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결혼 전까지는 크게 와닿지 않는 5월의 형용사가 결혼하고 난 뒤에는 크게 느껴진다. 양가 부모님을 뵈러 가야하는 달, 곧 앞으로 태어날 레몬이가 가장 사랑할 어린이날도 있는 이 달은 행복함 속에 가벼운 부담을 뿌려 놓은 달이다. 올해 5월도 배가 볼록 나온 와이프와 함께 부모님과 식사를 하며 용돈도 드리며 행복한 부담을 치러냈다. 지난 주는 장모집 댁에 갔었는데 사위 사랑은 장모라 장모님댁에 가면 우리 집과는 다른 묘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 편안함 중에서도 저녁 식사 후에 거실에 모여 불을 끈 채 같이 영화를 보는 시간은 결혼 후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행복의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서 우리가 선택한 영화는 최근에 개봉한 '승부'라는 바둑 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스승 조훈현과 제자 이창호의 바둑 실화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 이야기는 이창호가 스승 조훈현을 뛰어넘으며 그 갈등이 극에 달한다. 조훈현은 제자에게 지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결국 이창호의 전승을 끊어내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스승 조훈현의 솔직한 감정 표현 부분이다. 제자에게 지고 싶은 스승은 없다. 그것도 자신이 가르친 것과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진다는 건 한 자리의 최고에 있던 스승에게는 어쩌면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이런 패배는 조훈현에게 큰 상처가 되어, 한 지붕 안에서 살던 이창호와의 별거를 선택한다. 결국 남보다 못한 사이로 지낼 수도 있던 이 순간, 스승 조훈현은 자신을 내려놓는다. 스승은 매 순간 최고일 수 없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동시에 제자의 성장을 인정하며 새로운 바둑의 눈이 열린다. 이런 방법으로 조훈현은 이창호를 이기며 자신도 한 번 더 성장하게 된다.
학교에서 지내다보면 다양한 부분에서 특출난 능력을 보이는 학생들이 있다. 가르치는 교사보다도 훨씬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학생들을 마주할 때도 있는데, 이런 학생을 마주하면 교사는 두 가지의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기껏해야 몇 자 더 쌓아올린 경험적 지식으로 학생의 성장과 자신의 성장을 막는 선택,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학생들에게서도 새로운 배움을 얻는 선택이 그것이다. 초임 때는 전자의 선택을 많이 했다. 교실 안에서 최고의 권위자는 담임교사인 나여야만 하며, 이러한 권위에 도전하는 알량한 지식 자랑은 무시하기 바빴다. 결국 무엇인 남았는가? 고작 쌓아올린 얕은 권위 덕에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열정이 더 생긴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며 권위를 내려놓는 일의 가치를 알게된건지, 학생이 나보다 잘하면 진심으로 기쁘다. 우리 반에서는 '미술 도우미'라는 것이 있다. 미술을 잘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에 미술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학생이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무려 담임교사 대신에 가르친다. 그 모습이 지금 나의 눈에는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권위를 내려놓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 안에는 자신이 쌓아올린 과거를 부정하는 일이 어느정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순간, 닫혀있던 하나의 새로운 문이 열릴 것이다. 그깟 권위, 좀 없으면 어떤가?