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분주한 도시 한가운데 좁은 통로의 주차장 입구를 기어이 통과하고 나니 이른 아침을 말해주듯 주차 공간이 듬성듬성 비어 여유가 있다. 이 도시는 주차만 잘하고 나면 온전한 자유다.
며칠간의 고열을 견디며 흐릿한 시야를 뚫고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 클릭을 했다. 탈출 프로그램이라 부르기로 했다.
동행하며 걷던 사람이 때론 손을 뿌리치려 하는 걸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혼자 애처롭기도 하다. 꿈이었던가. 현실감이 없는 시간 속에서 구획화된 삶에 차분히 순응한다.
아이들의 눈을 보며 웃고, 카드를 펼치며 게임을 하고, 여행 가는 흥분으로 가득한 아이를 응원한다. 가족이 옆에 있다면 친구가 바라봐준다면 그 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하고 싶은 걸 하라는 귀엣말을 듣기로 했다. 움츠리지 말고 일단 가슴을 펴라는 눈짓을 따르기로 했다. 꿈속의 그가 가라며 거칠게 등을 민다. 아침의 그가 따뜻하게 숨찬 허그를 한다. 가만히 있어도 느릿하게 오는 우울을 눈치채고 꾹 참고 있어도 터지려는 웃음을 알아채고 조용히 바라봐준다.
구멍가게가 다닥다닥하고 자주색 고무 다라이에 작은 야채들을 키우는 동네를 꿈꾸기로 했다. 그런 여유를 상상하며 가장 바쁜 서너 달을 보내기로 했다. 내 밖의 전쟁은 내가 어쩔 수 없지만 내 안의 전쟁은 차분히 준비할 수 있다. 그런 류의 전쟁광인지 오래다.
독한 목표를 90도로 세워두고 그 기둥을 맨발로 올라보기로 했다. 사람들의 입이 움직이는 대로 발을 옮겨 보기로 했다. 좋은 사람들이 오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기분이 조금씩 나아진다.
글을 조금 더 신나게 쓰고 싶다. 내 용기를 더 과감하게 시험해 보기로 했다. 첫눈에 들어온 건 아무도 글쓰기 전략서 같은 것들을 추천해주지 않은 거였다. 그게 나의 다른 시작이 되었다. 대신 한 권의 소설, 이승우가 왔다.
그리고 에밀 뒤르켐, 흄, 죽음에 스스로 맞닥뜨리는 철학에 대한 논문을 읽고 있다. 자신을 죽이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그들 철학의 일부와 연결시킬 수 있길 바란다. 세상의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은 삶을 다룬 한 영화에 그런 대사가 나온다.
'새로 태어나기 바쁘기보다 죽는데 바쁘다.'
낡고 늙고 닳아 익숙하고 편안한 것에 안주하는 건 죽어가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무모했던 내 삶을 다시 뒤집을 때가 왔다. 그런 무모가 익숙해져 권태가 될 줄 몰랐다.
피로했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다시 배고프고 다시 갈증 나는 그 두려운 길을 엉금엉금 뚜벅뚜벅 갈 것이다.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