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이런 나를 어떻게 해야 할까.

by ODD

늪에 빠졌다. 제대 후 몇 개월간은 상담을 받으러 가지도 못 한 채, 방에만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 했고, 군대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이 끝없이 회상되면서 매일같이 악몽을 꿨다. 굉장히 간소화해서 담백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군대에 입대한 후에 면제로 나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해내는 걸 못 했을 때의 시선과 내 노력 따위로는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로 깎여나가는 내 자존감, 내 병을 꾀병으로 확정하고 추궁하는 질문부터 수군대는 내 이야기까지, 군대와 나 서로에게 아픈 일이었다. 그곳에서 정신적으로 극한까지 수없이 몰렸었기 때문에 이미 뭔가 단단히 잘못된 상태가 됐었다. 하지만 나는 군대를 탓할 수는 없다. 내 분수도 모르고 너무 어린 나이에 입대한 내 잘못이겠지. 내 한심함으로 자책함과 동시에 뭔가를 원망했다. 하지만 나 이외에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분노와 슬픔을 발산할수록 그 화살은 내게 돌아와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또 다른 상처를 만들었다.



나는 힘들 때 칼이 생각났다. 난 칼을 좋아했다. 동시에 무서워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고 해야 할지, 무서워했기 때문에 좋아했다. 나를 잠재울 수도 있을 그 차가운 칼에게서 나를 통제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느끼곤 했다. 우울과 불안으로 가만히 있지 못 할 때, 칼로 척이나 상상을 하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칼은 어쩌면 삶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열쇠가 아닐까 싶었다. 꽂고 돌리면 열리는 죽음의 문.



이런 썩어빠진 생각이나 하면서 늪에 빠져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모님의 걱정은 점점 더 커졌고 나 역시 헤어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자, 일어나자. 몇 개월이 지나고 늪에 완전히 잠기기 직전이 되어서야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나는 바로 정신의학과를 찾았고 이전보다 더 깊은 수준의 상담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 이후로부터는 더 강한 약물 치료와 함께 상담 시간을 주 15분에서 주 45분으로 연장하게 됐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어느 정도 회복함과 동시에 마침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연초가 됐고 2년제 대학을 마치기 위해서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 의식과 무의식의 괴리는 더욱 심해지게 됐다. 사람은 내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고 자기암시를 했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사람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무의식은 극에 달했다. 타인을 수용하는 능력을 상실해 버린 나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그들을 거부했던 것이다. 더 이상 폐를 끼치는 일만큼은 되풀이되지 않도록 내 모든 행동을 의식하고 통제했지만, 정신을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 뒤틀린 사고방식은 생판 모르는 남을 혐오할 정도까지 되어서 도저히 기숙사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게 내 첫 자취 생활을 하게 됐고 혼자라는 안정감과 자유는 내게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됐었다. 2년제인 만큼 1년만 쉬어도 동기는 보이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애초에 친구가 없던 내게 있어서는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수업 시간에는 가장 앞자리에 혼자 앉았고 쉬는 시간에는 이어폰을 낀 채 엎드려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바로 오피스텔로 돌아갔다.



크게 바뀌지 않은 내 학교생활과는 다르게 내 정신 상태는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고등학생 때의 정신적 어려움이 1이라면, 대학생 1학년 때가 3, 대학생 2학년 때가 20 정도 되는 것 같다. 2학년 1학기 때부터 공황 증세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학교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을 때 사람에 대한 압박으로 숨을 못 쉬어 도중에 버스에서 내리거나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놀라며 자리를 양보해 줬던 적도 있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고 모든 것을 확인하려 계속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면서 오로지 숨을 곳을 찾으려 했다. 그저 내 존재를 가려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더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문밖을 나설 땐 꼭 마스크를 써야 했다. 2학년 2학기 때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학교에 가지도 못 했고 사람을 마주하지도 못 했고 가까운 편의점에도 갈 수가 없었다. 당시는 코로나를 비롯한 전염병이 없을 때였고 나는 단순히 얼굴을 가리고 숨기 위해서만 마스크를 써야 했다.



