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땅 줄게 네 돈 다오

by 전우주

어느 날 시어머니가 저희 집에 왔습니다. 그때는 저희가 제법 넓은 집에서 살고 있었지요. 가난했던 단칸방 신혼집에 비하면 살림살이도 많이 늘어나서 시어머니 눈에는 제가 부자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날도 시어머니는 당신네가 그 고라당(*골짜기의 사투리)에서는 제일 부자였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다섯 명을 가르치느라 팔아먹은 논길을 걸을 때마다 속이 쓰리다고 말했습니다. 또 여느 때와 같이 이제는 시어머니가 가난하다는 말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이제는 당신이 가난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저는 항상 긴장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뭔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올 차례니까요. 대개는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었지요. 그렇지 않으면 돈으로 사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었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너희들이 여윳돈으로 이것저것 투자한다고 들었다. 내 생각에 앞으로는 나라에서 시골도 살 만하게 해 준다니까 너희가 시골땅을 사 두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왕이면 우리 땅을 사라."


"그 땅은 어차피 나중에 자식들이 상속받는 것 아닌가요?"


시어머니는 제 말이 맞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중 일부를 확실하게 저희 소유로 할 수 있게 돈을 내라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 사실을 동네 사람들이 알면 창피하니까 토지의 명의뿐만 아니라 경작이나 수확물 등에 관한 모든 권리는 지금처럼 시어머니가 유지하고요. 또 부모 자식 간에 문서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돈만 시어머니에게 주면 된다는 것이었지요. 즉 '이것이 내 땅이다', '저것이 네 땅이다'라고 시어머니와 저희가 알고 있으면 된다는 거예요. 더구나 저희가 산다면 시세보다 싸게 팔겠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이 황당무계한 셈법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시어머니의 살림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자식들도 모두 결혼한 뒤여서 크게 돈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무엇보다도 제가 이미 단칸방 신혼집을 설계한 시어머니의 꼼수에 넘어가 군말 없이 단칸방에 들어가서 살았던 그 순둥이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시어머니는 제가 결혼할 때, 보증금 180만 원짜리 단칸방을 신혼집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꼼수를 썼거든요.


어쨌든 시어머니가 저희더러 시집의 땅을 사라고 한 황당한 제안은 제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유야무야 끝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시어머니는 저희 집에 오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야, 인감도장 좀 다오. 이번에 갖고 내려가서 큰골 논 여덟 마지기를 네 앞으로 해 주마."


저희가 시집에 내려가겠다고 미리 알려주면,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지요.

"야야, 그럼 인감도장 가져와라. 내가 시간 날 때, 새말 밭 닷 마지기를 너한테 줄게."


그리고 막상 저희가 시집에 가면 시어머니는 인감도장 따위는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저희 집에 왔다가 갈 때도 인감도장을 챙겨서 가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냥 말뿐이었지요. 언젠가 저희 며느리들끼리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시어머니가 한 집도 빠짐없이 며느리들에게 땅을 주겠다면서 인감도장을 달라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희 며느리들은 그제야 시어머니의 꼼수를 짐작할 수 있었지요.



어느 명절에 가족들이 다 모였을 때, 저희 며느리들이 작당을 했습니다. 막내 동서를 시켜서 아무 도장이나 한 개를 시어머니에게 갖다 주라고 한 것이지요.


"어머니, 여기 인감도장 가져왔어요. 이번에는 그 땅 꼭 주세요."

"넌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 내가 언제 인감도장을 달라고 했어?"


시어머니는 순간, 당황하면서도 시치미를 뗐습니다. 누가 봐도 거짓말을 하고 있었지요.


"어머니, 저한테도 땅 준다고 하셨잖아요? 말 나온 김에 저도 그 땅 꼭 주세요!"

"어머니, 저도 인감도장 가져 왔어요!"


그 후로 시어머니는 다시는 땅을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참 궁금합니다. 그때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는지 시어머니에게 꼭 묻고 싶습니다.


이제 시어머니는 99살의 치매 2등급 환자입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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