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필코 사과받고 복수를 해야 했어

by 전우주

제가 시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시어머니는 환갑을 맞는 나이였지요. 그리고, 어느덧 제 나이도 환갑이 지났습니다. 제가 시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나이를 살게 된 것이지요. 저는 그 무렵의 시어머니를 이해해 보려고 자주기억하고 노력했지요. 그때는 시어머니가 정말 이상하고 불편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남편의 어머니라서 이해하는 척 모른 척 눈 감아 주고, 제가 큰며느리가 아니니까 함께 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참고 넘어간 일이 많았지요.


예전에 시어머니가 저에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기도 합니다. 제 평생을 통틀어서 그 누구도 시어머니처럼 저를 대한 사람은 없었거든요. 제 친구 중에 한의사가 있는데, 제 증상을 '울화' 또는 '화병'이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심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고, 저에게 마음공부에도 관심을 가져보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내가 예전에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어요. 그런데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까, 어머니가 참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지요. 나는 그동안 어머니를 두고, 나이 든 사람들은 그럴 수 있나 보다고 생각하여 눈 감아주고 참아주며 넘어간 게 많았어요. 그런데, 내가 어머니 나이만큼 되어 보니까 어머니는 결코 좋은 어른이 아니었어요. 어머니는 나를 가족으로서 더 배려하고 존중해 주어야 했어요. 내가 어머니를 어른이라고 인정하는 이유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내 시어머니라는 것밖에 없었어요. 아무튼 나한테 왜 그러셨는지 어머니한테 물어보고, 꼭 사과받고 싶어요."


제 말에 남편은 깜짝 놀랐습니다.


"다 지나간 이야기고, 이제 잘 지내고 있는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예요? 또 어머니 세대는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그랬던 거지. 우리 어머니가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잘 지내고 있는 건 다 내가 참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 그동안 살면서 그 누구도 어머니만큼 나한테 상처 준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당신도 나쁜 사람이었어요. 어머니가 나한테 그렇게 부당한 대우를 하고,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도 당신은 모른 척 보고만 있었지요. 아니, 오히려 어머니 편을 들었지요. 당신은 신혼 때부터 '우리 어머니가 살면 얼마나 사시겠냐, 잘해 드려라'라고 했어요. 그런데, 내가 그 말을 듣고 산 지가 벌써 40년이 다 돼가요. 아무튼 난 어머니한테 사과를 받아야 해요. 아니면 복수할 거예요."



"사과는 무슨 사과, 우리 어머니는 사과하는 것을 배운 적이 없어요."


"누가 사과를 배워서 해요? 사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기본적인 양심에서 나오는 것이고,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 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동안 당신은 나와 어머니 관계에서 늘 나한테 일방적으로 나이 든 사람들은 그런 거라고, 젊은 사람이 참는 거라고, 배운 사람이 이해해야 하는 거라고 말했지요? 내가 어머니 나이 되어보니까 그게 아니던데요. 오히려 나이 든 사람이 젊은 사람들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배움과 상관없이 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제대로 된 어른이지요."


"우리 어머니는 뭘 제대로 배웠겠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어머니는 하늘만 보이는 산골에서 학교도 다니지 않고 살다가 처녀 공출을 피해서 열네 살에 우리 아버지한테 시집왔어요.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 남편이면 좋겠다는 꿈도 갖기 전에 남편이 생겼고, 어떤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기도 전에 아이가 생겼으니 그저 살아야 했지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다 커니, 어떻게 살고 싶다 커니하고 꿈꿀 시간조차 없었지요. 열네 살이면 중학교 1학년 아이예요. 요즘 애들은 그나마 보고 듣고 배운 게 많아서 똑똑하기라도 하지요. 어머니는 당신처럼 배우고 준비해서 세상을 살 수 없었어요.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성찰할 시간도 없이 닥쳐오는 세월을 부딪히고 헤치며 살아내기 바빴지요. 어머니는 그게 그냥 성격이 되고 품성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러다 보니 심지어 자식조차 귀하게 여겨 보살필 겨를도 없이 살다가 나중에 여유가 생기니까 그제야 빚이라도 갚듯이 자식들에게 지극 정성을 쏟는다는 게 그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한 것이지요. 어머니를 당신의 시어머니가 아닌 한 인간으로 보면 안 돼요? 당신은 우리 어머니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평소 말수가 적은 남편이 시어머니를 위하여 길게, 그리고 힘주어 변론했습니다.


"당신은 우리 며느리들이 이 집안사람들을 '삼단교 교주와 세뇌당한 광신도들'이라고 말하는 거 알아요? 내가 봐도 이 집안은 마치 김삼단 교주가 세운 종교 집단 같아요. 당신 형제들은 태어나자마자부터 세뇌당해서 교주의 말이라면 의심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복종하지요. 그리고 어머니가 뭘 하든 당신 형제들은 항상 옳다고 믿었잖아요? 그게 바로 종교지 뭐예요?"


그날 부부싸움 이후, 저는 시어머니에게 사과를 요구하려고 때를 기다렸지요. 또 최고의 복수도 궁리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 사이 시어머니는 치매 진단을 받고, 지난해에는 치매 2등급 환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에게 사과받고 복수하는 것을 포기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지요. 결국은 이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 퍼 올린 이야기를 글로 쓰고, 스스로 위로받으며 마음을 비워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40년 동안 쌓인 것들을 청산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직도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 시어머니는 99살의 치매 2등급 환자입니다.




저는 <아씨> 노래를 가끔 잘 부릅니다. 그 노래 속에는 제 할머니, 시어머니, 친정엄마의 일생이 오롯이 담겨 있지요. 그래서 저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목이 메고 눈물이 납니다.



아씨 (이미자 노래, 임희재 작사, 백영호 작곡)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탄님 따라서 시집가던 길

여기던가 저기던가

복사꽃 곱게 피어있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옛날에 이 길은 새색시 적에

서방님 따라서 나들이 가던 길

어디선가 저만치서

뻐꾹새 구슬피 울어대던 길

한 세상 다하여 돌아가는 길

저무는 하늘가에 노을이 섧구나


[전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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