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로 읽는 디자이너의 진화 1.0
스케치업(SketchUp)의 역사는 '간단하면서도 강력한' 3D 설계 도구를 만들고자 했던 한 건축가의 꿈에서 시작되었다. 2000년 콜로라도주 볼더에서 건축 엔지니어 브래드 셸(Brad Schell)과 소프트웨어 개발자 조 에쉬(Joe Esch)의 협력으로 첫 선을 보인 이 소프트웨어는, 인터넷이 막 태어나던 시절부터 건축가들의 설계 과정을 혁신하겠다는 야망으로 출발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스케치업이 추구했던 철학이다. 복잡한 계산과 어려운 조작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생각하고, 설계하고, 건설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돕는 도구. 그것이 바로 스케치업이 25년간 추구해온 가치다.
스케치업의 초기 버전들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빠른 모델링 속도로 설계 전문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소프트웨어가 점차 알려지면서 2006년 구글(Google)은 스케치업을 인수했고, 이는 더욱 광범위한 사용자층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글의 지원 아래 스케치업은 구글 어스(Google Earth)와 통합되면서 전 세계 건축 시각화 작업의 표준 도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시기 스케치업은 단순한 3D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넘어 건축 설계의 생각을 시각화하는 창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2012년 트림블(Trimble)이 스케치업을 인수하면서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트림블은 건설 기술 분야의 선도 기업으로서 스케치업을 더욱 강력하고 전문화된 도구로 진화시켰다. 이때부터 스케치업은 단순한 무료 모델링 도구에서 벗어나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레이아웃(LayOut)이라는 도면 작성 도구와의 통합, 그리고 웹(Web) 기반 스케치업의 출시로 어디서나 3D 설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트림블로 이전되면서부터 2017년부터 무료버젼 스케치업은 단종되고 웹에서만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024년은 스케치업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해가 되었다. 새로운 그래픽 엔진(Graphics Engine)의 도입으로 모델링 속도가 이전 대비 2배에서 8배까지 향상되었다. 이는 단순한 성능 개선을 넘어, 사용자들이 더욱 빠르게 생각하고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동시에 앰비언트 오클루전(Ambient Occlusion)이라는 새로운 시각 표현 기법이 추가되어, 설계의 깊이감과 사실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스케치업 2024에서는 또한 아이에프씨(IFC) 파일의 호환성 개선, 유에스디지(USDZ)와 글티에프(glTF) 형식의 지원 추가 등 다양한 산업 표준과의 호환성을 확대했다. 이는 건축, 엔지니어링, 건설 분야에서 여러 소프트웨어 간의 협업을 한층 더 수월하게 만들었다. 특히 스캔 에센셜즈(Scan Essentials)라는 새 기능은 포인트 클라우드 스캔 데이터를 실제 모델로 변환하는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순화했다.
가장 최근인 2025년 버전에서 스케치업은 생성형 에이아이(Generative AI)를 활용한 텍스처 생성 기능을 선보였다. 사용자가 기존 재료(Material)를 선택하면 인공지능이 물리 기반 렌더링(Physically Based Rendering, PBR) 텍스처를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히 작업 시간을 줄이는 것을 넘어, 창의적인 설계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환경(Environments) 패널도 크게 개선되어, 360도 이미지와 고다이나믹 레인지 이미지(High Dynamic Range Image, HDRI) 파일을 추가하여 모델에 맥락과 동적 조명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적인 재료들이 주변 환경의 빛과 조건에 동적으로 반응하면서, 스케치업 내에서 그린 설계가 실제 환경에 얼마나 잘 어울릴지 미리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레이아웃 도구도 발전했다. 이동(Move), 회전(Rotate), 크기 조정(Scale) 툴들이 스케치업의 작동 방식과 더욱 비슷하게 개선되어 사용자 경험을 통일했다. 페이지 패널에서 개별 페이지를 선택해 내보낼 수 있는 기능도 추가되어, 문서 관리가 한결 효율적이 되었다.
트림블 커넥트(Trimble Connect) 통합은 스케치업의 가장 중요한 진화 중 하나다. 이제 설계자들은 모델을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데스크톱 버전과 웹, 아이패드(iPad) 버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보기만 가능한 링크 공유 기능으로 설계 초안을 쉽게 클라이언트에게 보여줄 수 있고, 변경 내역도 자동으로 추적된다. 이는 건축 팀 전체의 협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변화다.
스케치업의 25년은 기술의 진화만큼이나 사용자의 필요를 끊임없이 반영해온 역사다. 초기의 간단한 3D 모델러에서 시작해, 협업 플랫폼이자 아이에이(AI) 기반 설계 도구로 성장했다. 그 과정 속에서 스케치업이 잃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설계자의 생각을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표현하도록 돕는다'는 원초적 목표다. 매년 새로워지는 기능들도 결국 이 약속을 더욱 잘 지키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