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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팅 앱 사용자 Sep 16. 2024

이탈리아에서 첫 수업과 피에솔레

언니에게

피렌체엔 수요일 밤에 돌아와서 목요일에 첫 수업을 들었어. 이탈리아 대학 분위기가 이런지 아니면 이 수업만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수업이 10시 시작이면 학생은 열 시 십 분쯤 교수님은 열 시 십오 분쯤 들어와. 학생들이 수업에 늦어도 교수님은 별로 개의치 않으셔. 우리나라에선 학생이 수업에 늦으면 허리를 숙이고 조용히 들어오는 반면, 이탈리아 학생들은 교수님께 ‘챠오’라고 인사하며 당당히 들어와. 출석체크도 안 하는 이 자유로운 분위기가 나에겐 정말 컬처쇼크였어.



처음 들은 수업은 POLITICS OF EUROPEAN INTEGRATION인데, 진짜 하나도 이해가 안 가서 좌절했어. 교수님이 이탈리아 억양이 섞이신 영어로 EU의 역사를 이야기하니까 정말 혼돈의 카오스…… 나랑 같은 수업을 들은 식원 오빠는 사학과 전공이어서 나름대로 잘 이해하더라고. 식원 오빠가 말하길 사학과 교수님들의 수업 방식은 포인트 없이 계속 이야기하는 거래. 난 정말 4시간 동안 잠과 싸우면서 수업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마구마구 졸았어.



결국 수업을 바꾸기로 다짐했어. 이 수업을 듣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인 거 같아. 전공과도 무관하고, 고등학생 때 선택 과목도 역사를 피해 윤리, 경제를 들었으니까. 영어 전용 수업이긴 하지만 석사 수업을 듣기엔 무리야. 피렌체 대학은 석사과정부터 영어전용 수업이 있어 교환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석사 과정 수업을 들어야 해. 이탈리아의 학점제도는 우리나라와 달라. 보통 전공 하나가 일주일에 짧게는 6시간에서 길게는 8시간을 차지하고 한 수업 당 학점은 6학점에서 12학점 정도야. 그래서 수업 두세 개만 들어도 시간표가 꽉 차서 신중히 골라야 해. 나는 일단 두 개 정도만 신청하려고.


오늘은 이탈리아의 소도시 피에솔레에 다녀왔어. 피렌체에서 버스를 타고 20분이면 가는 곳인데, 피렌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두오모를 중심으로 보면, 미켈란젤로 언덕은 ‘저기 두오모가 보이는 군’하는 정도의 거리이고 피에솔레는 ‘두오모 어디 있지? 아, 저기 있다!’하는 정도의 거리야. 버스에서 내려 길거리에서 파는 핫도그를 먹으면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갔어. 여기선 핫도그 빵이 바게트 빵이야. 내 생각엔 핫도그엔 역시 한국에서 먹던 부드러운 빵이 좀 더 어울려. 바게트 빵 자체는 맛있지만 겉면이 너무 딱딱해서 핫도그를 먹다가 입천장이 헐어버렸어.


전망이 잘 보이는 곳으로 올라가 내려다보니 피렌체 건물들의 빨간 지붕과 주변의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꼭 풀밭에 덮인 딸기 같았어. 원래 피렌체는 피에솔레의 위성도시였는데 지금은 피렌체가 더 큰 도시가 되었지. 피에솔레는 한적하고 조용해서 관광객이 많은 피렌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야. 살짝 이는 모래바람과 은빛이 도는 올리브 나무 그리고 적막함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줬어. 너무 고요하고 아름다워 중세 시대 그대로 박제된 도시 같아. 가까우니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가야지.


-은경이가


P.S

전망대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수수한 성당이 나와. 성당 안엔 작은 중정이 있는데 그걸 보고 나도 나중엔 작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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