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분을 도통 종잡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웃음이 터지고 왜? 아, 희열을 느끼는구나, 갑자기 울음이 터지고 왜? 아, 아픈가 보다. 나와 나는 잠깐의 시간차를 두고 툭툭 끊겼다. 이걸 새옹지마라고 표현해야 하나, 이유도 모른 채 기분이 좋다가도 나빠지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일어났던 그 굴레의 끝은 없었다. 개가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줄을 잡은 주인이 이끄는 데로 인도되듯 내 감정한테 목줄이 묶인 개처럼 끌려다녔다. 끌려간 후에 이유를 찾아 헤맬 뿐. 스트레스, 스트레스. 이 부당함을 주인에게 짖어대듯 하루 종일 틱을 하다가 지쳐 쓰러졌다. 그리고 몸이 멈추면 머릿속은 더 빠르게 돌아갔다.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생각들을 토해내는 뇌를 달래주듯 게워 낸 내용물을 기록으로 닦아냈다.
대학을 마쳤으니 이제 나와 세종특별자치시와의 연은 끝나게 됐고 나는 다시 경기도로 돌아왔다. 안락했던 자취 생활을 하다가 부모님이 계신 본가로 돌아오게 되니, 혼자였을 때의 압도적인 자유와 비교되면서 얹혀사는 주제에 내가 지내는 공간에 타인이 있다는 것이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아버지께 더 자취하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서울, 가양동에서 1년 더 자취생활을 이어갔다.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께서는 사이버 대학교에 편입하고 3학년, 4학년 과정을 이수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할 것을 제안하셨고 2년 뒤, 나는 2년제 대학에서 4년제 대학교를 나온 사람이 되었다.
이전에도 언급했듯 기존 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몇 개월 뒤에 서울특별시에 위치한 정신과 의원으로 기록을 옮긴 뒤에 상담 치료를 이어서 받게 되었다. 약물 치료를 병행한 상담을 꾸준히 받았던 것도 큰 도움이 됐겠지만, 무엇보다 자취하며 혼자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립되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혼자서 생각 속에 생각으로 파고들며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었던 것은 위험했지만, 어쨌든 오늘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게 됐으니 다 잘된 일이다. 혼자 있을 수 있다 보니 공황 증세는 조금씩 잦아들었지만, 그와 별개로 내 정신적 문제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생존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설 어떠한 가능성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는 진심과는 별개로 살아남을 수 있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 나는 살고 싶었고 살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그러려면 직장에 다녀야 했는데,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며 우울과 불안의 최고치를 매일매일 갱신하고 있었다. 내 경험으로 이야기하자면, 사람은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몰리는 상황이 지속됐을 때 사고방식이 변한다. 기존 사고방식으로는 답해낼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회피든 자기합리화든 뭔가를 통해서 현재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변화한다. 이것이 진화인지 퇴화인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더 다채로워진다는 것은 확실하다.
살면서 처음으로 술을 접했던 이후로 몇 년간 술독에 빠졌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평생 술과 담배를 일절 하지 않으셨다. 나는 두 분 몰래 술과 담배를 혼자서 접했기에 그것들에 대한 상식을 배울 기회가 없었다. 특히 술이 문제였다. 내게 있어서 술이란 일반적인 상식의 술이랑은 조금 달랐다. 가장 심하게 술독에 빠졌던 5개월에 대해서 말해보려 한다.
술은 잠시나마 완벽한 회피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준 자살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술에 제대로 취하는 순간 감각은 무뎌지고 정상적인 사고는 불가능해진다. 생각을 못 하는 바보로 만들어 버리면서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는 과거의 후회와 너절한 현재와 염려되는 미래로부터 느껴지는 고통의 감각을 차단시켜준다. 덤으로 웃게 된다.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어도 된다. 우울, 불안, 슬픔, 후회, 원망, 혐오 등 이유가 뭐가 됐든 감정의 절대값이 커질수록 미친 듯이 웃게 된다. 술을 마셔서 더 좋은 미래로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가능성의 미래를 팔아서 짧은 현재를 연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를 파는 것보다 현재를 연명하는 것이 더 중요했던 나는 표류 중에 바닷물을 마시듯 계속해서 술을 찾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됐었다.
평균 하루 3병씩 5개월, 한 달 동안 쌓인 소주병은 90병 내외. 당시의 난 취기 없이는 내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 들러서 참이슬 클래식 한 병과 딸기 우유 한 팩을 구매하고 편의점 밖으로 나온다. 딸기 우유로 쓴맛을 지워가며 소주 한 병을 셋에서 네 모금에 나눠마시고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 공병값으로 100원을 받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쌓여간 100원은 일주일이 지나면 약 2,000원 정도 모였다. 또, 매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혼자서 술판을 벌였었는데 마트나 편의점에 들러서 4~5만 원어치의 먹고 마시고 싶은 안주와 술을 잔뜩 사 온 뒤에 오피스텔에서 정말 많이 마셨었다. 처음에는 한 병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같은 양으로도 취하지 않게 되니, 나중에는 하루에 20.1도 소주를 3병에서 4병을 꼭 마시게 됐었다. 참고로 이렇게 몇 달을 마시면 대변의 모습이 곰팡이가 핀 녹색 덩어리처럼 변한다.
한 번은 이전의 담배 사건처럼 우매했던 사건이 있었다. 처음에는 360ml의 병 소주를 여러 병 구매하는 식으로 시작했지만, 병의 무게가 제법 나가다 보니 나중에는 1.8L의 플라스틱 소주로 구매하게 되었고 원래라면 1.8L는 이틀에 나눠 마실 양이었는데 어느 날은 3시간 만에 다 마셔버렸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바로 곯아떨어지려는데 배속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속이 뒤집어지면서 토하고 싶은 와중에 토는 나오지 않고 정말 손발이 묶인 채로 물속에 빠진 것처럼 정신을 못 차렸다. 그 이후로 그대로 26시간 정도 잤다. 어떻게 알게 됐냐면 처음에는 4시간 정도 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날짜가 달랐다.
당시에 나는 삶을 살던 게 아니었다. 죽음을 밀어내고 있었다. 인생은 꾸준히 걷다 보면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경사를 꾸준히 오르다 보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것이 보인다. 그럼, 팔다리가 없어서 이동할 수 없던 나는. 어떠한 대인관계도 형성하지 못하고 어떠한 집단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나는. 당장은 부모님 덕분에 금전적인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평생 독립할 수 없다면 차라리 일찍 사라져 축내는 돈이나 빨리 줄이는 게 더 좋은 게 아닐까. 더 이상 삶에 변화를 줄 여지가 없던 나는 내가 살아야 할 이유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더 많아졌을 때 살기 위해서 스스로 설득을 시도했지만, 늘 내 부정은 내 긍정을 완전히 감싸버리고도 남았다. 오늘 술을 마심으로써, 오늘 취함으로써, 오늘이라는 시간을 잊을 수 있었고 정신을 차리면 내일이 와 있었다. 나는 날개가 찢기고 다리가 떨어진 벌레마냥 움직이지도 못 한 채, 시간이라는 거인의 하루라는 거대한 발바닥에 매일 밟혔고 그 고통을 술로 잊어가며 연명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