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유통기한은 어느 정도일까. 적당히 10년? 아니면 50년? 어쩌면 평생? 나는 어느 한순간에 고꾸라진 게 아니다. 여러 사건과 상황이 중첩되고 압축된 감정이 폭발하면서 퍼져버린 내 잔해는 여기저기 널브러져 지나가는 뭔가에 계속해서 밟힌다. 결국 내 탓, 아니면 이런 나를 만든 네 탓, 세상 탓, 탓, 탓, 탓. 탓의 주인을 찾으면 나는 만족해하며 떠날 수 있을까. 떠난다면 어디로, 모두가 아무런 이유 없이 모여 춤추는 곳, 인적은 드물지만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조금 높은 곳, 이런 나라도 좋다며 웃어줬던 네가 있는 곳, 내 안식처는 어디에. 나는 누군가의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하긴, 나도 감사한 병원에 아플 때만 찾아간다. 아픈 게 사라지면 본능에 이끌려 찾는 파티를 더러운 욕망이라며 낮잡아 폄하하기에는 나 또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 없이, 그들과 같은 인간이겠지. 하지만 미비한 존재임에 한탄하면서도 계속해서 허물을 벗어내려는 내가, 그 어두운 곳에서 계속해서 길을 만들어 나아가려는 내가 자랑스럽다.
아, 또 바퀴벌레. 거울에 비친 바퀴벌레. 나, 내 존재 자체가 바퀴벌레였던 것이다.
"자수합니다. 저는 제 인생을 망친 공범 중 하나입니다."
이쯤에서 이전까지는 언급하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는 최대한 정상적인 범위 내에서 내 과거를 전달해 왔지만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정상과 비정상 모두가 사용돼야 한다. 비정상은 처음부터 내 입 안에 들어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걸 삼켰다. 내 85%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나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헛된 욕망이 있었다. 아니, 사실 아직도 조금은 미련이 남아있다. 그리고 내가 꿈꿨던 그 존재의 특징 중 하나는 인간과 생물의 생리를 초월하는 것.
나는 자아가 생긴 후부터 1년 전까지 약 10년간은 무(無)성이 되고 싶어 했다. 깊은 고민 후, 진심으로 생식기 제거 수술과 여성 호르몬 주사를 원한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가 혼나곤 했다.
내 존재에 씌워져 있는 인간이라는 탈을 억지로 벗겨내기 위해서 나와 나를 분리하여 지배했고 무의식적으로도 인간과 나를 구분하기 위해서 평생 그들과 몸도 마음도 섞지 않았다.
긴 머리카락에는 탈색과 염색을 하고 얼굴에는 진한 화장을 하고 귀에는 치렁대는 귀고리를 하고 왼손의 검지, 중지, 소지에는 각각 와인, 바이올렛, 그린으로 매니큐어를 칠하고 마르고 탄탄한 신체는 유지하되 너무 많은 근육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며 온몸의 털은 제모한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캐릭터가 있었고 그 캐릭터의 외형 역시 구체적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 외형을 갖기 위해서 치장하고 외모에 집착했다.
나는 애초에 뭔가가 크게 결핍된 비정상이었기 때문에 장님의 청각이 뛰어난 것처럼 결핍으로 인한 비정상을 특징, 나아가 장점으로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할 것을 선택했다.
늘 목표가 높았다, 내 분수와 능력을 감안하지 않은 터무니없는 목표뿐이었다.
어디서부터인지 돌이켜보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자아가 생겼던 그때부터.
벌써 혹은 아직 28살, 누군가에겐 ‘나이 좀 먹었네’ 또, 누군가에겐 ‘한창의 나이네’.
같은 태양을 두고도 누군가에게 일출인 것이 누군가에겐 일몰일 수 있듯이, 시간과 인지는 상대적이고,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껴져, 입을 열게 되었다.
나는 자아가 늦게 생긴 편이다. 누군가는 평생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어린아이일 때부터 이해했다더라.
자아가 생기고 처음 든 생각은 '인간에서 벗어나고 싶다.'
주변 어디를 봐도, 인터넷이나 TV를 봐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거기서 거기였다.
강해지고 싶었고 높은 곳에 올라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며 이해하고 싶었다.
그리고 저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이상에 대한 열망이 커질수록 현실에 대해 절망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이 아래의 것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간을 폄하하기 시작했으며, 그 범주 안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흙탕에서 뒹구는 돼지를 비웃었지만, 그 진흙탕은 내 발밑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발 역시 족발인 느낌.
인간에게 다양한 역할이 있다지만, 99% 이상의 톱니의 역할은 사양이었고, 그 역할을 맡느니 차라리 무대를 떠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오만하다.
나는 오만해야 했다.
오만하지 않으면 내 분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행동이 오만하진 않았다.
나는 생각과 행동의 구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언행에 대해선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지켜왔다.
그게 곧 내 역사의 불변할 한 조각을 차지할 테니 집착할 수밖에.
“너는 무엇을 마주하고 있니, 무엇과 싸우고 있길래, 그렇게 울상이야.”
“저는 인간성과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왜 인간을 넘어서고 싶은 것이냐.”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높은 수준의 존재가 되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감각, 내가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꿈의 보물.
