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헤어짐은 아쉬워
지난해 프로젝트 수업 날, 그동안 MBA가 어땠는지 5분 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 싶어 손을 들어 재빨리 발표하고 다른 사람들의 발표를 듣는데, 몇몇 사람들이 길게 말하다 보니 결국 수업을 마칠 시간을 훌쩍 지나 있었다. 맨 마지막 주자로 나선 친구가 내년 초 공부가 끝나는 대로 자기 나라로 돌아가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온 친구는 내 MBA 첫 학기 해리포터 속 헤르미온느와 같은 존재였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 영화 마지막 부분, 힘든 학기를 보낸 학생들을 위해 덤블도어 교수가 시험을 모두 취소한다는 발표를 하자, 환호를 하는 학생들 사이 얼굴을 잔뜩 울상인 헤르미온느가 나온다. 첫 학기 5,000 단어에 달하는 과제에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해 교수가 과제의 범위를 줄여주는 데 혼자 울상 짓고 있었던 친구의 얼굴 때문. 학교생활을 하며 여러 과목 수업을 같이 들으며 몇 차례 같은 팀을 하며, 열심히 계획적으로 사는 모습이 멋있었다.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지 싶었는데, 각자 프로젝트에 건강문제에, 업무까지 겹치며 4월에야 따로 만났다. 학교에서 나누던 스몰토크 말고 궁금했던 점들을 꺼내놓았다. “왜 뉴질랜드에 왔는지“, ”어떻게 12년을 살게 되었는지“, ”왜 유럽으로 돌아가는지“ 몇 시간을 얘기할 수 있는 주제겠지만 커피 한 잔 하면서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뉴질랜드는 학업을 마치고 갭 이어(gap year)로 온 20대 워킹홀리데이였다. 살다 보니 이곳이 마음에 들어 일을 하며 정착을 하게 되었고, 그 사이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었다. 12년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적은 없지만, 지내다 보니 친구들도 직장 동료들이 있어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날 생각이 하는 지금도 친구들을 두고 가는 게 너무 아쉽다고 했다. 그렇게 코로나 4년도 뉴질랜드에서 보냈다.
작년 남동생의 결혼식 참석차 유럽에 방문했다가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는 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15살 차이 나던 아기 같던 여동생은 어느덧 성인이 되어 본인보다 키가 크다고 했다. 이 날에서야 친구의 나이를 듣게 되었다.
몇 주 후 돌아가기 전 날 다시 만나 티타임을 했다. 영원히 이 나라를 떠난다고 생각하면 스스로가 힘들 거 같아 내년 초 뉴질랜드에 올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이 년 가까이를 마음속에서 의지했던 친구가 떠난다니 내 마음도 헛헛하다. 영어로 고군분투하던 첫 학기부터 늘 도움이 되어주던 친구이기에, 학업을 마치고 뉴질랜드에서 앞으로 잘 지내길 바랐었다.
한편으로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먼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친구의 결정을 존중한다. 해외생활을 하며 결국 가장 그리운 건 가족과 옛 친구들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껴서인 것 같다. 유럽과 뉴질랜드 여권이 있는 친구이기에 앞으로 유럽, 뉴질랜드, 아니면 호주에서 만나게 되길 바란다. 이제 이년 남짓한 해외생활을 한 나도 십 년 뒤면 한국에 갈까를 고민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만남은 즐겁지만 늘 헤어지는 순간이 아쉽다. 언제 어디서든 다시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