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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수공원 Nov 04. 2024

귀를 열어요

과녁

가장 가운데를 뚫는 일은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엄지에 힘을 주며 미세한 떨림과 합세하여 작동하는 주사기처럼 원통 속의 납작한 압력을 높여 쏘는 건 시시하다. 친구들을 끌고 다니며 넘어진 과녁 개수에 따라 인형을 따서 집중력을 자랑했던 유치함에 웃음이 났다.


실체를 느끼는 모양과 소리는 증폭된 세상이었다.  


항상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 조교들, 언제나 다르게 갈라지는 공기의 흐름이 신기했다. 허공에 떠 있는 팔은 백분의 일초 정도만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내 몸을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실망스러워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러니 손목도 손가락도 손톱도 모두 각각 흔들리며 원망하듯 내 눈에 비쳤다.


한쪽 눈은 꼭 감아야 해요?

이거 제가 뒤집어 입었나요?

실전에서도 귀마개를 하나요?


기본을 장악하지 못한 질문으로 답이 시원하지 않으니 우왕좌왕 흘깃거린다. 두 눈을 뜨면 어디를 맞춰 바라봐야 하는지 모르고 세상의 경계가 없어져 내가 향한 과녁은 희뿌연 호빵을 걸어둔 것 같았다. 가장 가운데 통단팥이 뚫고 나와 있으면 그걸 향해 쏠 텐데, 그저 김 나는 겨울이 걸렸구나 한다.  


싸움에 나가는데 너덜너덜 나풀거리는 전투복이 대체 어울리는 건가. 벨크로 주머니엔 무엇을 붙여야 하는지 가려진 지퍼의 용도는 무엇인지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위급 상황이 되면 소리와 불꽃에 그대로 노출될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다.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다.  


왼손 검지 손톱 아래 불룩한 곳으로 아주 살며시 다가오세요. 느낌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오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어느새 거기 닿아 있을 겁니다. 그거예요!


뚫리며 찢어지는 실체가 아니라 스스로 확신하는 어떤 순간 그 소리와 손의 움직임과 심장의 숨죽임이 함께여야 바로 그 지점을 지나며 가능한 것이었다.


깨달음과 함께 좌절이 왔다. 하지만 좌절이 오기로 변하면 더 실패 가능성을 높이는 거다. 능력은 부족하면서도 아무런 대책 없이 지기 싫은 마음을 인정하고 버려야 한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처음부터 새롭게.


빨리 해치우는 것은 효율적이고 성공적일 것 같지만 거칠게 일을 그르치며 제대로 된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지금껏 그래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다니.


가만히 나를 느낀다. 내가 닿을 수 있는 거리를 가늠한다. 그 거리만큼 쏘아져 날아가는 나의 시간을 계산한다. 아주 미세한 순간, 조금 일찍 터지는 소리를 인지한다. 쏘아져 날아가 버린 결과를 온전히 인정하는 쿨함이 그다음이다.


눈에 보이는 과녁이 아니라 바로 그 전의 소리였다.


다시 자세를 잡는다. 이미지를 그린다. 검지 손가락을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좌절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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