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빅퀘스천-현대 서구의 지성들은 불교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니체, 들뢰즈, 보드리야드가 바라본 불교와 인간의 삶’이라는 주제로 조계사에서 열린 강의였다. 나는 철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들뢰즈를 강의하는 강사가 우리나라 철학계에서 굉장히 유명한 분이시라고 했다. 강의 제목에 이끌려 바로 신청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조계사에 갔다. ‘부처님 오신 날’ 지난 지가 얼마 안 돼서인지 조계사 마당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강의 장소는 불교중앙박물관 지하 공연장이었다. 온라인과 같이 진행되는 것이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첫 번째 시간은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니체의 철학과 불교: 삶의 고통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라는 주제였다.
”니체의 철학과 불교의 유사성은 인생의 고통을 인간 자신의 힘을 통해서, 인간 정신의 변화를 통해서 극복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내세나 유토피아뿐 아니라 그 어떠한 소유물에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정신을 지향하고, 그 어떠한 고통도 흔쾌하게 긍정하거나 여여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 차이점은 현실적인 삶에 대해서 니체는 적극적인 긍정을 추구하지만, 불교는 적극적인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달관의 자세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니체는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원한과 증오를 선의의 경쟁심으로 승화할 것을 촉구하는 반면 불교는 모든 경쟁심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니체는 초인을 강한 의지로 자신을 단련하고 훈육함으로써 일상적인 자아보다도 더 강력한 자아를 형성한 자로 본다면 불교는 자아의 강화가 아니라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주창하고 있다. “
그러니까 니체는 강한 의지를 가진 영웅 같은 존재를 지향했다면 불교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기 중심성을 소멸한 상태를 지향했다고 볼 수 있다. 역시 성인이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니체는 불교가 유럽의 강건한 정신을 위협한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두 번째 강의는 서울과학기술대 이진경 교수의 ‘질 들뢰즈 : 차이의 철학을 통해 바라본 불교적 사유의 세계’였다.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동일성의 사유란 ‘내’가 가진 지위, 선악, 미추의 기준으로 남들을, 모든 것을 분별하는 것이다. ‘차이란 동일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때, ‘세상에 똑같은 두 장의 나뭇잎은 없다.’ 지금까지 존재해 온 모든 인간 가운데 똑같은 두 사람은 없다. 고로 세상에는 오직 차이만이 존재한다. 즉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나’ 또한 그렇다. 한순간도 같은 ‘나’가 없다. 이런 것이 불교의 무아와 무상과 관련 있어 보인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라는 육체도 크게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을 것이고, 나의 정신세계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똑같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해는 하지만 이렇게 이론적으로 학문적으로 설명을 들으니까 뭔가 ‘그렇지’ 하는 깨달음이 왔다. 왜 이진경 교수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심오한 내용을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게 잘 전달하는 능력 있는 분임을 알 수 있었다. 들뢰즈에 대해 알아보고 싶어 졌고 돌아와서 이진경 교수가 쓴 들뢰즈에 대한 글을 읽어보게 되었다. 가르치는 사람은 학습자가 스스로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최고의 강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 번째 강의는 해인사 승가대학의 보일 스님의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인공지능, 불교 : 인공지능 시대에 길을 잃지 않는 사유의 방법’이라는 주제였다.
"프랑스의 장 보드리야르는 저서에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라는 개념의 시뮬라시옹이라는 말을 통해 기호에 이끌려 사는 현대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뮬라르크란 원본 없는 이미지, 광고를 통해 창조된 이미지, 상품 속에 들어 있는 환상이다.' 시뮬라시옹이 지배하는 현대사회는 실재가 이미지와 기호의 안갯속으로 사라진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판치는 AI세상에서 우리가 허상을 구분하는 안목을 가지고 기호에 이끌려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나를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요즘 별생각 없이 살다가 수준 높은 강의를 듣고 나니 뭔가 사유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고 채워지는 듯한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편 또 나의 무지함도 깨닫게 해 주었다. 어쨌든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