같은 글 한 구절, 같은 사진 한 장, 같은 음악 한 곡을 들어도 사람마다 서로 느끼는 것이 다를 텐데, 단순히 ‘다르다’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다르다’를 넘어선 수준의 차이 또한 명백히 존재하며 이런 수준의 차이는 감각에서 결정된다는 생각을, 감각의 수준은 이해력과 직결되며 사고력에 큰 영향을 끼치고, 높은 분해력을 지닌다면 같은 대상을 두고도 범인으로서는 얻지 못할 양과 질의 결과물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감각의 정의는 굉장히 다양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원하는 감각은 평범한 사람 따위는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감각.
겹겹이 둘러싸인 거짓과 착각의 베일을 관통해, 진실과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감각.
딱히 내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디를 바라봐도 그야말로 햄버거처럼, 수많은 이야기와 이유들이 중첩되어 있는데, 그 중첩된 덩어리를 제대로 이해해 내지 못한다면 그저 착각으로 남게 될 것이며, 덩어리를 풀어 내용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온전한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평균의 어린아이와 평균의 어른 사이 정신의 차이만큼, 혹은 그 이상의 차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그 편차는 계속해서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 종교는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며 종교를 가졌던 적 또한 없다.
스스로를 이해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에 나 이외의 또 다른 신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I'm my only god." 내가 내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다.
나는 나를 숭배하는 사이비 신자임과 동시에 내게 숭배받는 신이었다.
누구나 스스로가 스스로의 유일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자신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줄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가능성의 의지를 갖고 있는 자신이 신이 아니면 누가 신이냐는 생각이다.
처음부터 염두에 두진 않았지만 11년 정도 지난 나를 스스로 돌이켜보면 나는 결과적으로 종교인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생리를 파괴하고 내 이상형대로 조형한 후, 그 형상을 유지하기 위한 신념이 생기면서 거친 수술의 부작용이 시작된 것 같다.
인간을 넘어선 다음의 존재가 되기 위해, 방해되리라 생각되는 인간의 모든 특징을 잘라낼 것을 시도했다.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이상형을 그려냈는데, 이 모습은 인간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신의 모습에 가까운, 어떠한 욕구도 없는 높은 수준의 지성체.
욕구가 존재하는 것부터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모든 행동이 감각과 사고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예로 들면, 먹는 것 자체를 그만둘 수는 없겠지만 하다못해 식욕을 지배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내 성장 환경의 운이 좋아, 부모님의 감사함으로 당시에 나는 원치도 않던, 유럽 여행을 떠났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그 나라만의 음식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먹지 않았다. 그 음식을 먹었다가 혹여 그 음식이 좋아지고 기억에 남아 또 먹고 싶어 할까 봐, 원하는 것이 늘어날까 봐 먹지 않았다.
나는 그런 인간이었다.
같은 방식으로 물욕, 성욕, 수면욕을 비롯한 모든 욕구.
인간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지니는 기본적인 여러 욕구를 통제하는 것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닭다리살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부드러운 닭다리살보다 뻑뻑한 닭가슴살을 선호한다고 들었다. 건강을 떠나서 맛으로만 선택했을 때, 닭가슴살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나는 딱히 닭다리살이 건강에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건강적인 측면에서 닭가슴살이 닭다리살보다 더 건강하다고 인지하고 있다.
멋지지 않은가! 좋아하는 것이 다를 뿐인데 욕구에 양보하지 않고 건강에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성 감각의 대부분은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이성을 원하지만, 동성애자라면 진심으로 이성이 아닌 동성을 원하게 된다. 많은 이성애자는 보통, 만나게 될 이성을 위해 많은 관심과 노력, 시간을 소비하겠지만, 무성애자라면 진심으로 아무도 원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내가 양성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게 된다면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소비될 많은 노력과 자원과 시간이 줄어들 테고, 더 나아가 진심으로 혼자인 것을 좋아하고 행복해한다면, 부정적인 반응을 견뎌내는 것을 넘어서 긍정적인 반응까지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능과 욕망을 밀어낸 뒤, 무미건조하게 텅 빈 공간을 만들어 내면 비로소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도화지 완성이다.
정리하자면, 내가 나에게 적용했던 실험들의 공통점은 진심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수정하는 자기 세뇌다. 세뇌, 한자로도 그렇지만 이 단어를 영어로 무엇이라 하는지 아는가. Brainwashing, 뇌를 씻는다니 직설적이고도 매력적인 표현이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감각을 얻기 위해서 보통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고, 인간을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배척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뿌리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고 프로젝트는 실패한 듯하다.
그렇게 11년이 지난 현재, 나는 인간성이 어중간하게 거세된 인간이 되었다.
사실, 나는 나를 망쳐버린 공범 중 하나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어느샌가 그렇게 되어있었다. 늘 무지개를 쫓아 헤매는 것 같았다.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다는 착각이 들다가도, 어느샌가 저 멀리 도망가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오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오는 관성으로 인한 영향은 여전히 날 집어삼킨다.
괴물의 입안으로 뛰어들고 배를 갈라내어 나만의 작은 영웅이 되고 싶었던 나를, 결국 그 축축하고 어두운 입안에서 울부짖게 된 나를 가여히 여겨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