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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슬 Nov 08. 2024

1화. 어느 날 제가 좀 이상했어요




3번째 이직이었다. 어느 회사에 다니냐는 질문에 그 어느 곳보다 당당하고 기분 좋게 말할 수 있었던 나의 4번째 회사. 나쁘지 않은 연봉과 만족스러운 근무 환경, 배울 점 많은 훌륭한 동료들이었다. 하지만 왜 때문인지 나는 그 어떤 회사 보다 마음을 잘 못 붙이고 있었다. 나는 그간 친구들 사이에서도 프로이직러였고 어느 조직에서도 잘 적응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첫 한두 달은 적응기니까 그렇겠지 생각했고 그다음은 많은 업무량과 그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업무가 익숙해져도 심적 부담감과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았다.



불안할수록 더 열심히 일했다. 상대적으로 프레셔가 강한 조직이었기 때문에 동료들도 제 몫을 다하기 위해 열심이었다. 훌륭하다고 생각한 동료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힘들다 하는 건 그냥 어린아이의 불평과 일하기 싫은 핑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의 마음은 살피지 못한 채 그렇게 스스로를 계속해서 채찍질했다. 나는 이 조직에서 소위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욕심이 이미 지쳐있던 나의 몸과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름이 되어줬던 것 같았다. 과정보다는 결과로 보여줘야 하는 직무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나는 어느새 팀 내에서 성과가 제일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토록 바랐던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정과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하지만 인정받을수록,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할수록 이에 대한 만족감이나 뿌듯함보다는 공허함이 느껴졌다. 자꾸 내면이 채워지지 않는 듯한 무언가 텅 빈 느낌이었다. 그리고 일을 잘하면 할수록 부담감과 불안감 또한 더 커져 갔다. 이는 이내 내 몸을 하나 둘 고장 내기 시작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이야기할 일이 생기면 유독 긴장감이 높아졌다. 목소리가 떨린다거나 손발이 떨렸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냥 중요한 발표니까 긴장한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다음 PT 때는 더 잘 준비해야겠어~ 하고 나는 이 문제를 가볍게 웃어넘겼다.



하지만 나의 불안감과 긴장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점점 회사 밖에서의 나의 상태마저 잠식시켜 갔다. 퇴근 후 집에서 쉴 때도, 주말에도, 업무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으로 가득했고 월요일 아침이 오는 게 정말로 두려워졌다. (예전에는 월요일에 회사 가기 싫어하는 건 나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말이다.) 월요일 아침에 회사 셔틀에 몸을 실은 채 창밖을 바라보면 이대로 그냥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지. 나는 어느새 내 자리에 앉아 로그인 화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쳇바퀴 굴러가듯이 나는 나의 문제를 애써 외면한 채 나의 아픔을 방치시켰다.

그리고 이는 점점 내 몸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우리 팀에는 매주 수요일마다 팀 회의가 있었다. 팀원들 모두 돌아가면서 지난 개인 프로젝트에 대한 회고를 진행하는 가벼운 자리였다. 공식적인 발표도 아니었기에 긴장할 일이 없는 그런 회의였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갑자기 내 차례가 가까워 올수록 손발이 차게 식으며 덜덜 떨렸다. 그냥 긴장된 게 아니라 손을 잡지 않으면 떨림이 멈추지 않을 정도로 떨렸다. 바깥은 39도에 달하는 폭염의 날씨였음에 등에서는 땀이 줄줄 났지만 손발은 너무 차가워져서 이내 보랏빛을 띨 정도였다.



이러다 발표를 망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고 그 불안감에 한번 휩싸이니까 심장박동은 제멋대로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 몸을 내 스스로 컨트롤하기가 어려웠다. 무슨 생각으로 발표했는지도 모르게 어찌저찌 회의가 끝났다. 그렇게 회의실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어, 나 좀 이상한데?”



그날 오후 업무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잡힐 리가 있겠는가) 불안한 마음을 안은 채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인터넷 초록 창에 동네 근처 ‘정신건강의학과’를 마구 검색하기 시작했다. 처음 검색해 본 단어였는데 우리 동네에 이렇게나 많은 정신건강의학과가 있었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병원은 정말 많았지만 아무 데나 갈 수 없었다. 맘카페나 블로그 후기를 보며 원장님에 대한 좋은 후기가 많은 곳으로 찾았다. 오른손으로 한참을 스크롤을 내리며 정보를 수집했다. 마침내 적당히 깔끔한 인테리어에 신뢰 가는 원장님에 대한 후기를 읽고 마음에 드는 병원 2곳으로 후보를 추렸다.



한 곳은 동네에서 꽤나 유명하고 경력도 오래된 병원이었다. 우선순위에 두고 전화를 걸어 당장 예약 가능한 날짜를 문의했다. 돌아오는 답변은 약간 당혹스러웠다.

“평일 예약은 마감이에요. 토요일은 오전에 일찍 현장 접수하시고 무한 대기하셔야 진료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 토요일 대기 시간이 얼마 일지는 알 수 없는 건가요?”

“네, 그건 저희도 알 수 없어요. 당일 현장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병원이 잘 돼서 환자를 덜 받으려는 건지, 정말 이런 시스템밖에 없는 건지. 내가 내 돈 내고 진료받겠다는데, 직장인에게는 황금인 주말 오전에 무한 대기라니.. 무엇보다 상담 직원의 태도가 몹시 불편했다. 초진 환자에게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상담 문의가 많아서 단호한 어투로 대응했다고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내 마음이 불편해서 진료를 받으려는 건데 마치 상담직원의 태도는 내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 같아 내심 서운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의 1순위 병원이었지만, 아쉽게도 후보에서 탈락이었다.  



두 번째 병원은 개원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깔끔한 인테리어에 원장님에 대한 따스한 후기가 많은 곳이었다. 여기는 온라인 예약만 가능하다고 해서 예약을 하려고 봤더니 3개월 예약이 이미 꽉 차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참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신건강의학과 환자들이 많아진 건지.. 예약의 어려움에 불만을 느끼다가도 순간적으로 “아 나만 힘든 건 이닌가 보구나” 싶은 생각에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예약 화면을 무한 새로고침하고 있는데 갑자기 캘린더 화면에 한 날짜가 예약 가능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레카! 역시 행운은 나의 편이었다. 나는 재빠르게 다음 주 초진 상담으로 예약을 완료했다.



내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정신건강의학과를 내 발로 찾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렴풋하게 검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으레 지나가는 힘듦일 거라 치부하고 외면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회사 일이 힘들다고 정신과를 들락거리는 나약한 인간으로 비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내 몸에서 도와달라고 적극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듯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이번에는 그 신호들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정신과를 예약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졌다. 오히려 고민만 했을 때는 정신과라는 게 정말 내가 버티고 버티다 가는 최후의 수단같이 느껴졌는데 막상 예약을 하고 나니 나에게 심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 정말 문제가 심각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보다는 오히려 “빨리 내 상태를 점검하고 돌봐 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안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을 헤매다가 마침내 저 멀리 불빛이 보이는 느낌이었다. 마치 선생님을 만나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예약 날짜를 기다렸고 마침내 예약 일이 되어 나는 인생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다. 로비에서 기다리는데 무섭거나 불안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치과 진료 대기가 더 무서웠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000 환자님, 진료실 들어오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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