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 안내 방송이 간간이 흐르는 좁고 텁텁한 공간 바닥에 털썩 앉았다. 엉덩이를 타고 몸 쪽으로 흘러 오르는 시원한 기운에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한 도시의 넓은 경계를 건너 다른 도시로 떠난다는 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상한 갈증을 부추긴다. 단 하루인데도 꼼꼼하게 챙겨 가방을 싸는 이유는 그런 거다.
전날의 새벽과는 꽤 다른 판타지로 잠을 깬 건 이것저것 늦은 먹거리 때문이었다. 낯선 영화관에서 친구가 추천한 영화를 보고 나서야 하루종일 제대로 먹은 것이 없다는 게 생각났다.
9시를 넘긴 일요일 밤은 거의 모두 평온하게 다음 날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문을 연 식당이 별로 없다.
음식 문화가 발달한 곳이니 산해진미에 빠져보라는 친구의 톡에 편의점에서 산 인스턴트의 가벼움에 눈물이 났다. 허기진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말초 자극을 기억하며 흥분해 집어 든 작은 병, 오늘 새벽의 거친 몽롱함을 책임져야 한다.
가장 낮은 온도 세팅이 19도라는 것에 두려움이 왔다. 뜨거운 세상은 내 눈을 녹일 듯 나를 조인다. 조여진 눈은 두통을 부르고 두통이 나면 쌍욕이 나온다. ㅆ...
최대한 체온을 낮추는 처치를 한 후 아직 덜 마친 일을 시작했다. 새로운 주를 시작하려면 반드시 해야 하는 정신무장과 두뇌를 채우는 극한 도전을 한다. 낯선 타지의 기운을 타고 십여 년을 묵혔다는 중독성 음료를 털어 넣으며 일을 마쳤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이런 건 취중에 하는 거다.
나를 털어 넣어 쓴 부끄러운 흔적들 아쉬운 이야기들을 두고 가는 이 도시를 오래전부터 사랑했다.
그녀가 있어서 그녀의 아기가 있어서, 그리고 또 그를 만나며 그가 휴대폰을 보는 모습을 아끼며 바라보던 내가 있던 곳, 이제 나를 보낸다.
하늘이 파랗다. 구름이 뿔뿔이 흩어지는 사이로 전투기가 으르렁거리며 내 귀를 쓸어간다. 전쟁이려나 모멸이려나 전멸이려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국이다.
지나가며 흘깃 들었던 방송의 속보에 아직 꿈이 덜 깼나 했다. 예리하게 남은 겨울 살얼음이 심장의 한쪽을 저며간다.
내 남은 심장의 끈질긴 힘줄과 숨결을 어디에 쏟아야 할지 막막한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