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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르는 기준

by 전우주

지난 주말 저녁에 저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 해돋이극장에서 있었던 'YB REMASTERED 3.0' 공연을 관람하였습니다. 안산에 사는 지인의 초대를 받아 갔는데, 사실은 저녁 시간 공연이라 고민이 되었습니다. 제가 어느새 야간 운전이 불편하고 무서워졌거든요.



YB REMASTERED 3.0, 참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화려한 조명과 다양한 효과를 통해 뛰어난 미디어 아트를 보여주었지요. 공연 중간에 '단짠 메들리'라는 코너를 만들어 후배 가수와 선배 가수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먼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가 '골든'(Golden)을 부르고 나자, 무대 중앙의 천장에서부터 화려한 재킷 한벌이 천천히 내려오는 퍼포먼스가 이어졌습니다. 청중들은 화려한 반짝이 재킷을 보면서 '트로트 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은데, 누구의 노래일까' 하고 모두 기대했지요. 그리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부르겠다며 윤도현 님이 열창한 조용필 님의 <모나리자>는 청중들에게 뜻밖의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YB를 따라서 노래하고 춤추며 뛰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는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지쳐서 앉아 있었지요. 참 오랜만에 신나게 춤추고, 목청껏 노래 부른 시간이었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공연이 끝나고, 제가 이미 어두워진 안산문화예술의전당을 나와 규정속도를 지키며 천천히 운전해서 집에 도착하니 꽤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쉽게 잠들지 못한 채 YB의 무대를 떠올렸습니다. YB는 자신들의 무대를 완벽하게 즐기며 관객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동안의 활동과 수없이 많은 무대를 통해 노력하며 성장한 YB는 데뷔 30년을 맞아 더욱 빛이 났고, 무대와 객석을 음악으로 압도하며 자신들의 재능과 음악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 주었습니다.



YB 공연 무대를 떠올리는 틈틈이 제 마음이 편치 않은 무대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우리 학교의 교내 발표회 무대였지요. 우리 학교에서는 얼마 전에 학급별로 준비한 자랑거리를 무대에 올리고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개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합창, 연극, 악기 연주, 무용, 매스게임 등을 모든 학생들이 준비하고 참여하는 것을 대전제로 진행한 것이 매우 의미 있는 행사라고 생각했습니다.


도담반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6학년 지은이는 연극을 하고, 지민이는 바이올린, 5학년 연우는 우쿨렐레, 4학년 윤하는 리코더를 연주한다고 했습니다. 발표회 날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잘 못할까 봐 걱정된다고 하면서도 들떠서 수업 중에도 자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지은이는 연극 무대에서 울타리 역할을 맡아 대사나 행동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서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지은이는 벌써부터 너무 떨린다며 흥분했습니다.


발표회 전날 연우 담임 선생님이 제게 전화했습니다. 아무래도 연우가 무대에 올라가서 우쿨렐레를 연주하기는 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우를 무대에 올릴 수 없으니, 내일 발표회 시간에 연우를 도담반 교실에서 돌봐 달라는 부탁이었지요. 연우 어머니도 상황을 이해하고 허락했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순간 맨손으로 우쿨렐레를 연주하는 흉내를 내며 해맑게 웃던 연우의 모습이 제 가슴을 아프게 찔렀습니다.



'발표회 무대에 오르는 기준이 있나요? 못 해도, 틀려도,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가서 경험해 본다는 게 취지 아닐까요?'


저는 이 말을 아픈 제 가슴을 향해 속으로 쏘아붙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발표회에 어떻게 참여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도담반 아이들의 통합학급 담임 선생님들에게 물어보았지요. 지은이는 연극에서 맡은 울타리 역할을 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했고, 지민이는 다른 아이들을 따라 열심히 연습하고 있지만, 발표회 당일에는 활에 송진가루를 묻히지 않은 채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또 윤하는 소리 나지 않게 리코더를 불며 음원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일종의 연주하는 연기를 하며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다른 아이들은 모두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확실하였습니다.


'연우도 무대에 올라갈 방법이 없을까?'


그저 저 혼자 해 보는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연우의 통합학급 담임선생님은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연우를 관찰하고 이미 생각을 굳힌 것 같았습니다. 또 우쿨렐레 연주를 계획하고 직접 지도한 담임 선생님에게 제가 부탁하거나 도울 말은 무의미하거나 때론 불필요한 말이지요. 하지만 무슨 경연 대회나 선발된 아이들의 정선된 발표가 아니라 다양한 아이들이 있는 교실에서 배운 것들을 더 연습해서 교내 행사로 발표하는 것인데 왜 안 된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몹시 서운했습니다.


그날 연우는 학급에서 단체로 빌린 흰색 셔츠를 입고 줄무늬 넥타이를 맨 자기 모습에 신이 나서 도담반에 왔습니다. 연우는 발표회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연우는 그런 아이지요. 저는 연우를 데리고 강당에 가서 친구들의 공연을 볼까 하다가 교실에서 연주복을 입은 기념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연우가 좋아하는 비스킷과 샤인머스켓맛이 나는 차를 주었습니다. 5학년 발표회가 끝나고 연우가 교실로 돌아갈 때는 반 아이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젤리도 넉넉하게 챙겨서 보냈습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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