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따고 코이카 해외 봉사를 하러 가지 못하게 된 후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알아보다가 안산에 있는 한 국제 고등학교에서 외국 학생들을 가르칠 방과 후 특별활동 교사를 찾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일단 은퇴를 하고 나니까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잘할 수 있다고 해도 나이가 항상 문제가 되었다. 일단 출생연도를 보면 제외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가 급격히 노령화 사회가 되어가는데도 노인 일자리는 쉽지 않다. 내가 고용주라 해도 일단 나이가 많으면 좀 꺼려질 것 같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많은 선입견일 수도 있고 실제일 수도 있는 부정적 시선이 많아서 보기도 전에 일단 탈락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젊은 사람들 일자리를 빼앗는 건 아닌가 해서 조심스럽고,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이가 많은 게 죄도 아니고 지금껏 살아오느라 고생했는데 사회에서 홀대하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동안의 경험이 아깝기도 하다. 우리가 누구인가. 나라 부강하게 세우고 부모님 모시고(제 얘기는 아닙니다만), 이제 자녀 결혼할 때 전세비라도 보태줘야 되고, 아이라도 낳고 저희들끼리 잘 살면 땡큐고, 손자 학원비를 대 줘야 한다는 베이비 부머 세대 아닌가. 뭐 정치가 잘못돼도 노인들 탓, 나이 든 게 죄인양 취급되는 것 같아 살짝 억울하기도 하다.
담당부장님이 면접보기가 좀 편치는 않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도 마땅한 젊은 교사가 없었거나 일단 경험도 많고 하니까 한 번 써보자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면접을 통과했다. 내 입장에서는 어렵게 자격증 땄는데 한 번 사용해 보고 싶었고, 교사 경력이 많다 해도 한국어 교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이어서 경험해 보고 싶었다. 다행히 학교와 나의 필요에 접점이 있어서 드디어 한국어 교사를 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2, 3학년 학생들이었고 중국과 러시아 학생들이 주였다. 두 나라 학생들의 특성이 다른 것도 재미있었다. 그때 학생들을 보면 중국 학생들은 좀 조용하고 성실한 편이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다문화 학생들의 특성상 가정 문제들이 있어서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 있기도 했다. 러시아 학생들은 일단 쾌활하고 말소리가 크고 옷차림이 화려하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맡은 반은 중국 학생이 많았다.
3학년 학생들은 한국어능력 시험인 TOPIK 자격증이 있으면 대학 입시에서 특별전형에 지원할 수도 있고 가산점이 있는 전형도 있어서 열심히 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성적도 좋아서 나름 좋은 경험이었다. 수업이 없을 때도 학생들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소식을 들었다. 원래 1년 하기로 했었는데 내가 8월에 갑자기 부산으로 이사가게 되어서 한 학기만 하고 그만둔 것이 아쉬웠다.
그 후에는 월드샤프라는 기관에서 외국에 있는 학생들과 연결해서 일대일 멘토 멘티로 한국어 가르치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미얀마 학생이었고 지금은 태국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미얀마 학생은 성인이었고 한국어를 조금은 알아들어서 그런대로 가르쳤는데 지금 가르치는 태국 학생은 고등학생인데 한국어를 하나도 못해서 주로 영어를 쓰지만 영어도 잘 못 알아듣거나 할 때는 태국어 번역앱을 이용하기도 한다.
줌으로 하다 보니 우리나라는 인터넷 상황이 좋지만 상대국가는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자주 끊기기도 하고 요즘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전기가 나가서 수업을 못 하기도 했다. 열악한 상황이기는 해도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이 있는 한 가르쳐주고 싶고, 한국어를 알리고도 싶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한다. 시차가 있기 때문에 저녁 늦은 시간에 하게 되어서 가끔은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노후에 봉사활동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 감사하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