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면 그 생각을 잘 멈추지 못한다. 내 미래에 대해 끝 없이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부정적인 결과 혹은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고 실제 상황에서는 변수도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멈추기란 쉽지 않다. 내 생각에 여자들이 남자보다 섭식장애에 더 쉽게 노출되는 이유는 여자의 시뮬레이션 능력도 한 몫한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회사에 가서 일을 하면 시뮬레이션 할 시간이 없어서 더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 나의 경우 시간이 많고 한가하면 혼자 어두운 생각을 하며 불안해지고 폭식을 하게된다. 그렇다면 사람들들은 밖에 나가서 친구 만나고 놀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섭식장애 환자들은 친구를 만나는 것을 꺼린다. 친구를 만나면 같이 외식을 하거나 카페에서 가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게되는데 이 상황이 끔찍하리만큼 싫다.
섭식장애 환자들은 먹는 것에 대한 과한 통제 혹은 집착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밥을 먹는 행동이 너무나 조심스러워진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내가 너무 많이 먹어 추접스러워 보일까봐 걱정된다. 혹은 내가 너무 조금 먹어서 음식에 강박이 있는게 들킬까봐 두렵다. ‘내가 만약 먹는 것을 컨트롤하지 못 하고 너무 많이 먹으면 어쩌지?’, ‘내가 설탕을 먹지 않으려고 크림을 겉어내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면 어쩌지?’라는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하다. 그래서 결국 깔끔하게 아무도 만나지 않게된다. 나는 친구가 만나자고 하면 늘 ‘전날 체해서 아직 배가 아프니 카페에 가자!’라는 전략을 사용했다.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나 차만 마시며 친구와의 시간을 버티는 것이다. 친구들은 점점 나와 밥을 먹는 것을 포기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