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국에 있는 11개의 교육 대학교는 1981년과 1982년에 2년제 대학에서 4년제 대학교로 학제가 바뀌었습니다. 제가 교육 대학을 다니던 때는 2년제 대학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사와 석사 학위 과정을 공부해야 했습니다. 특히 석사 과정은 마흔이 넘은 나이에 시작하여 고생스럽게 공부를 마쳤지요.
제가 마흔네 살에 석사 학위를 받고, 이어서 박사 과정 입학을 앞둔 시점에서 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결국 저는 박사 과정 입학 대신, 교육전문직원 선발 시험을 준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교육전문직원이란, 교원들을 대상으로 하여 장학사와 교육연구사를 선발하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일정 요건을 갖춘 교감이나 교장 중에서 장학관과 교육연구관으로 선발 또는 추천되어 임명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교육전문직원 선발은 각 시·도교육청마다 그 방법이 좀 다르지만, 교원들에게만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교직 내부의 시험이지요. 교원들 사이에서는 '고시'로 통하는 어려운 시험입니다.
특히 장학사나 교육연구사 임기를 마치면 교감으로 승진하고, 이후 교장으로 승진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교원 승진 시험'이라고도 합니다. 교원들이 승진하는 방법이 대략 서너 가지 정도 있는데, 그 중 한 가지 방법이지요.
교육전문직원은 교육부, 시·도교육청, 교육지원청, 교육연수원, 교육연구원, 교육원, 체험관 등 학생 교육 관련 기관에서 근무합니다. 그리고 교육 정책의 계획, 수립, 조정, 민원 업무 처리, 교육행정 업무와 교육 실천에 대한 협력과 조언, 교육 문제에 대한 조사 연구, 교육 자료의 수집·제작·보급, 교원의 현직 교육, 교육 연구물의 편집·발간 등의 업무를 하게 됩니다.
제가 대학원을 마치고, 이듬해 교육전문직원 선발 시험에 합격했을 때, 시어머니가 보여준 반응이 참 남달라서 제 마음이 서운했던 게 잊히지 않습니다.
"어머니, 이 사람 고시 합격한 거나 마찬가지예요. 칭찬 좀 해 주세요."
"잘했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대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고시 파스(*'pass:패스'를 항상 '파스'라고 말함)했어."
그리고 시어머니는 한 마디를 더하여 제 가슴에 상처를 내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다행이냐? 네가 작년에 승진했으니 망정이지, 까딱 잘못했으면 얘가 먼저 승진할 뻔했어. 그리고 에미 너, 우리 집이 관운이 발복하는 집안이라 네가 그 시험에 합격한 줄 알아라. 다른 집이었으면 어림도 없지."
이와 비슷한 일은 더 있었지요. 제가 결혼하고 서너 달 뒤에 국내 굴지의 화장품 회사에서 시행한 문예작품 공모에 입선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 한 달 월급 정도의 상금도 두둑하게 받았습니다. 제 남편은 입선 통보를 전보로 받고 저와 함께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저희 집에 온 시어머니에게도 알려 주었지요.
"어머니, 이 사람이 글을 잘 써요. 이번에 화장품 회사에 글을 낸 것이 상을 받게 되었어요."
"잘했네. 그런데 우리 아들은 대학교 다닐 때 뭔가 잘했다고 상금을 80만 원이나 받았어."
시어머니에게는 누구든지 당신의 아들보다 나으면 안 되었지요. 특히 며느리가 앞서는 것은 절대 환영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드러냈지요. 시어머니는 당신 아들보다 잘난 며느리는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리고 며느리는 내 아들 집에서는 전적으로 아들의 도우미이고, 시집에서는 시부모를 깍듯이 봉양하는 사람이면 충분하다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척박한 산골에서 아들 다섯을 대학까지 교육한 것을 항상 당신 일생의 첫 번째 위업으로 꼽았지요. 그리고 아들이 모두 제 몫을 하며 사는 것에 대한 위세가 대단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결혼 후 시집에 갈 때마다 거의 파출된 노동자처럼 중노동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또 시어머니는 단 한 번도 저에게 밥상을 차려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시집에 가면 시어머니는 마치 일꾼이 왔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제가 익숙하지 않은 시집에서 불편하게 식사 준비를 하건, 힘들게 청소를 하건 시어머니는 나와서 거들어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 며느리들이 제 뒤에 차례로 들어왔습니다. 시어머니는 세상의 흐름을 인식하게 되었고, 며느리들과 크고 작은 갈등을 겪으면서 조금씩 변해 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