물론, 2학년이 되고서 새로 만난 이들 중에서도 내게 친절한 사람은 존재했지만 나를 배려해 주는 그들조차 본능적으로 거부하고 밀어냈던 나는 스스로가 너무 창피하고 미안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그래, 숨는 게 나을 것이다. 예민하게 가시가 돋친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학년 2학기가 시작되기 전쯤, 교수님께 휴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교수님께서는 내 사정을 이해해 주심과 동시에 조금 더 힘내서 최대한 다녀보자며 많은 배려를 해주셨고 교수님 덕분에 감사하게도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그때 졸업을 하지 못 했더라면 향후 몇 년 뒤에나 졸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졸업이라고 하니까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졸업을 앞두고 종강 파티를 뷔페에서 했었는데 교수님께서 잠깐이라도 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고 나도 그게 최소한의 예의인 것 같아서 참석했지만, 접시에 젤리 몇 개만 담고 마스크를 쓴 채로 밑 부분을 살짝 올리는 식으로 먹었다. 입장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일어났고 교수님들께 짧고 부족했던 마지막 인사를 드린 뒤에 도망치듯 나온 것이 내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기억이다. 아, 하나 더 떠오르는 기억은 축제, 축제는 가장 버티기가 어려웠다. 나는 1학년일 때와 2학년일 때 모두 축제가 끝나기 전까지 기숙사나 보건실이나 화장실이나 교내 건물 뒤편에 혼자 숨어있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안타까울 뿐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랬었다.



나는 나조차도 어색할 정도로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1학년 1학기 때는 학사 경고를 받을 정도로 공부를 못할 때도 있었던 반면에, 2학년 1학기 때는 과에서 2등을 하고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잘할 때도 있었다. 사람과 일상적인 대화는 못 했던 반면에, 전교생이 참가할 수 있었던 교내 프레젠테이션 대회에서는 상(정확하지 않지만 아마 2등)을 수상받았다. 내 노력을 좋게 봐주신 교수님께서 항공사에 면접을 보게 되면 추천서를 써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신 적도 있었다. 이 말은 취업 성공에 아주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정말 정말 기뻤다. 지금까지는 많이 부족했지만, 드디어 사회 속에 녹아들어 정상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런데 그 이후로부터 점점 심해졌던 내 공황장애가, 내 약함이 모든 것을 말아먹었다. 모조리 전부 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나는 내게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다. 나는 나를 끝없이 방해했고 그런 내게서 나를 매번 지켜주지 못했다.



내 상충된 여러 입장의 마찰은 점점 커져갔다. 세상은 문제없고 사람은 무해하며 내 걱정은 지나치다고 주장하는 나와 나도 다른 일반적인 사람처럼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같이 춤추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나와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두려워하고 거부하며 그들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벗어나려는 나와 내 부족함의 탓을 다른 곳에서 찾으며 사람들을 무시하고 혐오하는 나와 제삼자인 양 이들 사이에서 서로를 중재하려 하지만 갈피를 못 잡고 혼란스러워하는 나와 혼란으로 방황하다가 지쳐 무기력하게 쓰러진 나로 나뉘어 갔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분신술이라는 가상의 기술이 있다. 단순히 같은 대상을 복제하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한 명이 빠르게 이동하여 여러 명으로 보이게 된다는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내 정신의 전환이 너무 잦아서 실질적으로는 여럿인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나는 오랜 기간 내 비정상적임에 의해서 많은 피해를 봐왔다. 정상의 당연함이 내겐 당연하지 않은 이유를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고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짙어질수록 나 자신을 분석하고 원인을 파악한 뒤, 정상적으로 고치고 싶다는 목표와 오기로 이어졌다. 그렇게 정신의학과의 분석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에게 질문을 하거나 내 과거의 기록과 기억을 통해서 긴 시간 동안 날 분석해 왔고 그중 가장 최근의 주장 하나를 말해보겠다.



처음에는 하나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순수한 사람이다. 지금도 내 정신의 중심에는 어른인 내가 거슬려 할 정도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하고 나는 당연히 상처받게 된다. 상처를 받으면서 불안함이 생겼다. 계속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은 너무 아팠다. 그렇게 방어기제가 발동됐고 내 순수함을 지켜줄 냉혹함이 생겼다. 냉혹함의 방어력은 높지만, 스트레스가 빠르게 쌓인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도록 모두를 무시하기 시작하면서 오만함이 생겼다. 무시한다는 것도 뭔가를 소모한다는 것, 그마저도 지치게 되면 무기력함으로 넘어갔다. 무기력함이 지속되면 생물은 죽어간다. 그 어둠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극과 희열을 찾으려 취함으로 넘어갔다. 취한다는 것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고 후회가 쌓여간다. 그렇게 잔뜩 취하다 보면 빛을 찾게 되고 어느 순간 순수함이 밝게 내리쬔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서로 다른 입장을 지닌 내가 끝없이 전환되거나 동시에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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