어 했다. 로토루아에서 한 시간 거리의 타우랑가, 그중에서도 마운트 망가누이라는 산을 목적지로 찍었다. 남편이 운전을 하는 동안 난 잠시 눈을 붙이고 금세 타우랑가에 도착했다. 화재 알람 때문에 점심시간을 넘긴 지라 근처 푸드트럭에서 토스트와 커피로 끼니를 해결했다.
마운트 망가누이는 왕복 한 시간 정도 코스로 짧고 굵게 다녀왔다. 한동안 한라산에 오르겠다고 동네 관악산을 오르내리던 때가 있었는데, 뉴질랜드에 와서는 동네 뒷동산만 가끔 올랐다. 나름 운동을 꾸준히 했다고 쉬지 않고 올라가 타우랑가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파란 바다와 백사장이 예쁜 동네. 오클랜드가 아닌 다른 도시에 산다면 고려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오클랜드에서는 평지를 뛰어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마운트 망가누이에는 산을 뛰어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괜히 우리가 참 건강한 나라에서 지내고 있구나 싶다.
날이 어둑어둑해서 발길을 재촉했다. 슈퍼마켓에 들러 기름을 채워 넣었다. 유류세가 지역마다 다른데, 오클랜드가 다른 도시보다 리터에 20센트가량 비싸다고 했다. 그 덕분에 로토루아와 타우랑가에서 기름을 잔뜩 채워 출발했다. 다음 날 출근인 남편을 위한다고 내가 운전대를 잡았는데, 깜깜한 산길은 많이 힘들었다. 건너편에 다니는 차가 많아 상향등은 거의 킬 수 없고, 내가 가는 방향은 고요해서 내비게이션에 의존할 수밖에. 평지가 나타나고 나서야 크루즈 컨트롤 기능을 켜고 맘 편히 운전해서 오클랜드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은 한국에서의 우리를 찾아가는 기분이었다. 짐은 늘 가볍게 챙겨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있는 우리 부부니, 갑자기 강릉이나 부산으로 가는 건 우리에게 종종 있는 행사였다. 로토루아도 떠나보니 멀지 않고 다음에 언제든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