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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빙워터 Sep 26. 2023

떼쓰는 아이, 심리학으로 해결하다

밀턴에릭슨의 기본가정법 질문

'막무가내 떼쓰기, 끝없는 달래기'

첫째가 두 돌이 지나고 막무가내로 떼쓰기 시작했다. 말이 유창해지면서 자신의 좋고 싫음이 분명해졌다. 분명 축복해야 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 싫음이 막무가내가 될 때 피가 거꾸로 솟는다. 초콜릿을 먹고 이빨 닦아야지 하면 싫어라고 외친다. 잘 시간이 한참 넘었는데 자야지 하면 싫어라고 외친다. 인내심을 가지고 갖은 설득과 회유로 어찌어찌 그 순간을 넘기면 또 다른 '싫어'가 어김없이 찾아온다.


한두 번은 인내심과 온유함으로 부드럽게 대하지만 똑같은 게 몇 번  반복되면 욱하고 감정적인 훈육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 끝은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범벅된 아이의 얼굴이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아 난 이것밖에 안 되는 부모인가 후회가 밀려온다. 아이에게 사과하고 반성 가득한 다짐을 함께 외친다. 내일부터는 우리 서로 잘하자 파이팅. 하지만 다음날 아침 어김없이 싫어가 난발되고 분노-울음-후회-다독임 순으로 똑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무한루프에 갇혀버린 듯한 무력감이 나를 더욱 지치게 한다.


나는 육아하면서 육체적 힘듦과 정신적 스트레스 중 뭐가 힘드냐 물으면 주저 없이 '정신'이라고 외칠 거다. 정말 정말 미쳐버리고 싶을 때가 많다. 수 없이 반복되는 막무가내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오은영박사님을 비롯한 전문가의 갖은 조언들을 탐구하고 적용해 보지만 내 아이는 해당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는 전부 다 다르니까.


가장 힘들었던   하나는  해야 하는  막무가내로 싫다고  때다. 아이도 안다. 이건 해야 하는 거라고. 그러나  순간이 오면 일단 떼를 쓰고 본다. 회유하고 혼내고 달래는 과정이 보통 20 정도가 소요된다.  사이클을 돌면 진이 빠진다. 그러나 어김없이 다음 '싫어' 순간이 찾아온다. 원칙을 포기하면  되냐 하는데 애를 키워보시라. 그게 가능한지. 그러던  심리학 책을 읽었는데 정신이 번쩍 만한 글귀를 읽었다.


'기본가정 화법으로 상대방의 행동을 유도하라'

저명한 정신과 의사 밀턴 에릭슨이 자주 쓰던 대화기업인데,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행동을 기본전제로 깔고 질문을 하면 청자는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된다는 게 골자다.

예를 들어보자. '이 모델이 제일 싼 물건이니'와 '이 모델이 제일 싼 물건인걸 알고 있었니'라는 질문은 비슷한 것 같지만 대답이 천지차이로 다르게 나온다. 전자는 물건이 싸냐 아니냐라는 고민에 대한 답이, 후자는 알고 있나 몰랐냐에 대한 답이 나온다. 후자의 경우 물건이 싸다는 건 자연스레 전제하고 알고 있는지 아닌지만 생각한다. 정말 쌌는지 아닌지 비판적 사고로 따져봐야 하는데 엉겁결에 이 물건이 싸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나 몰랐나 라는 사실에 뇌의 초점이 맞춰진다.  읽으면서 머리가 핑핑 돌기시작했다. 뭔가 내가 갇힌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낼 유레카를 찾은 것 같아서.


그 후 아이가 떼쓰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날 식탁에서 밥 안 먹고 당장 초콜릿을 먹는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밥 먹은 후에 주기로 약속했었다) 옳다구나 드디어 때가 왔구나. 준비했던 질문을 툭 던졌다. 너 밥 먹고 초콜릿 먹을래 아니면 밥 먹고 초콜릿 안 먹을래? 막상 뱉었지만 참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이런 말장난이 진짜 먹힐까 스스로 반문했다. 3초의 정적이 흘렀다. 첫째의 복잡한 표정을 보는데 심장이 쫄깃거렸다. 먼 말 같지 않은 소리야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아빠로서의 권위는 이제 끝인가. 별 생각이 다 들고 후회가 밀려올 때쯤 대답이 들려왔다. 밥 먹고 초콜릿 먹을래. 그러고 수저를 들어서 밥을 먹는 거다. 신기했다. 아니, 이게 진짜 된다고? 20분간의 분노-울음-후회-다독임의 사이클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스킵가능하다니. 아 놀라웠다. 질문 하나 바꿨을 뿐인데 이런 기적이 찾아오다니. 오펜하이머의 핵 실험 성공만큼 큰 감동이 폭포수처럼 밀려왔다. 그러나 곧 의심병이 도진다. 혹시.. 우연 아닌가?


'진짜 효과 있네 심리학'

그 후로 아이가 떼쓸 때마다 기본가정 질문을 던져봤다. 양치하기 싫어. 아 양치하기 싫구나, 그러면 파란 색깔 칫솔로 양치할래, 분홍색깔 칫솔로 할래? 음.. 분홍색깔로 양치할래. 이럴 수가. 체육복 입고 가기 싫어 핑크색치마 입고 어린이집 갈 거야. 오늘 체육활동하는 날이니 체육복 입고 가고 집에 와서 핑크색 치마 입을까 아니면 집에서도 체육복 입고 있을까? 음.. 갔다 와서 핑크색치마 입을래. 참 놀랍다 못해 경이로웠다. 이게 진짜 먹히는구나.


돌이켜보니 이제껏 아이와의 갈등이 내 무지함에서 비롯된 거다. 우주 같은 아이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아이와의 대화 방식은 충분히 개선 및 변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나와 아이들을 위해서. 육아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서. 기본가정화법 외에도 무수히 많은 심리법칙과 개념이 있는데 내가 적용할 수 있는 게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 육아는 얼마나 더 고급스럽고 개선될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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