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는 예전에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을 만나서 식사를 했습니다. 오랜만이었지요. 제가 교육지원청에서 장학관으로 근무할 당시, 신규 장학사가 되어 온 한 사람과 7급 교육행정직원으로 학교에서 일하다가 승급하면서 왔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신규 장학사는 올해 9월에 교장선생님이 되었고, 6급 주무관은 사무관 승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면서, 제가 올해는 기간제 특수교사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퇴직 후 사는 이야기, 다시 교사로 돌아간 학교 현장의 이야기, 일반교사로서는 극한 인내가 필요할 만큼 느리게 성장하는 제가 맡은 특수반 아이들의 이야기였지요. 그리고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학교와 아이들을 떠나더라도 아주 오랫동안 제 생애 마지막으로 만났던 특수학급 도담반 아이들이 걱정되고 생각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자랄 거예요. 저요, 특수반 출신이에요."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옆자리에 있던 교장선생님도 놀라서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교장선생님과 저는 교육행정직 임용고시도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교육지원청에서 일 잘하고 있는 황 주무관이 특수학급에서 공부한 이력이 있다고 하니 당사자를 눈앞에 두고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특수학급에서 2년간 공부했다는 황 주무관의 어릴 적 이름은 '양글이'였다고 합니다. 황 주무관이 자란 고향에서는 야무지고 예쁜 여자아이를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고 해요. '단단하게 잘 익다'라는 뜻의 '영글다'에서 파생된 사투리가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양글이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일반학급에서 한글을 읽지 못하고 수 개념도 전혀 모르는 채 학교를 다녔습니다. 양글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무려 3년 동안 학습 장애에 대한 교육적 지원이나 배려도 없이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되어 아이들 틈에서 주눅 들고, 늘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면서 지옥과도 같은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양글이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어느 날 담임선생님한테 끌려 복도 끝에 있는 교실로 갔습니다.
"너는 오늘부터 여기서 공부해!"
담임선생님은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양글이를 특수반 교실에 떠밀어 넣고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교실에는 옆집 정술이 오빠와 끝집 상술이 오빠가 있었습니다. 모르는 아이도 몇 명 더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 교실은 양글이에게 신나는 유년기를 활짝 펼쳐 주었습니다. 양글이는 더 이상 그림 그리듯 글씨를 쓸 일도 없었고, 친구들 앞에서 주눅 들 일도 선생님한테 혼나는 일도 없었지요. 그 교실은 학교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였고, 세상에서 제일 착한 정술이 오빠와 학교에서 제일 힘센 상술이 오빠가 있는 행복한 곳이었습니다. 특수반 아이들은 양글이와 함께 놀아주었고, 두 오빠들은 먼 학교길에 번갈아가며 양글이의 가방을 들어 주고 때론 업어 주기도 했습니다. 특수반으로 간 양글이는 마치 공주라도 된 것 같았지요.
양글이는 아마 1980년대에 초등학교에 다녔던 것 같습니다. 1980년대는 우리나라가 특수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의 설치를 확대해 나가던 무렵이거든요. 요즘은 일반학교에 입학한 장애학생들을 당연히 특수교육을 전공한 특수교사가 집중적으로 지도합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특수교사가 부족하여 일반교사 중에서 일정한 보수교육을 통해 자격을 주고 특수학급을 맡게 하기도 했지요. 그러다 보니 그 교사들 중 소수는 아이들의 장애에 맞는 전문적인 특수교육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글이는 특수반에 있었던 초등학교 4~5학년을 날마다 신나게 놀며 공부했다고 기억했습니다. 학창 시절을 통틀어 더없이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이지요. 그리고 양글이가 6학년이 되었을 때, 한글을 더듬더듬 읽을 수 있어 다시 일반학급에서 공부하다가 졸업했습니다.
양글이는 중학교 다니는 동안에도 학습에서 뒤처져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결국 양글이는 가고 싶었던 도시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중학교와 같은 울타리 안에 있던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년마다 한 학급씩 있는 작은 학교였지요. 그러나 다행히도 학생수가 적어 선생님들이 개별 학생에게 집중하는 교육이 가능하였고, 덕분에 양글이는 지방에 있는 국립대학교 일본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양글이는 죽어라 공부한 끝에 9급 교육행정직에 합격하였고, 성격 좋고 일 잘하는 황 주무관이 되었지요. 황 주무관은 2년쯤 후에 교육행정직 5급 사무관으로 승진할 것 같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 주었습니다.
"황팀장 일본어 잘하겠네요?"
"네. 잘하지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제 말을 알아듣지 못하던 걸요?"
저는 한바탕 웃으면서 교실에서 책만 펼치면 기가 죽는 도담반의 제 아이들도 황 주무관처럼 성장한 그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제 생애 마지막으로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 장애를 가진 다섯 명의 아이들을 학교 밖에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