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이 있나?
누나한테 전화가 왔다. 누나와 전화를 하는 빈도는 가뭄에 콩 나듯 하다. 분기에 두 번 정도. 그 외에 명절에는 얼굴을 보니까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설연휴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전화가 올 시기가 아닌데 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원래 전화받는 사람이 ‘여보세요’ 해야 하는데 누나가 ‘여보세요’했다.
“응”
“뭐 해?”
“그냥 있어”
“그냥 있어?”
“응”
“아휴” 누나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는
“야, 너는 요즘에 멘탈을 어떻게 붙잡고 사냐?”라고 물었다.
“멘탈을?”
“어”
“나도 몰라.”
“너도 몰라?”
“응.”
“에휴”
“왜?”
“아니야, 힘든데 열심히 잘 살아줘서, 하하하, 어째 멘탈을 나름대로 잘 붙잡고 사는구나 해서 대견해서 전화 한번 해봤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누나는 이런 표현을 거의 쓰지 않을뿐더러 우리집 기준으로 이게 정상적인 남매의 대화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는데 무슨 일이 있나 순간 걱정이 됐다. 날이 흐려 날씨 탓인가, 갱년기 증상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전화할 정신도 있고 차분하게 말을 하니, 그냥 나이 먹어 감의 흐름에 잘 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 큰일이 난 건 아니구나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었다.
“뭔 일 있어?”
“뭔 일은 없어.”
“응”
“나야 뭐 뭔 일이 있겠냐, 겉으로는 아무 일이 없어, 속이 시끄럽다 안 시끄럽다 그러는 거지 뭐. 아무튼 알았어,”
“응”
이렇게 통화는 끝났다.
전화받기 전에 난 뭘 하고 있었냐면 러닝 하러 나가려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난 후 준비운동을 다 하고 나가기 싫어서 PC앞에 멍하게 앉아 삽십분째 스스로와 씨름 중이었다. 그러던 중 누나의 전화를 받으니 내가 어떻게 멘탈을 관리하고 있었는지 이것저것 생각해 보게 됐다.
이제 끔의 인생에서 가족이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아무리 힘들어도 얘길 하지 않았다. 다 극복하고 이겨낸 후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나 간혹 얘기를 했던 일도 있었지만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얘길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것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어났던 일들은 가족들이 알 수밖에 없었고 그게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그간의 이런 일들을 누나는 아니까 어떻게 멘탈을 붙잡고 살고 있었는지 뭔가 대견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나 보다.
내가 멘탈을 잘 잡고 있는 특별한 나만의 방법이 있을까? 자려고 누우면 몸이 한없이 꺼지는 느낌이 들어 한 달 동안 앉아서 잔적도 있었고 공황장애 증상이 자꾸 생겨서 일부러 그런 증상이 느껴지는 지점에서 주먹 쥐고 눈 질끈 감고 매일매일 그곳에만 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런 시기에도 회사에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PT 하고 회의하고 그랬었다.
정말 심각하게 억울한 일도 수도 없이 당했지만 음덕이 쌓인다 생각하고 그냥 넘어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나 19년도부터는 매년 겨울에 감당하기 쉽지 않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생겼는데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나 싶기도 했다. 아직도 자기 전에 생각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기에 머물러 있는 중이긴 하다. 참아내는 건 매번 곤혹스럽고 전혀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마음을 다 잡고 괜찮아질 거라 스스로 위로한다.
내가 멘탈을 잡는 방법은 지금 생각난 건 두 가지 정도 되는 것 같다. 하나는 일상을 지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험을 대하는 방법이다.
일상을 지키는 건 말로 하던 글로 쓰던 대수로울 것이 없다. 다만 지킨다는 것 자체가 최소한 퇴보를 하지 않는 수준인 것 같다. 현상유지를 한다는 게 주위의 것들은 서서히 변화하는데 나만 가만히 있는 상태일 수 있다. 그래서 현상유지는 퇴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유지가 아닌 퇴보가 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다. 습관이 되어 루틴이 되면 좀 편할 텐데 아주 오랫동안 습관이 안되고 매번 할 때마다 하기 싫다. 하기 싫어도 하는 게 내가 일상을 지키는 방법인 것 같다.
경험은 사람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프레임에 가둬놓기도 한다. 대하는 방법에 따라 한없이 좁은 세계를 만들 수도 있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양면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경험을 대하는 방법은 이전의 실수나 실패에서 나온다. 아팠던 경험이 또 눈앞에 나타났을 때 경험치가 있으니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다. 다시 경험을 하면 그만큼 고통스러울 걸 아니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경험을 이렇게 대할 때 성장할 수 없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또 한 번 예전과 비슷한 실수나 실패를 만나게 되면 지금은 이전 보다 더 단단해져 있으니 다시 한번 그 길을 지나가 보자라고 생각해야 된다. 이게 내가 경험을 대하는 방법이다.
쓰고 보니 이게 멘탈을 제대로 잡는 방법인가 헷갈린다. 더 살아봐야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게 잘한 일인지 아니면 삽질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