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시어머니 새색시 적에

by 전우주

시어머니는 항상 식탁에 앉자마자 고개를 저으며, 꼭 한마디를 먼저 하고 수저를 듭니다.


"밥이 너무 많아. 덜어."


그런데, 정녕 그 밥이 많아서 시어머니가 그러는 게 아닙니다. 밥이 많든 적든 마치 식사 전 기도처럼 습관적으로 말하는 것이지요. 사실은 시어머니의 이 말이 자식들에게는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시어머니는 열네 살 때 스물두 살의 시아버지에게 시집왔습니다. 시어머니는 한창 극성을 부리던 일본제국의 처녀 공출이 두려워서 일찍 시집온 것이지요. 시집은 전라북도 장수였어요. 그 옛날의 장수는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척박한 산촌이었을 거예요. 더구나 그때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수탈이 극에 달했던 시대였으니, 살림살이가 오죽했겠어요.


시어머니와 혼인하여 일가를 이룬 시아버지는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보겠다고 궁리한 끝에 객지로 나갔습니다. 열네 살 새색시였던 시어머니는 시집오자마자 남편이 돈을 벌겠다고 집을 떠나 버린 것이지요.




새 신랑이 집을 떠나버리자 열네 살 새색시는 시어머니, 손윗동서와 함께 살게 되었어요. 그런데 너무 가난하여 먹을 것조차 부족했지요. 결국 먹는 것이 무서워서 입 하나라도 줄여야 했어요. 새색시가 시집올 때 데려온 *하님을 친정으로 돌려보내야 했지요. 새색시가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하님은 남편이 없는 시집에서 그나마 의지가 되는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새색시는 남편도 떠나고 하님도 떠나버린 시집에 천애고아처럼 홀로 남게 된 것이지요. (*하님: 여자 종을 대접하여 부르거나 여자 종들이 서로 높여 부르던 말.)


새색시는 친정에서 배를 곯지 않고 살았기 때문에 시집와서도 눈치 없이 밥을 많이 먹었던 모양이에요. 부잣집 셋째 딸이었던 새색시가 눈치가 있으면 얼마나 있었겠어요? 그리고 시어머니는 남편도 없이 홀로 남은 어린 새 며느리가 안쓰러워서 늘 다독여 주었지요. 목화솜을 두툼하게 넣은 누비저고리를 만들어 추위에 떠는 새 며느리에게 입혀 주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밥을 많이 먹는 데다가 시어머니 사랑까지 받는 새색시 손아랫동서를 손윗동서가 곱게 볼 리가 없었겠지요.



손윗동서는 시어머니 눈을 피해서 손아랫동서인 새색시를 구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많이 먹는 것만 가지고 구박하는 게 아니었지요. 손윗동서는 새색시에게 바느질을 못한다, 빨래를 못한다, 밭일을 못한다, 아기를 못 돌본다, 밥을 못한다, 베를 못 짠다, 꼴을 못 벤다는 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사사건건 하는 일마다 핀잔을 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 몰래 쥐어박기도 했지요.


하지만 열네 살 새색시는 손윗동서의 시집살이를 고스란히 받아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집가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집안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친정 어른들의 신신당부를 어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때부터 새색시는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를 보며, 남편도 없는 시집에서 피눈물 나는 시간을 견디었습니다.




이제 시어머니는 식탁에 앉을 때마다 85년 전의 열네 살 새색시로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식탁에 앉아 밥을 마주하면 시어머니는 제가 그 옛날의 손윗동서로 보이는 것 같아요. 서슬이 퍼렇던 손윗동서가 앞에 있으니까 시어머니는 밥을 적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되고요. 제 남편이 시어머니의 밥숟가락에 반찬을 얹어 주거나 떠먹여 주기라도 하면 불안한 눈초리로 흘끗거리고 제 눈치를 살피며 한사코 마다합니다.


이제 시어머니는 99살의 치매 2등급 환자입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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