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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사람이었어?

by 전우주

우리 반에는 뇌병변으로 인한 지체장애와 지적장애, 언어장애 등 중증 중복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정후지요. 제 생각에 정후는 교육보다는 치료적 접근이 더 필요한 아이입니다.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정후를 유모차에 태워서 장애인 이동차량을 이용하여 학교에 오면 교실에서는 스탠딩 휠체어나 이동용 휠체어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습니다. 오후에는 바닥에 눕히기도 하지요. 정후는 사람을 마주 보거나 의사표현을 전혀 하지 못하고, 스스로 이동할 수도 없으며, 식사조차 위루관을 통해서 공급하는 데다 종일 기저귀를 차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3월에 '이 아이는 왜 일반학교의 특수학급에 왔을까?' 하는 생각과 '어떤 교육적 자극이 이 아이에게 의미 있을까?' 하는 고민과 함께 정후를 처음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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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후가 학교에 도착하면 곧 방문간호사가 가래 제거를 위해 석션을 하고, 스탠딩 휠체어에 옮겨 안전벨트를 하고 세워 두었다가 잠이 들면 스탠딩 휠체어를 눕혀 줍니다. 어느 때는 코를 골며 자기도 하지요. 2교시가 끝나면 장애인활동지원사가 교실에 들어와서 위루관을 통해 물을 먹입니다. 정후는 학교에 와서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들어 있는 시간이 많지요. 어쩌다 정후가 깨어 있을 때, 저와 아이들은 정후에게 말을 걸어줍니다. 물론 정후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지요. 가끔 '정후야' 하고 이름을 불렀을 때, 고개를 돌리기도 하는데, 정확하게 자기 이름을 알아듣고 하는 행동인지, 그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는 것인지는 모릅니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주스를 마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정후의 입술에 주스를 묻혀 주었습니다. 정후가 주스의 신맛에 눈을 찌푸리며 몸을 흔들어 반응했습니다.


"정후야, 이거 주스야. 맛있지?"


저는 정후에게 이런 말들을 건네며 주스를 몇 번 더 주었습니다. 그때, 제자리에서 주스를 마시며 바라보던 연우가 다가왔습니다.


"이거 사람이었어?"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순간 저는 이 아이에게 사람과 인형을 알려주고 구별하도록 지도했어야 하는 걸 놓쳤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때로 제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의 내용과 범위를 정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한 아이마다 하나의 교육과정을 계획하여 개별화 교육을 하고 있지만 늘 계획대로 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르거나 몇 단계를 되돌아가야 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이거 인형 아니야?"


저는 재차 묻는 연우의 말에 더 놀랐습니다. 연우가 2~3년을 함께 지낸 정후를 인형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소름 끼칠 정도로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이내 연우가 정후를 인형인 줄 알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연우가 본 정후는 보통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말하고, 웃고, 울고, 먹고, 걷고, 앉아 있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고, 항상 휠체어에 앉거나 누운 채로 벨트에 묶여 있었습니다. 5학년인 정후의 키는 올해 들어 1m 정도입니다. 연우는 정후를 보통의 인형보다는 조금 큰 인형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종종 아이들에게 정후와 악수하고 말을 걸어보라고 하면, 그때마다 연우는 거부했습니다. 연우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 웃거나 싫다고 했습니다. 저는 연우가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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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저는 연우가 혹시 정후를 인형처럼 여기고 만지다가 다치게 할까 봐 신경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연우의 특성이 제 염려를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연우는 새로운 것을 대하거나 처음 하는 행동, 바꾸어하는 행동 앞에서는 꼭 다른 사람에게 묻고 확인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연우가 정후에게 매우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연우는 교실에 있는 책상, 의자, 책, 장난감 등이 흐트러져 있거나 비틀어져 있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연우는 항상 교실에 들어오기 전에 신발장을 정리하고, 들어서는 순간 교실 전체를 둘러본 다음 반듯하게 정돈하고 나서야 제자리에 앉습니다. 교실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어이 문을 닫고 옵니다. 그런데 연우가 유일하게 손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정후는 물론 정후가 쓰는 휠체어나 이불, 동물 모양의 베개, 촉감놀이 인형과 장난감 등은 늘 그대로 두었습니다. 저는 정후를 돌보는 장애인활동지원사가 관리하니까 연우가 알아서 지나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증 지적장애를 가진 연우는 5학년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받침이 없는 기본적인 글자조차 읽지 못합니다. '무' 글자를 보여주면, 수년간 통문자로 익힌 '나무'를 기억해 내고 '나무'라고 읽고 있지요. 심지어 '아'와 '하', '가'와 '기'를 헷갈리는 날이 많습니다. 그래도 제 교실에 오는 시간에는 자기 학습 분량을 싫은 내색 없이 성실하게 채웁니다. 연우가 학습에 쏟는 정성과 시간에 비해 턱없이 형편없는 결과에 맥이 빠지는 것은 저뿐입니다. 학습을 마친 보상으로 주는 젤리도 두 개 이상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마 연우가 아는 가장 많은 수는 '두 개'인 것 같습니다. 제가 '세 개'를 주겠다고 해도 연우는 단호하게 '두 개'를 달라고 말합니다.


겨울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연우에게 받침 없는 한글을 읽히겠다고 계획한 교육과정 운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 같아 저는 날마다 애가 탑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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