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과 갑상선 사이 차이나는 처세술

by 전우주

저는 2008년 3월, 강북삼성병원에서 갑상선암으로 갑상선 전절제 수술을 했습니다. 갑상선과 부갑상선을 모두 제거한 수술이었지요. 저는 수술 전날 입원해서 퇴원하기까지 일주일 정도 걸렸어요. 제가 퇴원할 때, 담당 의사는 저에게 목을 과도하게 쓰는 것에 주의하면서 가급적 빨리 출근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갑상선암은 다른 암과 달리 수술하고 6주 후부터 일정에 따라 방사성동위원소(요드) 치료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 치료를 전후하여 수술 때보다 힘들 수도 있으니까 60일의 질병휴가를 효율적으로 나누어서 사용하라는 권고였습니다. 다행히 제가 장학사로 근무하던 때라 학교에서 수업하는 것처럼 목을 쓸 일은 없어서 2주간 예정이었던 병가를 일부 반납하고 일찍 출근했지요.



실제로 수술 당시 저는 수술 자체나 상처의 치료보다 제가 암에 걸렸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심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방사성동위원소 치료 날짜가 정해지고, 치료 전 4주간 저요오드식을 하는 과정이 신체적으로도 참 힘들었습니다. 특히 치료 2주 전부터는 갑상선 호르몬제마저 복용을 중단하게 되면서 더 힘들었지요. 갑상선호르몬을 중단하였을 경우 나타나는 증상이 다음과 같거든요.


▶ 몸이 붓기 시작하고, 식욕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체중이 증가한다.

▶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근육이 뻣뻣해지며 가끔 통증을 느낄 수 있다.

▶ 소화가 잘 되지 않으며, 심한 경우 구역질이나 변비가 생긴다.

▶ 추위를 잘 타고, 피부가 거칠어진다.

▶ 말이 어눌해지고, 기억력이 떨어지며 집중이 되지 않는다.

▶ 성욕이 감퇴하고, 생리가 불규칙해진다.



저요오드식단은 제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매우 제한적이었지요. 육류, 채소, 과일, 나물, 곡류, 정제소금, 계란 흰자, 직접 갈아 만든 과일주스, 두부 등을 먹을 수 있었어요. 얼핏 보면 평소 먹고사는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지요. 그런데 제가 힘들었던 것은 제 주변에 있던 고추장, 간장, 된장과 기본양념이 일반 소금을 넣어 만든 것들이라 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음식 대부분이 장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요리하기가 쉽지 않았지요. 저요오드식 환자를 위한 양념과 음식을 파는 곳도 있었지만, 저는 그런 것들을 찾아서 먹는 것조차 귀찮았습니다. 그러나 치료 효과의 극대화를 위하여 저는 저요오드식을 철저하게 실천하여 병원에서도 놀랄 정도였지요.


저는 상당 기간 소고기를 구워서 맛소금에 찍어서 먹고, 친구가 뜯어다 준 취나물을 맛소금에 무쳐서 먹고 버텼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살뜰하게 챙겨주면 다양하게 잘 먹었겠지요. 하지만, 저만 혼자서 먹을 음식을 가족들 사이에서 따로 만들기가 번거롭고 힘들어서 대충 먹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저요오드식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시어머니가 제게 한 일은 평생 제 가슴에 박혀 있을 것 같습니다.


"야야, 마트에서 돼지고기를 싸게 판다는데 사다 줄까?"

"어머니, 저 소고기만 먹어야 해요."


물론 돼지고기도 먹을 수 있었지만, 저는 돼지고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일부러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경로당에서 놀다가 저녁때가 되어서 들어온 시어머니는 브로콜리 두 개를 식탁 위에 던지며 말했습니다.


"암에는 이것이 좋다더다."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화가 나서 제 가슴속에 눌려 있던 거친 감정과 말들이 마구 튀어나왔습니다.



"지난겨울에 막내 서방님은 맹장 수술했다고 시골에서 개 한 마리를 통째로 사다가 먹이더니, 암 수술한 며느리는 천 원짜리 브로콜리 두 개 사 주시네요. 제가 아파 못 일어나서 고3인 애도 아침밥 못 먹고 가는데, 어머니는 제가 비틀비틀 일어나서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침밥 차려 달라시지요. 저를 딸처럼 생각하신다더니 어머니 딸이라서 막 대하시나요? 제가 큰며느리도 아닌데, 더는 어머니 며느리하기 싫습니다. 어머니한테 잘하는 아들 며느리 많다고 만날 자랑하셨지요? 그럼 오시라는 데도 많겠네요. 어디든 가세요."


시어머니는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으로 들어가 여기저기에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 제가 다른 집으로 가라고 했으니, 이 아들 저 아들에게 전화해서 그 집으로 가겠다고 말했겠지요. 그런데 이내 잠잠해졌어요. 그러다가 밤늦게 제 남편이 퇴근하자 시어머니는 대성통곡을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저한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서 사실대로 말했지요. 남편도 제게 할 말이 궁색한지 좀 참지 그랬냐고 한마디 하고는 시어머니 방으로 들어가 달래느라 애썼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시어머니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시어머니가 제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시어머니는 그렇게 20세기 방식으로 며느리들을 대했다가 21세기 방식으로 되받아 상처받고 아물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변했습니다.


아무튼 이날, 시어머니가 던진 브로콜리 두 개는 이후 저에게 엄청난 힘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제가 갑상선을 잃고 매일 아침에 씬지로이드 한 알을 삼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불편함을 겪지만, 한편으로는 시어머니의 부당함에 맞설 수 있는 결심을 세운 제 인생의 획기적인 사건이었지요.


이제 시어머니는 99살의 치매 2등급 환자입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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