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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슬 Nov 10. 2024

2화. 공황과 불안장애 라니




내 이름이 불린 후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우선 기본적인 검사가 필요하다고 몇 하여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우울감의 척도, 집중도, 수면 상태, 대인 관계 등 다양한 항목에서 검사가 진행되었다. 재미로 성격유형 검사나 MBTI 검사 같은 류의 검사들은 진행해 봤지만 진단을 위한 심리 검사는 처음이라 약간은 긴장이 되기도 했다. 꽤나 질문들이 진지하고 디테일해서 최대한 솔직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하며 임했다. (보통은 이런 류의 검사를 진행할 때 나의 현재 상태보다는 내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고르게 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검사가 끝난 후 약간의 대기가 있었다. 혹여 검사 결과가 정상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환자분은 멀쩡합니다. 그냥 집에 돌아가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들을까 봐 말이다. 치료받고 싶어서 찾은 병원에서 오히려 정상일까 봐 걱정이라니... 그러나 나는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러 온 건데 오히려 정상적인 상태라는 진단이 나올까 봐 걱정이었다. 


괜한 걱정으로 고민하며 기다린 끝에 나는 담당 원장 선생님과 다시 대면할 수 있었다. 다정한 인상에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이는 남자 선생님이셨다. 온라인 후기에서 왜 다들 선생님에 대한 좋은 글이 많았는지가 한 번에 납득되는 그런 좋은 인상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이런 선생님이라면 나의 상태도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약간의 확신도 들었다. 선생님과 약간은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다정한 인사를 내게 건넨 뒤 차분하게 내가 병원을 찾게 된 계기에 대해 질문했다. 


"저희 병원은 어떤 일로 찾아오게 되셨나요?"


이제 내 얘기를 할 차례가 되었다. 친한 친구는 물론 가족에게 조차 내비치지 않았던 내면 깊숙한 곳의 이야기를 내뱉어야 할 차례. 사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특히나 내가 힘들어요.라는 식의 말은 더더욱 못 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그런 이야기를 살면서 처음 보는 남자분께 해야 하다니.. 나원 참. 처음에는 선뜻 입이 안 떨어졌다. 그런 나를 보며 선생님도 재촉하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기다려 주셨고 나는 두어 번의 심호흡 끝에 입을 열었다. 



"요즘 제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왔어요. 원래도 긴장도가 높고 예민한 체질이기는 했는데 최근 따라 그 빈도와 정도가 더 심해진달까요... 아 그리고 대인관계도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아 혹시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제 직무 특성상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고 또 PT 할 일도 꽤나 있어요. 예전엔 그러지 않았는데 최근 들어 중요한 발표나 회의를 앞두고 사람들 앞에서 제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는 일이 굉장히 스트레스풀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전혀 긴장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상하게 몸은 그렇지 않달까요.. 목소리도 떨리고 손발도 떨리고, 제가 제 몸을 컨트롤하기가 어려워요. 그리고 예민도도 꽤나 높아진 편이라 예전에 친했던 친구들과의 대화가 왠지 모르게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있더라고요. 예전에는 그런 순간도 그럴 수 있지 하면서 웃어넘기는 게 가능했는데, 최근에는 그것조차 잘 되지 않아 친구들과의 만남을 조금 피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올해는 유독 그냥 사람들을 멀리하고 지내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흠.. 그러셨군요. 우선 잘 오셨어요. 무엇보다 본인의 마음을 알아채주고 또 돌보아 주려는 것부터가 긍정적인 신호니까요. 우선 00님께서 진행하셨던 검사 결과지를 기반으로 현재 느끼고 계신 어려움들에 대해서 진단해 드릴 겁니다."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가 기다리던 나의 현 상태에 대한 진단을 들을 수 있다니. 대기실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진단받을 까봐 걱정했는데 막상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있으니, 혹시라도 내가 너무 심각한 상태는 아닐까 싶어 갑자기 두려워졌다. (사람 마음이란..) 



