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도담반 아이들을 처음 만난 순간, 왠지 유준이는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서 어색하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유준이는 누가 보아도 일반학급의 교실에서 흔히 마주치는 공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떻게 알아챘냐고요? 제 평생 직업이라고는 '교원' 한 가지였고, 퇴직 후의 경력까지 합하면 올해 45년째 하는 일이니까요.
유준이는 특수학급에서 수업하는 국어와 수학 교과의 학습 성취 수준이 유준이가 소속한 3학년과 거의 같았습니다. 유준이의 일상적인 의사소통 능력, 언어구사력도 도담반의 다른 아이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유준이의 학습과 생활에서 제가 따로 교육할 여지가 많지 않았지요. 무엇보다 도담반에 오고 갈 때, 후다닥 뛰어 들어오고 나갈 때는 문을 조금 열어 얼굴을 빼꼼 내밀고 복도를 살피는 것이 제 눈에 자주 띄었습니다. 또 우리 학교의 전체 특수학급 아이들이 모여서 하는 다양한 주제의 범교과 수업에서도 특수반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놀이도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유준이는 다른 아이들과 한 발짝 떨어져 앉아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난해 근무했던 특수반 선생님에게 유준이 이야기를 했더니 3학년이 되고 나서 부쩍 달라졌다고 공감했습니다. 저는 유준이의 자의식과 자존감이 도담반 아이들과는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도담반 아이들과 1년 살기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들의 개별화교육계획(Individualized Educational Plan=IEP)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장애학생은 비장애학생에 비하여 각각의 특성이 더 다르고 복잡하여 아이마다 알맞은 IEP가 제공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도담반 아이들의 IEP를 수립하기 위해서 먼저 아이의 이전 담임 선생님과 그동안의 IEP와 평가 결과를 기록한 내용과 도움을 줄 만한 사람들과 면담을 통하여 아이의 특성과 강점, 약점 등을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와 교장, 교감, 특수학급 담임, 통합학급 담임, 보건교사, 상담교사 등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서 개별화교육협의회를 했습니다. 학부모로부터 아이의 학교교육에 대한 요구, 방과 후 교육과 치료, 병원 진료 이외의 특이점 등을 듣고, 학교에서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계획하고 교육적, 행정적, 재정적인 지원을 촘촘하게 하기 위한 협의회지요. 교육과정, 생존수영과 체험학습, 학교 행사에 대한 보조인력의 지원 여부, 진로 등에 대한 아이의 전반적인 학교 생활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여 개별화교육협의회에서 협의한 후 특수학급 담임교사가 개별화교육계획서를 작성합니다. 개별화교육계획서는 매년 3월과 9월 중에 학기단위로 작성하고 학교장 결재를 받아야 하는 법정 기록물입니다.
제가 유준이의 개별화교육계획을 수립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자료를 모으고 면담하는 과정에서 유준이가 도담반을 떠나 통합학급으로 가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준이 집에 전달할 말이 있어 통화하는 중에 유준이 어머니가 하는 말을 듣고 제 판단을 확신했습니다.
"선생님, 유준이가 3학년 때도 특수반이에요? 이제 우리 유준이 공부 잘하는데요. 전에 다니던 학교 선생님이 유준이가 3학년이 되면 특수반 아닐 거라고 했어요. 무엇보다 유준이가 특수반에 가기 싫어해요. 유준이 아빠도 유준이가 올해도 특수반인 거 알면 화를 많이 낼 거예요."
저는 유준이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특수교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협의했습니다. 유준이는 2학년 때 우리 학교로 전학 온 아이라고 했습니다. 유준이는 1학년 입학 초기부터 가정의 교육적 방임 정도가 심했다고 합니다. 결국 유준이가 한글 미해득으로 학습 능력이 부진한 데다가 결석도 잦아서 일반학생과 같은 방법으로는 지도 관리가 힘들었던가 봅니다. 1학년 담임 선생님은 유준이의 학습 부진의 원인이 '심하지 않은 지적장애'라고 판단하고 유준이를 특수학급에 입금 시켜 학습과 학교생활을 지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는 지난해 전입학 당시 특수교육대상자로 서류가 이관되었기 때문에 유준이를 당연히 특수학급에 입금 시킨 것이지요. 유준이는 올해 3학년으로 진급하면서도 부모가 별다른 요구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특수교육대상자로 남게 된 것입니다. 현행 규정은 특수교육대상자 선정과 취소에서 가장 우선하는 것이 학부모의 의견이기 때문이지요.
