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한 그릇 먹고 사람 공부 하고

사람을 만나야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by 비니의화원

일요일 아침, 남편과 둘이 군산 나들이를 갔다. 두 소녀는 과제가 있어서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엄마 아빠 둘이서 데이트를 하고 오란다. 냉장고에 준비해 둔 음식이 없어 걱정스러운데 편의점 먹방을 시연해 보고 싶다 하니 아주 가벼운 맘으로 출발을 한다.



군산, 몇 년 전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온 후 가족과 한 번 더 와야지 했는데 남편과 단둘이 오게 되었다. 남편이 점찍어 놓은 한일옥으로 한우무우국을 먹으러 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대기가 60팀. 우리는 61번째 대기를 걸어두고 이성당으로 걸어가 단팥빵을 포장해 식당 앞에서 기다린다. 10팀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우리는 식당 앞 그늘 아래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벽에 기대어 한편에 선다.




�둘둘 똑닮은 가족


식당 맞은편에 있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배경이 된 '초원 사진관'에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있다.


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선 어린 아들 두 명을 둔 젊은 엄마 아빠가 사진관 앞에 선다.


다음 차례 관광객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하나 둘 셋"을 외친다.


아기 엄마는 꽃받침을 하고 남편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큰 아들도 동생을 향해 하트를 한다.


아빠와 작은 아들만이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이 집중된 이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들에게 사진은 크게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는 듯 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피식 웃음이 난다.



다른 사람 둘이 만나 결혼을 하고 다른 아이 둘을 낳아 기르는 부부,


마치 우리 가족을 보는 것 같다.


자기만의 색이 뚜렷한 가족은 오늘,


비록 환한 표정의 사진은 못 찍었을지라도 그들은 분명 행복할 거다.


함께 있으니까.




�육아는 누구나 버겁다


식당 앞에 차가 주차되고 엄마와 남매가 내린다.


어린 아들은 짜증이 가득 묻은 얼굴을 하고 아빠를 기다린다.


아빠는 두 개의 유모차를 꺼내고 주차를 마무리하고 내린다.


어린 아들은 "안아 안아"하며 두 팔을 벌리지만, 아빠는 대기번호를 받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간다.


엄마는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아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 안아주지만


아들은 엄마의 자그마한 몸이 불편하지 칭얼거리기 시작한다.


돌아온 아빠는 한 손으로 아들을 안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간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돌아온 아빠의 모습은


이미 산책도 식사도 나들이도 끝난 듯이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어


그대로 주저앉을 만큼 지쳐 있었다.


잠깐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육아는 참 버겁고 힘들다.


혼자 두 소녀를 키우던 내 표정이 어린 아빠의 표정은 아니었을까.


지나고 나면 참 짧은데, 지나오는 그 시간은 참 더디게도 흘러갔다.


참 많이 힘들고 참 많이 아프고 참 많이 울었던 그 때,


젊은 아빠의 지침에서 지나간 시간의 나와 마주하며 애잔함이 몰려온다.




�서로 도우며 살아요


우리 앞으로 2팀이 남았다. 남편과 나는 식당 입구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린다.


"이런 거 우리는 못 하는데. 나이든 사람은 먹지도 못 하겠네."


두 어르신이 웨이팅 기계 앞에 서서 하시는 말씀이시다.



예전 식당에서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도와주겠노라고 나서자,


연락처를 기록하는 창이 나오자 대뜸 화를 내셨다.


"우리 정보를 다 가져갈라 하네. 안 먹고 말지."



나도 남편도 잠깐 망설인다.


그냥 가실 수도 있는 분이시고, 연락처 적는 게 불편할 수도 있고.


망설이고 있는 우리 쪽으로 어르신들이 몸을 돌리시며 그 자리를 뜨지 않으시자,


남편이 나를 살짝 앞으로 민다.


"도와드려."


"도와드려도 될까요?"


"네네. 고마워요."



나는 창에 쓰인 글자를 읽어주고 "다음" 이라는 말과 함께 버튼을 누르고


연락처를 남길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섰다가


음식 드실 인원수를 묻고, 등록 완료 되었음을 말씀드린다.


직원이 찾을 번호가 335번이라는 것까지 알려드리고,


2층에 휴게실이 있으니 올라가서 기다려도 된다는 말씀을 드렸다.



지금의 우리는 똑똑하다. 매장에 있는 키오스크도 자유롭게 만질 수 있다.


그런 우리도 한때는 어른 없이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철부지에 떼쟁이였을 뿐이었다.


그 때 받은 도움, 어른이 된 지금 조금이나마 갚아드린다는 생각으로


친절하게 도와드리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서로 한 번씩 돕고 도움 주는 쌤쌤. 이게 우리들 관계라면 참 좋겠다.


기대하며 상처받지 말고,


받은 것 그래도 돌려만 준다면 이보다 더 괜찮은 계산법은 없다 싶다.





한일옥


한우무우국



군산에 온 목적은 요걸 먹기 위해서다.


평범한 한우무우국.


국을 받자마자 맑은 국물이 놀라웠다.


고기국임에도 기름이 뜨지 않고 고기 육수만의 시그니처다운 "뽀얀"이 없는


맑아도 너무 맑은 정수기 물 한잔을 받아 넣은 듯한 맑음이 압권이다.



국물 정말 뜨겁다.


국물과 함께 나온 반찬 모두 맛있다.


이제는 군산까지 오지 않아도 배송이 된다고 하니 좋다 싶으면서도


국물과 더불어 먹는 반찬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반찬을 좀 더 달라는 나의 부탁에 직원이 상을 쓱 훑어보고는,


"반찬 한 상 새로 넣어드릴게요." 한다.



곧 첫 상처럼 반찬 세팅을 해 주신다.


새 접시를 우리 상에 옮기는 동안, 비운 접시를 모아 쟁반 위에 올려 주자,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하며 자리를 뜬다.



뜨겁고 맛있는 한우무우국 한 그릇 덕분에


사람 공부 실컷한 날이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다.


흘러가기에 우리는 또 살아가진다.


너무 애쓰지도 말고, 애쓰면서 스스로를 향해 상처주지 말고


내가 받은 것을 돌려줄 수 있는 넉넉함 하나는 기억하고 살았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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