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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y Dec 08. 2023

술 한잔하고 싶다.

그런데 같이 마실 사람이 없다.

지금은 내가 술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여러 종류의 술을 즐기기도 했고 또 그게 재미있기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술자리가 마냥 좋기만 한 적이 있었다.


사회초년생 때는 술맛을 알 리가 없다. 안주 많이 주고 저렴하면 그게 좋은 술집인 줄 알았지 맛보다 항상 그런 것들이 우선이었다. 그냥 같이 술을 마시면 아무 이유 없이 더 돈독해질 것 같고 그런 시절이었다.


사회경력이 쌓이다 보니 술에 대한 경력도 같이 쌓이게 됐다. 생활의 대부분이 개인 생활이 아닌 사회생활에 치중되어 있다 보니 술 또한 이게 일인지 내가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건지 분간이 잘 안 가는 순간들도 많았다. 사회경력과 술의 경력이 같이 쌓이는 순간에 달라졌던 건 누구와 술을 마셔도 더 잘 마셔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건 누가 시킨 게 아니다. 그냥 그 당시 생활 자체가 그렇게 된 것 같다. 어쩔 때는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이 비장한 각오를 할 때도 많았었다.

“Rey! 오늘 OOO업체와 한잔 하기로 했는데, OOO상무, OOO부장, OOO대리가 출전한대.”

‘출전’이라는 표현도 서슴없이 썼었다. 이런 약속이 잡히면 일단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뭘 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정신 줄은 꼭 붙잡고 있어야 하니 술자리에서 긴장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안주는 거의 먹지도 않는다. 이게 참 웃기는 일인데 그때는 그게 정상인 것 마냥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한 번은 제휴사 회식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는데 장소는 횟집이었다. 다 해서 8명이었다.

“회 나오기 전에 한잔 해야지?”

가장 직급이 높은 이 가 쏘맥을 말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두 잔 계속하면서 얘기하다 보니 어느덧 싱싱하고 맛있게 보이는 회는 이미 자리에 세팅이 된 상태였고 각종 해산물과 먹거리로 채워졌는데 어째 술병은 쌓이고 술잔만 오가고 있는 시간이 한참이 흘렀다.

“자 이제 여기는 마무리하고 2차 가지”

그렇게 마무리가 된 자리에는 안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더 사회생활 경력이 쌓이고 똑같이 술에 대한 경력이 쌓였을 때는 내가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이 생겼다. 이때부터 술자리는 거의 나를 위한 술자리가 없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회사를 위해, 직원들을 위해, 가 전부였다. 저녁 약속들을 항상 조절해 가면서 중요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마시는 양도 조절하고 마시는 곳도 적절한 곳이어야 했다. 그래야 최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했었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명분도 상당히 중요했다. 


내가 어제 과음을 해서 마시지 못할 것 같았지만 직원 중에 유난히 힘들어 보이고 일이 잘 안 풀리는 게 보이면 같이 한잔 하면서 그날 일들을 위로해줘야 할 때가 많은데 이게 정말 신경을 써서 잘 봐야 보이는 문제라 거의 독심술 수준이었던 것 같다. 직원은 나랑 한잔 하자고 하기가 그렇게 편하지가 않다. 그래서 내가 미리 해줘야 하는데 얘길 했을 때 직원의 느낌을 알아채는 건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오늘 저녁 먹으면서 간단하게 한잔하고 싶은데 괜찮으신가?”라고 했을 때 찰나의 순간이다. 그 표정을 제대로 읽어야 내가 위로가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정말요? 저도 오늘 한잔하고 싶었는데 같이 가요!”라는 대답을 들었어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제안하니 별로인데 받아들이는 건 아닌지 말이다. 물론 이게 다 내 생각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런 시간들이 흘러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갈 때 항상 술을 또 사가지고 집에 들어가서 혼자 마시게 됐다. 집에 와서 씻고 바로 자도 다음날 걱정일 텐데 그런 걱정은 이미 머리에서 사라져 있다. 그냥 혼자 한잔하고 싶은 생각만 머리에 들어차있어서 자꾸 그런 일들이 생겼다. 이런 걸 하지 않기 위해서 1차로 끝낼 술자리를 2차로 만들어 봤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면 집에 와서 술 마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여러 방법들을 써봤지만 허사였다. 


알코올중독인가 의존증인가? 아마도 술을 즐기고 사회생활 오래 한 사람들은 몇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이 들어 일부러 술을 줄여도 보고 오랜 기간 금주를 하기도 했었는데 술 안 마시는 게 전혀 어렵지가 않았다. 지금도 가끔 그래보는데 전혀 힘들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실 이게 다행인지 아닌지는 나 스스로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이런 식으로 내 사회생활은 쉬어가는 시기에 접어든다. 이미 사십 대 초반에 한번 겪었기 때문에 조직에 속해있지 않은 상태가 어떤 상태란 걸 잘 알고 있다. 한번 겪었다고 해서 두 번이 편하지는 않다. 뭐든 내성이 생기는 것들과 생기지 않는 것들이 있듯이 이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다만 감정의 동요나 이런 부분은 좀 나을 수밖에 없다. 보다 더 성숙해 있는 상태일 테니까.


