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쥐.

by ODD

어두운 시간을 보내던 중 사고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 궁지에 몰린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은 연기.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연기, 사람을 좋아하는 연기. 마침 나는 쥐띠다.


Fake it till you make it.


내가 좋아하는 문구 중 하나다. 이제까지의 내 과거와 전혀 연관이 없는 새로운 나, 내가 원하는 나를 상상한 뒤, 그 캐릭터에 몰입하기로 했고 놀랍게도 그 방법은 내게 효과적이었다. 어차피 나라는 존재는 계속 변하는데 내가 원하는 나로 변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지 않을까. 꽤 체계적으로 준비했었다. 먼저 세계관을 설정하고 그곳의 캐릭터들에게 역할을 부여했다. 그리고 종이에 캐릭터들의 외형부터 세세한 성격과 습관, 설정까지 적어놓고 거울을 보면서 여러 캐릭터에 몰입하는 연습을 했었다. 4개월, 아마 4개월 정도가 넘어갔을 때가 돼서야 새롭게 만들어진 '3'이라는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참고로 현재 나는 내 캐릭터들 중 여섯 종류의 캐릭터에 몰입하여 스스로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다.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자주 듣는 말 중 하나는 변했다는 말이다. 물론, 감탄의 의미로. 나는 이 시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내 존재에 변화를 줬다. 장점을 강화하고 약점을 잡아먹으며 여러 버전의 나로 살아왔고 유용했던 버전만 남겨두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대외적으로 6892B8라는 닉네임을 사용한다. 여기 브런치에서는 닉네임에 숫자를 사용할 수 없어서 사용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이 닉네임을 영어로 읽으면 Six ate nine to Be eight.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숫자인 6은 나를 의미하고 나와 정반대의 존재인 9를 잡아먹는다. 무한인 8이 되기 위해서.



준비를 마친 나는 실전에 돌입하기로 했다. 난 24살 가을에, 살면서 처음으로 가족 이외의 사람을 자의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당시 검색을 해 보니 이런저런 모임들이 많이 존재했고 그중에 하나를 선택했다. 그렇게 영어 공부 모임에 나가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지난 내 과거의 어려움이 안쓰러워질 정도로 나는 타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신기했다. 그리고 재미있었다. 연기라는 가면 뒤에 숨은 나는 기존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고와 언행을 구사했고 번지 점프대에서 뛰어내리기 직전까지의 공포가 모조리 사라진 듯 그 비행의 순간을 온전히 즐겼다.



처음 경험한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록 연기였지만 타인과 함께했던 스스로가 엄청 대견했던 게 기억난다. 어항을 머리에 쓰고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아직 어색하긴 했지만, 점점 적응해 가며 사람을 좋아한다는 연기를 통해서 실제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마저도 연기였을 수도 있겠지만. SNS를 교환하자는 제안도 들어보게 되어서 살면서 처음으로 공개 계정도 만들게 됐다. 친해지게 된 사람이 생기면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두고 신선한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인지하던 세계의 차원이 한 단계 높아진 느낌이 들었고 살아가는 1초, 1초마다 생기라는 소스가 듬뿍 발라진 듯, 이전에는 느낄 수 없던 활력이 가득했다. 모임이 끝나면 아쉬웠고 다음의 모임이 기대됐었다.



그리고 대망에 크리스마스와 연말 파티에도 참석하게 됐다. 파티라니, 내가? 처음에는 지레 겁먹고 취소할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5번의 파티에 모두 참석했다. 약 2,500명이 모이는 파티에 참석하기도 했고, 처음으로 혼술이 아닌 누군가와 술을 같이 마시며 게임도 했고, 파티에서 지정된 팀의 장이 되어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했고, 다른 팀과 경쟁하는 팀 게임에서 이기기도 했고, 심지어 춤까지 췄다. 내 연기의 몰입은 상당했다.



