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앞둔 상태, 자취를 했던 나는 오피스텔의 계약 기간이 남아서 나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우울과 불안으로 너무나 시끄러웠고 오랜 기간 쌓여온 자살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은 해당 문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기 때문에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시의 나는 상담 선생님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벌레만큼 싫어했다. 그 앞에 서 있으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혐오했다. 그 이유를 생각해봤지만, 그런 이유가 있을 리가, 아니면 쉽게 인지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이유가 있으려나. 그저 잘못 성장된 내 정신 때문에 본능이 고장 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니, 당장 오늘이나 내일을 살아가면서 그들 속에서 버틸 수 있을까, 그럴 자신이 없었다. 진지하게 죽음을 앞두고 정말 많이 울었다. 자살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부모님께 대한 죄송함으로 그리고 그렇게 죽어버릴 내가 너무 처량하고 불쌍해서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왜 나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것에 이렇게 힘들어하지?', '왜 저들은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야?' 하루 종일 내가 한심해서 울다가 지쳐서 눕다가 자살 생각으로 다시 울다가 지쳐서 눕기를 반복. 그러다가 문뜩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 볼 것'이 떠올랐고 평소라면 선택지에도 없던 술과 담배를 처음으로 떠올리게 됐다. 그렇게 24살 한겨울 혼자서 난생처음으로, 혹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내 선택지에 술과 담배가 생겼다. 매번 도시락이나 음료수, 과자를 사러 들렀던 1층의 편의점으로 가서 색색깔의 술을 골라 바구니에 한가득 담고 담배를 사러 계산대 앞에 서보니 뭐가 뭔질 몰라서 역시 색색깔의 담배 10개 정도를 샀다.
살면서 처음으로 술을 마셔봤다. 너무 맛없고 역겨워서 헛구역질이 났다. 이런 건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성묘하러 갔을 때 조상님께 술을 올린 뒤, 남은 술에 혀를 적시고 기겁했던 내가 떠올랐다. 알코올은 상처가 난 부위를 씻는 의료용이지 마시는 식용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치료받는 중인 지금의 내게 묻는다면 마음속에서 들끓는 불을 끄기 위해 마시는 의료용이라고 대답하겠지만. 그다음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갖다 댔는데 불이 안 붙는다. 아, 담배를 물고 공기를 뱉는 게 아니라 마셔야 하는 거였다. 오, 불이 붙었다. "켁켁켁." 눈물이 나고 토하는 것처럼 연신 기침을 뱉어냈다. 다시 들이마셔 봤지만, 반복. 이것 역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책상에 올려두고 틈만 나면 시도했다. 왜냐하면 검색했을 때 술이랑 담배를 하면 분명히 기분이 좋아진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백해무익하니 하지 말라고 덧붙여 설명되어 있긴 했지만 그런 건 내겐 상관없었다. 나는 우울했고 불안했으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술이든 담배든 얼마든지 해치워 줄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인 게, 만약 요즘같이 마약이 퍼져있어서 마약에 손을 댈 수 있었더라면 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정신이 피폐하고 약한 상태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흡연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없었고 당연히 실내 흡연이라는 개념조차 몰랐었다. 그렇게 추운 겨울에 모든 문을 닫은 채로 밖에 나가지도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서 계속 흡연을 시도했다. 당연히 매캐한 연기가 뿌옇게 쌓여갔지만 나는 그저 이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때의 나는 그 엄청난 연기를 보고도 예쁘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쌓인 뒤, 어느 날 기절했다. 대략 3일간 기절했었다. 그날은 정확하게 기억한다.
누가 현관문을 쾅쾅쾅 두드려서 깨어났다. 깨어난 나는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엄청난 두통을 느꼈고 눈을 떴지만, 눈앞이 말 그대로 새하얗다. 놀라서 눈을 깜빡거리며 크게도 떠봤는데 눈 주변의 근육을 통해서 내가 지금 눈을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눈을 통해 보이는 것은 하얀색뿐이었다. 공기가 무겁고 역해서 호흡이 어려웠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만, 곧 다시 기절할 것 같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새하얗던 시야가 조금씩 개이면서 희미하게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고 몸을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본능적으로 베란다로 기어갔다. 머리는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일어설 수가 없었다. 베란다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바닥의 차가운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너무 시원했다. 덕분에 머리가 조금씩 깨는 것 같았다. 베란다 쪽의 끝에 다다른 나는 창틀을 잡고 기대가며 조금씩 일어나 어렵게 어렵게 이중 창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며칠 동안 갇혀있던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그와 동시에 시원하고 상쾌했던 추운 겨울바람이 들어왔다. 나는 기뻐하며 호흡을 했다. 호흡이 너무 맛있었다. 조금씩 정신이 든다. 머리가 깨질 것 같고 토할 것 같고 어지럽지만, 확실히 정신이 든다. 쓰러질 것 같긴 하지만 이제 더는 기절할 것 같지 않았다. 앞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고 예뻤다. 다시 쾅쾅쾅 소리가 들렸고 그제야 대답을 했다.
나는 과거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부족해진다는 말 기억하는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멍청해 보이겠지만 100% 실화다. 뭐, 이뿐만 아니라 내가 쓰는 모든 글 또한 그렇지만. 현관문을 두드려 날 살려주신 분은 내가 지내던 오피스텔을 관리하시던 경비원 선생님이고 이 분은 내 현관문을 억지로 열어서라도 날 확인해달라는 우리 부모님의 연락을 전달받은 거였다. 왜냐하면 지난 3일간 내가 부모님의 카톡과 전화를 받지 않아서였는데, 따라서 계산을 해보면 나는 약 3일 가까이 기절했던 거였다. 그 이후로도 며칠간은 머리가 바닥에서 멀어질수록 깨질 것 같은 두통이 있어서 일어날 수가 없었기에 땀범벅이 된 채로 샤워도 하지 못하고 밥도 못 먹고 땀으로 흥건한 매트릭스와 이불 위에서 누워만 있었다. 다행히 한동안은 자살 생각이 들지 않았고 결국, 그 뒤로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다. 당시에는 혼날까 봐 부모님께 비밀로 하고 별생각 없이 잊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보니 할 말이 없다. 아직 죽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 내 죽음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순식간에 찾아올 것 같다. 이 회상 덕분에 지금의 내 삶은 보너스인 느낌이 들어서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머릿속으로는 죽는다 죽는다 했지만 나는 결국 살고 싶었던 거였다. 정말로 죽고 싶었다면 그대로 다시 눈을 감으면 될 것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눈을 뜨려고 했던 것이고 추운 겨울의 한기가 반가웠던 것이고 베란다로 기어가서 이중 창문을 열고서 깊은 호흡을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