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소고기 한 근을 못 사본 시어머니

by 전우주

제가 시집에 가서 명절 음식을 준비할 때마다 아쉬운 게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좋아하는 소고기가 없었던 것이지요. 저는 시어머니가 명절이나 생일 등 집안 행사에 소고기를 사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희 시집에서는 설날에 떡국을 끓일 때도 멸치국물이나 닭고기를 썼습니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형제 중 둘째 아들이라 차례상을 제대로 차릴 일도 없어서 산적조차 올릴 일이 없었으니, 그렇게라도 소고기를 먹을 일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시집에서는 생일날에도 닭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명절이나 생일 등 집안 행사를 시집에서 치를 때는 시어머니가 준비해 놓은 것으로 며느리들은 조리만 했기 때문에 제가 식재료를 따로 살 일이 없었지요. 저희가 따로 사서 준비했다면 저는 제일 먼저 소고기를 샀을 텐데요.


그러다가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시어머니가 저희 집으로 오고 나서 자연스럽게 명절과 시아버지 기제사를 제가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 손윗동서가 있었지만 시어머니가 저희 집으로 왔으니 제가 차리게 된 것이지요. 저는 시집에서 그동안 지냈던 명절보다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맞는 새로운 가풍과 전통을 집안 문화로 만들어 가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시어머니도 집안의 명절이나 기제사를 주관하여 준비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시집만의 명절 문화랄 게 따로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제게 익숙한 것은 종가였던 친정에서 살면서 보고 먹고 배운 것들이 바탕이 되었지요.



시어머니가 저희 집으로 오고 나서 첫 번째 맞은 행사가 설명절이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명절에 모이는 가족 수가 스무 명이 넘었지요. 제 남편의 남자 형제만 오 형제였으니 어른들도 많았지만, 아이들이 각각 둘에서 네 명까지 따라 왔습니다. 제 아이들과 조카들을 합하면 열다섯 명이었는데 대부분 남자아이들이었지요. 그런데 돌도 씹어서 소화시킨다는 한창때의 아이들이 모이면 음식 준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차례상에 올릴 음식 준비보다 모인 가족들에게 줄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었지요.


다행히 아이들이 갈비를 좋아해서 20kg 정도 재워 두면 여타 음식이 좀 부실해도 명절 동안 충분히 먹일 수가 있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는 그 가지 수가 줄어들어 수월한 면도 있었습니다. 또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소갈비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지요.


"아이고, 많기도 하다. 이게 다 돼지고기지?"

"소고기예요. 그래도 명절인데 소고기를 먹어야지요."


시어머니는 제가 사온 것이 소고기인 줄 알면서도 매번 돼지고기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소고기라는 제 대답을 듣고 나면 언제나 똑같이 머리와 혀를 동시에 내두르며 놀랍다고 했지요. 제가 김치 담글 때 쓰는 큼직한 스텐통에다 양념을 만들어 넣고 갈비를 버무려 재면 시어머니는 거들어 준다며 주방에 나와 구경했습니다. 그리고, 손이 큰 며느리의 통 큰 씀씀이를 아주 마음에 들어 했지요.


"넌 참 배짱도 좋고, 손도 크다. 난 평생 소고기 한 근을 못 사봤다."

"사람이 몇인데요, 이 정도는 사야 넉넉하게 먹지요. 그러라고 나라에서 명절휴가비도 주는 걸요. 그런데 어머니는 동네에서 제일 부자였다면서 왜 소고기를 못 샀어요?"

"애들은 많고, 다들 잘 먹는데 비싼 소고기를 한두 근 사면 누구 코에 붙이겠냐? 그 돈이면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더 사다가 배불리 먹이는 게 좋았지."



그러면서 시어머니가 당신 돈으로 소고기를 산 일이 딱 한번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시어머니가 군수 부인에게 부탁할 일이 생겼는데, 갈빗집에서 만나기로 했대요. 시어머니 속마음은 냉면이나 갈비탕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군수 부인이 호기롭게 갈비와 냉면을 2인분씩 내오라고 하더래요.


그리고 갈빗집 소갈비가 어찌나 맛있던지 시어머니는 입에서 당기는 대로 고기를 점 먹었더니 잘도 넘어가더라나요. 그런데 먹다가 생각해 보니까 시어머니가 돈을 내야 할 것 같아 정신이 번쩍 들더래요. 당신이 자꾸 먹으면 갈비를 더 시켜야 할 것 같았지요. 시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군수 부인에게 갈비를 밀어주면서 당신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군수 부인이 갈비를 다 먹을 때까지 씹었답니다.


그날 소갈비까지 먹으면서 부탁한 일은 잘 될 것 같아 시어머니는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섰지요. 하지만 시어머니는 생전 처음으로 내는 소갈비 값에 그만 아찔해서 다리가 휘청거렸답니다. 그 기절할 뻔하게 비싼 소갈비 2인분이 시어머니 평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 소고기였지요. 소갈비 2인분이면 400g이니까 한 근이 안 되네요.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와 함께 산골에서 척박한 땅을 일구고 조금씩 늘려가면서 한편으로는 자식들을 가르쳤습니다. 다행히 자식들이 모두 성실하게 공부하는 것으로 부모의 고생에 대한 보답을 한 셈이지요. 하지만 시어머니의 지나치게 그악스러운 모습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아프게 기억하는 아들도 있었어요.


제 남편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좀 섬세한 감정을 타고난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제 남편이 해준 말이 아직도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제 남편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집에서 다니고, 이후에는 도시로 나가서 학교를 다녔으니까 아마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던 때였을 것 같아요. 이른 아침에 학교에 준비물을 사갈 돈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시어머니가 무심하게 아침밥을 먹으면서 욕을 퍼붓더래요.


"야 이놈의 새끼야, 씹어 먹고 죽을 돈도 없다. 가서 한대 두들겨 맞고 말아라."


어쨌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억척스럽게 일하고, 지독하게 절약한 덕분에 아들들은 모두 대학교를 졸업했지요. 그리고 모두들 심성도 반듯하게 잘 자라 좋은 어른이 되어 살고 있어요. 다만 시어머니는 남아 선호와 아들만 제일이라는 사고를 갖고 있어서 육 남매 중 유일한 딸인 시누이를 초등학교조차 졸업할 수 없게 하여 평생 동안 한을 품게 하고 말았지요.


이제 시어머니는 99살의 치매 2등급 환자입니다.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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