제가 유준이의 이전 개별화교육계획서를 살펴보니, 장애유형이 '지적장애'로 기록되었으나, 장애인 등록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유준이의 특수교육대상자 선정을 취소하고 전 교과를 온전히 3학년 교실에서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수업할 수 있도록 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선정 취소를 신청할 경우 다음과 같은 절차로 처리합니다.
학부모 요구 → 개별화교육지원팀 협의 → 교육지원청(유·초·중학교) 및 도교육청(고등학교)에 선정 취소 신청 → 특수교육운영위원회에서 서면 심사
저는 유준이 어머니에게 특수교육대상자 선정 취소의 의사를 다시 확인하고, 그 절차를 안내했더니 뛸 듯이 기뻐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취소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장 빠른 날로 개별화교육지원팀 협의회를 정하여 절차를 진행하고 교육지원청 특수교육운영위원회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사서류 제출 이후 유준이는 아예 도담반에 오지 않고 자기 교실에서만 수업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유준이를 불러 사물함에 두고 간 물품들을 챙겨주었습니다. 유준이는 물품이 든 가방을 받자마자 인사도 하지 않고 4층 교실을 향해 마치 날아오르듯 뛰어가버렸습니다. 저는 엊그제 만난 유준이 통합학급 담임 선생님에게 유준이가 잘 적응하는지 물었습니다.
"학년 초에 결정한 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해요. 우리 반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2학년 6개 반에서 모였기 때문에 유준이가 특수반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아이도 없어요. 유준이는 도담반에 가던 때보다 오히려 활기 있고 3학년 아이답게 친구들과 좌충우돌하며 잘 지냅니다. 참 잘한 결정인 것 같아요."
일반학교에서는 특수학급을 설치하고 운영하면서 특수교육대상자인 아이가 특수학급뿐만 아니라 통합학급(*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환경의 학급을 말함)에서도 수업하게 하는데 이를 통합교육이라고 합니다. 또 통합교육을 완전통합교육과 부분통합교육으로 구분합니다. 특수교육대상자이지만 특수학급에 입금하지 않고 일반학생들과 함께 모든 수업을 통합학급에서 하는 것을 완전통합교육이라고 하지요. 한편 일부 수업을 특수학급에서 하고, 나머지는 통합학급에서 하는 것을 부분통합교육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장애학생이 소속된 통합학급의 국어와 수학 교과 시간에 특수학급에서 국어와 수학 교과를 수업하지요. 이때 특수학급에서는 특수교사가 개별 아이의 성취 수준과 학습 방법에 맞추어 개별화교육을 합니다.
유준이의 경우는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된 자체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기 때문에 유준이가 자기 교실로 돌아가 수업하는 것을 완전통합교육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찌 보면 특수교육대상자가 아닌 아이가 어느 특정 시기에 지적장애의 특성을 지닌 것처럼 관찰되어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되었다가 복귀한 것이지요. 간혹 학교 현장에서는 유준이의 경우처럼 학습부진아를 장애가 있는 아이로 오해하고 특수학급에 입금 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우 엄격한 절차와 심사를 거쳐 특수교육대상자를 선정합니다.
제가 만난 많은 특수교사들은 현재의 교육 환경에서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특수교육을 통해 성장하여 언젠가는 완전통합교육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특수학급을 따로 두어 구분하지 않는 완전통합교육이 실현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때도 아이의 장애 특성에 필요한 특수교육을 지원해야 하는 것은 변함없지요. 통합교육은 장애학생이 또래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의사소통과 사회적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가 없는 아이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등의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며 노력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