지금은 술 마시고 싶어도 같이 마실 사람이 없다. 마실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아마도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에 더 가까울 수 있다. 다들 바쁘게 살고 있는데 같이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선뜻 연락해 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어쩌다 연락이 닿아 얘길 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하지만 먼저 찾아주지 않으면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그럼, 친구들은 어떨까. 이게 좀 후회되는 부분이다. 오래전에는 별일 없이 친하게 지내고 그랬는데 회사 다니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들을 거의 찾아보질 못했고 어쩌면 가끔 만나는 전 직장의 그들보다 더 서먹한 관계일 수 있다. 이제는 거의 상갓집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된 것 같다. 그마저 상갓집에서 조차 볼 수 없는 친구들도 생겨버렸고, 본인상인 경우도 생기니 더 할 말이 없이 후회되는 부분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오랜 친구가 두 명이나 살고 있는데 연락을 하기가 이렇게 힘들었던 건가 싶다. 사실, 오늘 연락해서 술 한잔 하자고 얘길 하고 싶었으나 바쁠 것 같아 생각만 하고 말아 버렸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과 밖에 나가서 마시는 건 분명 차이가 많다. 우선 나가서 술을 마시려면 누군가와의 약속이 있어야 한다. 물론 혼자 밖에서 마시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럴 경우에는 메뉴들이 상당히 한정적이다. 동네에는 순댓국이나 뭐 이런 것들이 만만한데 이건 식사를 위한 거니 그냥 그렇다. 내가 순댓국등을 엄청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이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반주의 의미이니 그런 식은 좀 별로다. 그래서 동네에 내가 혼자 술 마시기 괜찮은 가게를 차려볼까를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실행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꼭 할 것이다.


얼마 전에 동네 치킨집에 지인과 약속이 생겨 내가 미리 도착해서 들어갔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사장으로 보이는 한 명과 일하는 사람 한 명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하던 걸 계속하면서 고개만 돌리며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네. 치킨 먹으러 왔어요.”

이렇게 얘길 하고 자리를 잡아 앉았는데.

“혼자예요?”

지인이 오기로 해서 지금은 혼자인데 조금만 지나면 혼자가 아닌 상태가 된다는 걸 말하기만 하면 되는데 왠지 질문에 답변을 다르게 하고 말았다.

“죄송한데, 다음에 올게요”

이렇게 얘기하고 일어나는데 

“왜, 그냥 앉지”

라는 말을 뒤로하고 나왔다.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 내 감정선이 흔들리는 걸 느끼니 내가 마음이 아픈 상태인가 싶기도 했다. 여기서 술 한잔하고 나중에 혼자 올일 있으면 와야겠다 싶었는데 그런 생각을 한 나조차 좀 싫은 듯 느껴졌다. 나와서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가지고 오는데 치킨집 사장을 밖에서 또 마주쳤다. 지인과 만나서 다른 가게 가서 술 한잔 하고 나와서 집에 가는 길에 또 그 치킨집 사장을 마주쳤다. 


어차피 술 마시고 싶어도 같이 마실 사람이 없으니 술 마시고 싶으면 그냥 혼자 마시는 걸로 좀 답답한 감이 있어도 그렇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술 마시고 싶은데 혼자 마시기 유난히 싫은 날이다. 그래도 꾹 참고 그냥 혼자 마신다.


혼자 술을 마시려고 해도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봐야 한다. 우선 어떤 술을 마실 건지에 대한 결정부터 해야 한다. 소주와 맥주는 항상 한 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 둘을 마시려면 나가서 사 와야 한다. 집에 남겨 놓으면 내가 다 마실지 모르니 항상 마실 것만 사가지고 온다. 그래서 밖에 나가는 수고로움을 감당해야 한다. 그 외에 위스키 몇 종류와 와인 몇 병은 항상 있다. 위스키는 아주 가끔 마시긴 하는데 아무래도 하이볼로 해서 마시는 편이 좋다. 그런데 하이볼로 마실 때는 술을 마신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가끔 즐긴다. 여기서 또 문제가 생기는데 하이볼을 마시려면 탄산음료나 토닉워터 등등 같이 넣어줘야 할 음료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 또한 나가서 사 와야 한다. 레몬은 항상 있어서 그건 다행이지만, 그리고 와인인데, 와인을 좋아하긴 하지만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하면 나중에 마셔야 하는데 나중에 또 마신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한 병을 혼자 다 마시기에는 약간 많은 양이라서 마음먹지 않은 날이 아니면 쉽게 시작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술과 함께할 안주를 준비해야 한다. 해산물, 어묵 등 안주로 좋아하는 것들은 냉장고에 있으니 항상 요리해서 먹는다. 언제나 대충 하지 않고 정성 들여 만든다. 그래야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같이 뭔가 기운이 없는 날에는 뭐라도 하기 싫다. 술을 마시기 위해 힘을 내서 밖을 나가서 뭘 사 오고 이런 걸 하기 싫은 걸 보니 이건 술을 마시고 싶은 건지 아닌지도 잘 모를 지경이 되어버렸다. 사실, 술 한잔하고 싶은데 그마저도 귀찮아져 버린 것 같다.


한껏 귀찮아하다가 생각이 났다. 냉장고에 맥주 두 캔과 냉동실에 먹태가 있다. 먹태는 굽기만 하면 되니까 너무 간단하다. 오늘은 이 정도까지만 해야겠다.


이 글은 술을 핑계 삼아 그리움에 관한 얘기였다.

맥주 두 캔 마시면서 같이 술 한잔하고 싶은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항상 건강하기를 빌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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