"우선 00님의 현재 상태를 보면 우울감의 정도 자체가 심하지는 않아요. 다만 불안도, 그리고 대인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이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그중에서도 타인에게 실패자,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낙인 될까 봐 느끼는 두려움이 큰 편이죠. 특히 우울감을 지속시키거나 악화시키는 반추적 반응 척도가 굉장히 높은 편인데, 어떠한 문제 상황이 생기면 그 문제의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고, 자책하며 이를 지속적으로 반추시키는 부분이 있어요. 이 부분이 지속되다 보니 불안 증세가 생기는 거죠. 미약하지만 약간의 공황장애도 있습니다. " 



약간의 공황장애라는 말에 나는 흠칫 놀랐다. 단순한 불안장애 수준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공황장애라니.. 그건 TV 속에나 나오는 연예인들이나 걸리는 거 아니었냐고..  선생님은 내가 겪었던 신체적 증상들 모두 자율신경계가 무너져 있어서 그런 부분도 있지만 공황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고 했다. 두려운 마음에 다짜고짜 약까지 먹어야 할 상태인지를 물었다. 


"혹시 약 처방도 필요한 상태인가요?" 


사실 병원을 찾을 때만 해도 나는 내가 우울증 관련 약을 처방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단순하게 상담 몇 번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질문은 나에게는 꽤나 중요한 질문이었다. 



"사실 지금의 검사 결과로만 본다면 저는 복용하시는 걸 추천드려요. 우울증 약이라는 게 잘 처방되고 안내된 방법으로만 잘 복용한다고 하면 큰 부작용은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특히 00 님 같은 경우에는 정도가 심한 상태는 아니니 초기 1-2달은 상태를 보며 복용 주기, 복용량을 변화시켜 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걱정하고 우려했던 부분을 미리 눈치 채신 건지 선생님은 내가 물어보지도 않은 우울증 약에 대한 정보를 세세하게 전달해 주셨다. 



"혹시 지금 제가 하는 직무가 저와 맞지 않아서 겪는 일시적인 어려움은 아닐까요?"


"그것도 맞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직장을 관두거나 하는 방법을 제안드릴 수는 없으니 의학적인 치료와 함께 현재 상황에서 잘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 뿐이에요. 사실 지금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 만큼 좋은 해결책은 없지요." 


"그렇군요.. 상황을 바꾼다라니..  우선은 그럴 수는 없으니 약을 처방받는 게 저에겐 도움이 되겠네요." 


위 대화를 끝으로 나는 불안과 자율신경계를 안정시켜 줄 수 있는 종류의 약을 처방받았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아주 안전한 성분 위주의 약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병원을 나오면서 "혹시 지금 제가 하는 직무가 저와 맞지 않아서 겪는 일시적인 어려움은 아닐까요?"라는 마지막 질문은 왜 했을까를 돌이켜 생각했다. 마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타인의 입을 통해 확인받고 싶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나는 내 상태를 진단받는 것 보다도 지금 내 상황에서 벗어나 봐라고 말해줄 수 있는 타인의 확언이 필요해서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고 상황을 바꾸면 나아질 수도 있다는 말이 내가 오늘 처방받은 약 보다도 훨씬 내 삶을 안정시켜 줄 것 같다는 왠지 모를 기분을 느꼈다. 공황과 불안 장애라는 진단이 생각보다는 그리 내 마음을 무겁게 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힘들어서 병원을 찾았지만 나는 내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꾸준한 치료와 건강한 생활 습관을 통해 금방 회복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오히려 내가 그동안 방황하고 고민했던 길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편안했다. 진단받은 병명 보다 내가 상황을 바꾸어야 할 때라는 확신이 나에게는 더 큰 영향을 준 것이다. 


그리고 병원을 나와 햇빛이 뜨거운 도로를 걸으며 눈부신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최근 내가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마치 병원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이 앞으로 나에게 새로운 곳으로 인도해 줄 것 만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나의 "마지막 퇴사"는 이미 이 날 결정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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