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우주 Aug 25. 2023

며느리를 고발합니다

시어머니는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양육하고 교육하면서 훗날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젊은 날의 모진 고생을 기꺼이 감수했을 것입니다. 99살 시어머니 세대는 당연히 그랬지요.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곧 집을 떠나 도시의 아들 집으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드디어 부모로서 희생하고 헌신한 세월을 자식들에게 효도로써 보상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리고 시어머니는 당당하게 이 집 저 집, 아들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생각했던 것만큼 아들의 집은 쉽사리 문이 열리지 않았지요.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봄부터 제가 시어머니와의 합가를 결정한 늦가을까지 저를 포함한 다섯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의 노크에 문고리를 붙잡고 치열한 방어전을 펼쳤으니까요. 결국은 '홀로 된 어머니를 모른 척하는 당신은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는 제 남편의 말에 뜨끔한 제가 문을 열고 말았지요.


시어머니는 일흔여섯 살 가을에 옷보따리를 하나 이고 와서 저희 집 식구가 되었습니다. 그때 제 큰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요. 저도 워킹맘으로서의 전쟁과도 같은 육아 시간은 이미 졸업한 후였지요.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동에는 막내 동서네가 살았습니다. 막내 동서도 워킹맘이었지요. 세 아이들은 초등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서 시어머니가 많이 돌봐 주었어요. 특히 방학 때는 막내 동서네 아이들이 저희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겨울 방학 때였습니다. 사실 교사들에게 방학은 좀 여유롭게 게으름도 피울 수 있는 시간이지요. 어느 날, 저는 남편이 출근한 뒤에 다시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막내 동서가 출근하자마자 아이들이 저희 집으로 몰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냉장고며 찬장을 뒤지고, 온 집안을 뛰어다니더니 급기야 제가 누워 있던 침대 위에서까지 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일이 처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유난히 제 신경을 거슬리는 날이었지요.


"방학 때는 아이들이 우리 집으로 오기 전에 어머니가 막내 동서네 집으로 가서 돌봐주시는 게 좋겠어요."

"여기는 반찬이 좋아서 내가 애들  먹이기도 수월하고, 넓어서 애들이 놀기도 좋은데 너는 뭐가 불편하냐?"

"제가 방학 때 겨우 며칠 쉬는데, 이왕이면 편히 쉬고 싶지요."


제 말에 시어머니는 몹시 화를 냈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목에 힘을 주고 소리를 높여서 말했습니다.


"허어, 네가 지금 조카 셋 꼴도 못 보겠다는 것이지? 항차, 선생이라는 것이 조카 세 명 꼴도 못 보면서 교실에 한가득 학생들을 앉혀 놓고 선생 노릇을 한다고? 이런 경우가 어디  있나? 내가 이것을 바로 잡아야겠다. 학교에 알려야 되냐, 교육청에 알려야 되냐? 어디냐, 전화번호부터 내놔라. 내가 당장 너를 고발할 것이다."



저는 시어머니가 오래전에 시집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땅의 소유권 분쟁 재판에서 승소한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변호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증빙 서류를 준비하고 변론하여 승소했다고 저에게도 무용담처럼 말한 적이 있습니다. '소학교도 안 다닌 내가 고시 파스(시어머니는 항상 '패스'를 '파스'라고 했지요)한 판검사를 이겼다'라고요.


마침내 그날, 저는 조카들을 귀찮게 여긴 죄로 법정에서나 들을 법한 시어머니의 무시무시한 말을 듣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제 시어머니는 99살의 치매 2등급 환자입니다.


[전우주]

이전 06화 아들보다 잘나가는 며느리, NO!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며느리를 고발합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