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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쳤어, 연필 안 돼!

by 전우주

금요일 오후, 제 메신저에 긴 글이 떴습니다. 연우의 통합학급 담임 선생님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연우가 과학시간에 같은 반 아이의 목덜미를 연필로 찔러 다치게 했으니, 도담반에서도 각별히 지도해 달라는 내용이었지요. 저는 자세하게 작성된 메시지를 읽고도 연우가 다른 사람을 일부러 다치게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연우를 만난 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본 연우는 매우 유순한 아이였습니다. 저는 연우가 단 한 번도 누구에게 폭력적이고 위협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제 교실은 아이들마다 수업시간이 달라 1~4명이 수업하는 형태로 운영되어 보통의 교실보다 비교적 평화롭기는 하지요. 그리고 연우는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고, 화 내고, 맞대응하고, 싸우고, 불쾌한 언행을 하는 아이가 결코 아닌 데다가 주변 사람이나 상황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뭔가 오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교실에 오는 연우는 지적 장애와 자폐성 발달 장애를 가진 5학년 아이입니다. 자폐성 발달 장애는 언어와 사회적 의사소통에 영향을 받는 신경 발달 장애로 특히, 언어의 발달 장애는 자폐성 장애 아이가 일상에서 겪는 큰 어려움 중의 하나입니다. 연우 또한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상호성이 결여되고, 의사소통에서 비중이 큰 비언어적 의사소통에서는 더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연우는 단순하고 쉬운 주제에 대해서도 표현이 매우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언어와 반향어 사용, 특이한 발음과 억양, 리듬 등 언어 발달 장애의 특성을 보입니다.


그날 하굣길에 제 교실에 들른 연우는 저를 보자마자 말문이 터졌습니다.


"다치게 하면, 안 돼!"

"다치게 하면, 안 돼!"

"다치게 하면, 안 돼!"


제가 연우의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 보며 했던 '누구를, 어떻게, 왜' 등의 질문은 연우에게 의미가 없었습니다. 연우는 목에서 피가 난 친구, 과학 선생님의 다그치는 듯한 물음, 담임 선생님의 훈육에 이미 충분히 놀라서 그때까지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같은 말만 끝없이 되풀이하는 연우를 안고 등을 도닥거려 달래주고 집에 보냈습니다.


그날은 금요일이어서 통합학급 담임 선생님이 연우 어머니와 다친 아이의 어머니에게 전화하여 아이들의 사고를 알리고, 담임 선생님과 연우 어머니가 연우를 잘 지도하겠다며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월요일에 출근해서 다친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학교 측에 몇 가지 요청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장, 교감 선생님을 비롯하여 연우와 관련된 사람들이 교장실에서 회의를 했습니다. 다친 아이 아버지의 요청 사항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연우와 아이를 가급적 멀리 떨어뜨려 앉게 할 것

둘째, 연우의 연필, 가위, 칼 등 위험한 물건의 소지를 금지시킬 것

셋째, 연우와 학교 측의 사고 재발 방지 약속과 안전교육을 실시할 것


그 회의는 첫 번째, 세 번째 요청 사항은 즉시 이행하고, 두 번째 요청 사항은 연우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범위에서 안전 교육을 하면서 연필, 가위, 칼 등 필수 학용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


아 아! 휴….



그런데, 다음 날 반전이 있었습니다. 연우의 통합학급에서 안전교육을 하는 중에 그날 사고의 목격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한 아이가 과학실에서의 사고에 대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대부분 학교의 과학실은 실험대를 중심으로 앉게 되어 등을 맞대고 앉는 아이들도 있게 마련인데, 그날 연우와 다친 아이가 등을 마주 대고 앉아 있었답니다. 과학실험을 마친 아이들은 실험 과정과 결과를 정리하여 쓰느라 집중하고 있었고, 연우는 다른 아이들처럼 쓸 수 없었겠지요. 또 그런 연우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요. 딱히 할 일이 없던 연우가 연필을 거꾸로 쥐고 일어서서 팔을 흔들다가 그만 뒤에 앉아 있던 아이의 목덜미를 연필로 찍었던 것이지요.


아악!

다친 아이가 목덜미를 잡고 비명을 지르고, 제대로 상황을 설명하지 못한 연우는 그저 놀라서 어, 어, 어 소리만 반복했겠지요. 그리고 연우는 이유 없이 친구를 연필로 찌른 불량학생이 되어 며칠 동안 만나는 어른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의와 당부를 들었고요. 사고 목격자가 나타났다고 연우가 잘못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저는 마음이 아픕니다.


특수반 아이들은 대부분 아침 등굣길에 특수학급에 먼저 들렀다가 통합학급 교실로 갑니다. 이때 특수교사는 아이의 상태를 살펴보며, 그날의 특별한 일정이나 수업 시간 등을 확인해 줍니다. 그리고, 개별 아이마다 특성에 따라 교실에서 주의할 것 등을 짚어주며 당부하고 격려한 다음 교실로 가도록 안내하지요. 또한 아이의 정서 상태나 신체적 건강 면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통합학급 담임 선생님과 협의하여 아이를 특수학급에 머물게 하면서 보살피고 치유와 교육적 처치 후 안정된 상태가 되었을 때 통합교실로 보냅니다.




"다쳤어, 연필 안 돼!"

"다쳤어, 연필 안 돼!"


연우는 아직도 아침마다 저를 만나면 단호하게 팔을 저으며 이렇게 외칩니다. 저는 할 말이 없어 연우를 안아 주기만 합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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