다만,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성(性)이다. 먼저 내 진심에 대해 소개하자면 약 25%는 이성을 원하고 약 5%는 동성을 원하고 약 30%는 성적인 것을 거부하고 약 40%는 성적인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이런 충돌이 끊이지 않은 채 오랜 기간 시간이 흐르니 어떤 진심을 따라야 할지 혼란스러운 상태다. 처음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친절하고 호의적이었지만 분위기가 다음 단계로 넘어갔을 때 그다음의 연기가 준비돼 있지 않는 나는 혼자서 얼탔다. 그때 느꼈다. 사람들은 보통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본다. 양성으로 나눠서 본다. 모두가 인지하는 그 무르익는 단계로 넘어가자 대부분의 경우, 남자는 여자를 노리고 여자는 남자를 골랐다. 그 전투 속에서 목적과 방향성이 없던 내 대화의 의지는 묵살됐다.



고점과 저점의 편차가 크긴 하지만 내 외모는 보통 쓸만한 편이다. 주변인들의 평가로는 준수하다고 한다. 평균적으로 10점 만점에 8.3점을 받았다. 고백은 9번 받아봤고 한 번은 친구의 여자친구가 그 친구 앞에서 술에 취한 채 나한테 잘생겼다며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해서 분위기가 이상해진 적도 있었다. 자랑 맞다. 다음 할 이야기를 위해서 말해야 했다. 겉으로 멀쩡하니 다가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어리바리하며 제대로 된 반응을 못 하니, 떠났다. 그 '떠남'은 내게 타격이었고 이런 과정이 계속 반복될수록 나는 점점 위축되었다. 세상에는 사람이 아닌 남자와 여자가 있다는 것과 정말로 세상에 나오려면 더 강한 목적을 띄고 전투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중요한 교훈을 얻고 모임에 나가는 것을 그만뒀다. 그리고 서울, 상암동으로 건너가 1년 더 자취 생활을 하다가 경기도로 돌아왔다. 경기도로 돌아온 나는 이전에 빛을 발했던 연기를 통해서 일을 해보기로 했다. 내게 일, 직장이란 정상이라는 증명의 의미였다. 이것만 해낼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과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다짐으로 나이키 매장에 지원했고 정규직으로 합격했다. 당연히 힘들 것을 예상했고 예상대로 힘들었다. 나름대로 버텼다. 아니, 잘했다. 펄스라고 불리는 고객의 만족도와 칭찬 메세지를 받는 시스템이 있었는데 내가 가장 많이 받는 날이 있을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잘했었다. 그러다가 문제가 발생했다. 연기력은 좋았지만, 그 능력을 유지시키는 지속시간 너무 짧았던 것이다.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쓰러질 듯이 어지러운 공황 증세가 다시 도지더니 결국 폐만 잔뜩 끼치고 2주 만에 퇴사했다. 그 뒤로 몇 달간 방안에만 박혀서 지냈다.



사회에 뛰어드는 것이 한층 더 두려워졌다. 얼마나 많은 타인에게 상처를 줬었는지도, 내 상처 위에 상처가 얼마나 덧났던 건지도 모르게 됐다. 하지만 생존의 룰은 변하지 않았다. 몇 개월 뒤에 아버지께서 미군 부대 안에 있는 매장의 정규직 공고를 내게 알려주셨고 나도 언제까지 이렇게 처져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두 번째인 만큼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와 동시에 같은 일이 반복될까 봐 무섭기도 했다.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지원했고 정규직으로 합격했다. 역시 어려웠지만 예상보다 잘 버텨냈다. 관리자님께 혼나기도 했지만, 칭찬을 받기도 했고 선배 직원분들과도 적응해 갔었다. 아무 탈 없이 무려 한 달을 넘겼다. 이번 연기는 뭔가 잘 되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두 달째가 되어가니 망할 공황 증세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유 모를 압도적인 불안감으로 그냥 서 있기도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나 더는 "못할 것 같다."는 말을 너무 하기 싫었다. 왜 내가 이걸 못하는 건데? 못하는 것은 이제 질색인데, 정말 못해서 그 말을 안 할 수가 없는 그 상황이 너무 역겨웠다. 결국, 또 폐만 잔뜩 끼치고 2달 만에 퇴사했다.



진심이 들어가지 않은 연기는 연기로 시작해서 연기로 끝나는 그저 곧 사라져 버릴 연기였을 뿐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