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란? 트라우마는 실제적이거나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질병 혹은 자신이나 타인의 신체적(물리적) 위협이 되는 사건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후 겪는 심리적 외상을 뜻한다
구글에 검색을 해보았다. 그렇구나.
현재의 현상들이 직접적 고통을 주지 않더라도 작은 일들이 트라우마를 이끌어내는 trigger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는 아마 복받은 사람일 것이다. 내가 태어난 나라가 아닌 먼곳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곳에 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나는 한국에서 보통의 인간관계를 맺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친구도, 회사 동료도, 그 무엇도 없었다. 친구가 있었어도 진정한 의미의 친구는 아니었으며 가족이 있었어도 어린 시절 늘 tv와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며 보냈다. 사실, 어린 시절의 일은 기억이 그닥 나지 않으니 내게 고통을 준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개성이 강했고 자기 주관이 쎄서 10년전 한국사회의 "여성상"은 아니었다. 대학에서도 모두 내가 특이하다고 하였으니... 인기도 없었다. 대학을 졸업 후 곧바로 프랑스로 갔고, 이후에 한국으로 돌아와 좀 있다가 호주로 갔다. 그 후에는 코로나, 개발자로의 직업 변화, 그 후 다시 프랑스 행... 어찌보면 모든 결정은 늘 충동적이었으며 나는 섬처럼 늘 둥둥 떠다녔다.
그리고 나의 이런 어지러운 모습을 바라보는 가족들만이 내게 남아있었다. 그들의 지원과 사랑에 감사하지만 우리는 점점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타문화권의 생활에 익숙해져갔으며, 한국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상이나 문화에 반발심이 가득해졌다.
나는 특히 엄마를 이해하기 힘들었고 엄마는 내가 엄마를 이해해주길 원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흐른다. 내가 혼자 파리에 있다면 소리내어 엉엉 울었을 것이다. 엄마는 왜 내가 해주는 일을 단 한번이라도 좋고 애정어린 시선으로 봐주지 않는 것일까. 내 행동에 관한 엄마의 부정적인 의견을 들을 때마다 흔들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잘못한 것일까 ?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아직도 엄마의 인정을 갈구하는 것인가 ? 이런 생각이 퍼뜩 든다.
나의 인생. 나의 인생. 나의 꿈... 나의 인생...
한국에 돌아온지 2주차에 잠 못이루던 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마 그 때, 프랑스로 떠나지 않았다면 죽었을 거야...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던 나날들... 수많은 외로운 날들. 나는 살기 위해 프랑스에 왔다. 행복은 바라지 않았다.
2년이 지나 프랑스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웠다. 배우다... 참 좋은 말이다. 돌아올 때마다 더 낯설게 느껴지는 조국, 이 나라에 애정이 안 생기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도, 도시도 모두 변하니까.
나는 이 도시에서 참 슬프고 외로웠다. 그 기억이 나를 덮쳐올 때마다 한없이 작아졌고 나는 그 속에서 다시금 바들바들 떨고 있다. 두렵고 무섭다고 내 안의 트라우마가 외치고 있다. 이미 치유된지 알았던, 기억 저편의 나를 다시금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